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 브리트니’는 어떻게 글로벌 운동이 됐나

‘프리 브리트니’는 어떻게 글로벌 운동이 됐나

기사승인 2021-06-26 07:00:12
팝스타 브리트니 스피어스.
[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여러분에게 비밀을 하나 말해주고 싶어요. 제 삶이 멋져 보였겠지만…, 사실은 그런 척 했던 거예요. 이젠 사람들이 제 삶이 완벽하다고 생각하지 않길 바랍니다. 제 인생은 전혀 완벽하지 않았거든요.” 춤과 노래, 웃음으로 포장됐던 팝스타의 현실은 처절했다. 5900만 달러(670억원) 재산을 가졌으나 마음대로 돈을 쓸 수 없었다. 결혼과 임신도 스스로 결정할 수 없었다. 13년간 후견인으로 지명된 친아버지로부터 재산과 활동 전반을 통제당한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이야기다.

전설의 귀환, 그 뒤에는…
2000년대를 대표하는 팝 아이콘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시간은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법원은 브리트니의 정신건강과 잠재적 약물남용에 대한 우려를 이유로 아버지 제이미 스피어스를 성년후견인으로 지정했다. 제이미는 브리트니 재산을 관리하고 향후 사업을 결정할 권한을 가져갔다. 이후 브리트니는 화려하게 부활했다. 같은 해 발매한 ‘서커스’ 음반은 첫 주에만 50만 장 넘게 팔리며 빌보드 1위로 직행했다. 이듬해 연 월드투어로는 1억 달러가 넘는 수익을 올렸다. 모든 것이 괜찮아 보였다. 하지만….

일부 팬들은 브리트니에게 후견인이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브리트니가 자기 삶과 커리어를 스스로 꾸려나갈 수 있다는 얘기였다. ‘프리 브리트니’로 불리는 이 운동은 10년 뒤, 브리트니가 라스베가스 쇼를 무기한 연장하며 다시 주목받았다. 당시 브리트니가 정신건강 시설에 자진 입원했다는 발표가 나왔는데, 사실은 그가 강제로 입원했을 거란 의혹이 제기되면서다. 팬들은 다시 ‘브리트니를 해방하라’고 외쳤다.

제이미는 이것이 모두 “음모”라고 맞섰지만, 브리트니는 이 운동을 공개 지지했다. 지난 2월 공개된 ‘프레이밍 브리트니’는 이 운동에 기름을 부었다. 제이미의 후견인 자격에 의문을 제기한 이 다큐멘터리는 ‘프리 브리트니’를 글로벌 운동으로 탈바꿈시켰다. SNS에선 ‘프리 브리트니’를 해시태그한 글들이 쏟아졌다. 미국 NBC뉴스의 표현을 빌리면, “여성, 퀴어, 트랜스젠더, 장애인 등 우리 사회에서 자유를 보장받지 못했던 사람들이 브리트니를 후견인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노력으로 한 데 뭉쳤다.”

‘프리 브리트니’를 외치며 거리로 나온 사람들.

“아버지의 후견은 학대였다”
정민재 대중음악평론가는 “이 사건 최대 쟁점은 성년후견인 제도”라고 짚었다. 성년후견인 제도의 구멍을 두고 미국 내에서도 갑론을박이 오가는 상황에서, 유명인사의 피해 사례가 알려져 더 큰 파장을 낳았다는 의미다. 정 평론가는 “브리트니의 행보에 의아한 지점이 있었는데, 그 배후에 아버지(제이미)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안겼다”며 “이전에도 주디 갈랜드, 마이클 잭슨, 머리아어 캐리 등 스타들이 가족에게 혹사당한 사례가 많았지만, 브리트니처럼 착취 정도가 심한 경우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브리트니는 제이미의 후견인 지위를 박탈하고 의료 매니저인 조디 몽고메리를 후견인으로 재지명해달라며 소송을 낸 상태다. 그가 23일(현지시간) 법정에서 화상 연결로 한 진술을 들어보면 한 마디 한 마디가 충격이다. 브리트니는 제이미의 후견을 “학대”라고 표현했다. 그는 억지로 투어 무대에 올라야 했고, 사생활을 24시간 감시당했으며, 심지어 라스베가스 쇼를 거부한 뒤에는 자신의 의사에 반해 약물 리튬을 복용해야 했다고 밝혔다. 남자친구와 새 가정을 꾸리고 싶지만, 몸에 삽입한 피임 기구를 제거하려면 후견인의 동의가 필요해 아이를 갖지도 못한다고 했다. 브리트니는 “내 삶을 되찾고 싶다. 내게도 남들과 같은 권리가 있다”고 호소했다.

브리트니에게 사과하라
‘프리 브리트니’가 글로벌 운동으로 변모한 배경에는 그가 겪은 사건들이 개인적인 불행이 아니라 사회적인 폭력이라는 공감대가 있었다. ‘프레이밍 브리트니’는 여성혐오가 브리트니를 어떻게 난도질했는지를 보여준다. 브리트니가 ‘이웃집 소녀’에서 ‘섹시 스타’로 노선을 바꾸자 미디어의 공격이 시작됐다. 남자친구였던 저스틴 팀버레이크는 브리트니와 헤어진 뒤 그를 비난하는 뉘앙스의 노래를 냈다. 언론은 그에게 성차별적인 질문을 던지거나 자극적인 제목을 단 기사를 내보냈다. 이혼과 재활원 입원 등을 겪으며 극도로 불안정한 상태였던 모습도 여과 없이 보도됐다. 디 애틀랜틱이 지적한 것처럼, 대중은 여성, 특히나 아름답고 유명한 여성이 대중 앞에서 무너지는 광경을 즐겼다.

‘프리 브리트니’ 운동이 확산하는 과정에서 여성혐오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온 건 필연이다. 온라인에선 “‘프레이밍 브리트니’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를 보여준다”, “‘프리 브리트니’는 소셜 미디어 트렌드가 아니다. 우리는 여성의 기본권을 위해 싸워 나갈 것”이라는 의견과 함께 “브리트니에게 사과하라”는 요구가 거셌다. 그룹 원더걸스 출신인 가수 핫펠트는 ‘프리 브리트니’를 다룬 EBS 웹 예능 ‘딩동댕대학교’에서 “내 꿈은 내 음악으로 사랑받는 것이었는데, ‘연애하지 마’ ‘다이어트해’ ‘늙지 말고 관리해’가 패키지로 따라오곤 했다”며 “최소한의 선을 지키는 방향에서 사회 인식이 바뀌고, 언론과 대중의 인식이 바뀌는 계기가 마련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wild37@kukinews.com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이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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