일각에선 중대재해처벌법 이전에 사업 발주자에 대한 감시가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도 제기된다. 하도급사 입장에서는 원청업체의 눈치를 보며 예산과 공사기간을 줄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같은 사고가 반복된다는 것. 이들은 하도급사에게 원청업체가 충분한 공사시간과 안전관리 비용 등을 지불하게끔 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지난 9일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4구역 재개발 부지에서 철거 작업이 진행 중이던 건물이 붕괴됐다. 5층 높이의 건물이 순식간에 무너져 인근 도로를 덮쳤고 정류장에 정차한 시내버스 1대가 잔해 아래에 깔렸다. 사고로 버스 승객 17명 가운데 9명이 숨지고 8명이 크게 다쳤다. 시공사는 HDC현대산업개발이고, 철거는 하도급 계약을 맺은 한솔 기업이 진행했다.
철거 과정에서 일어나는 붕괴 사고는 비단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서울시 건축물 재난사고 발생 현황에 따르면 철거공사장 사고건수는 2015년 4건, 2016년 5건, 2017년 5건, 2018년 3건, 2019년 1건 등 18건이다. 올해도 이같은 사고 벌서 수차례 발생했다. 11일 새벽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쉐라톤 팔레스호텔 철거 현장에서는 시스템 비계(높은 곳에서 작업할 수 있도록 설치하는 일체형 작업발판)가 인근 아파트 주차장 쪽으로 쓰러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다행히 현장 주변에는 사람이 없어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또 지난 4월에는 서울 성북구의 한 철거 공사 현장에서 건물이 무너져 철거 작업을 하던 인부 한 명이 잔해에 매몰됐다. 인부는 당시 안전모와 발목보호대 등 안전장비를 모두 착용한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번 광주 붕괴 사고는 2년 전 서울 잠원동에서 발생한 사건과 매우 유사해 업계 내 고질적으로 반복되는 문제인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019년 7월 잠원동에서 철거 공사 중이던 건물이 붕괴하면서 30톤가량의 잔해물이 인근 도로에서 신호 대기 중이던 차량들을 덮쳐 1명이 숨지고 3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전문가들은 이번 참사의 근본적인 원인을 건설업체의 공사비용 절감을 위한 (재)하도급 관행을 꼽는다. 일명 ‘다단계 하도급’이다. 공사를 발주한 업체(원청업체)가 있으면, 해당 업체가 하위 다른 업체에게 하도급을 주고, 이 업체는 또 다른 업체에게 재하도급을 주는 식이다. 도급 단계를 거칠수록 공사비용이 내려가 영세업체로서는 전문 인력을 충분히 고용할 만한 여력이 없는 경우도 생긴다. 이 과정에서 원청업체들은 자신들의 재해 발생 정도를 줄여 산재보험료를 감면받는 등 이윤을 남길 수 있다.
지난 2019년 국토교통부 국정감사 과정에서 공개된 ‘5개년(2014년~2019년 8월) 불법하도급 적발현황’ 자료에 따르면 5년 동안 총 885건의 불법 하도급 사례가 적발됐다. 이 가운데 무등록 (재)하도급이 489건으로 가장 많았고, 일괄하도급(턴키 공사)이 174건, 동일 업종 간 하도급 112건, 재하도급 110건이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하도급 이유에 대해 “결국 돈이 가장 크다”라며 “통상 이윤 추구에 있어서 가장 먼저 삭감되는 비용은 안전 관련 비용”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는 “하도급 업체들 입장에서는 공사기간을 맞추기 위해 공사를 빠르게 진행할 수밖에 없다. 이는 다음 계약 때문이기도 하다. 빠르게 공사를 진행해야 해당 업체와 다음 공사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중대재해처벌법을 더욱 강화해 하루빨리 적용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올 해 초 국회를 통과한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안전조치 의무 등을 위반하는 경우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 징역형이나 10억원 이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는 제도다. 법안은 다음 해부터 시행된다.
문제는 법안이 당장 적용된다고 할지라도 이번 광주 사건에도 적용되기란 어렵다는 점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제정 당시 원청업체뿐만 아니라 발주처와 공무원 처벌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계속 나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법안에서는 모두 빠졌다. 인권네트워크 바람은 “(이번 사고에선) 철거공사라 통행하는 시민들에게 위험이 닥칠 수도 있음에도 제대로 된 안전조치는 없었다”며 “중대재해처벌법에는 발주처와 공무원 처벌이 삭제됐는데 이제라도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건설업계는 경영자 처벌보다 앞서 사업 발주자에 대한 감시가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건설업 특성상 공사기간이 존재하는 만큼, 충분한 시간과 안전관리 비용을 지불해야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재해 발생의 근본 원인은 발주자 측에 있다. 발주자 측에서 안전관리 비용을 충분히 보장해줘야 한다”며 “하지만 입찰가격에 모든 금액이 포함되어 있다 보니 업체 입장에서는 사업을 따내기 위해 경쟁을 해야 하고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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