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반종 피산타나쿤 감독은 태국 방콕에서 나홍진 감독을 처음 만났다. 나 감독의 ‘추격자’를 상영하는 문화축제였다. 팬이었던 반종 감독은 자신이 연출한 작품 DVD를 나 감독에게 선물로 줬다. 그리고 5년 후 다시 연락이 왔다. 나 감독이 반종 감독에게 준 원안 시나리오가 ‘랑종’이었다.
최근 화상 인터뷰로 만난 반종 피산타나쿤 감독은 한국에서 화제를 모은 ‘랑종’의 반응을 배급사 쇼박스를 통해 전해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최초 공개된 한국에서의 반응이 다시 태국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반종 감독은 “기대했던 것 훨씬 이상”이라며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랑종’과 처음 만난 이야기를 묻자,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처음 나홍진 감독님과 같이 일하게 됐다는 걸 알았을 때 믿어지지 않았어요. 예상 밖의 일이었죠. 팬으로서 이게 실제인가 싶고, 굉장히 흥분됐습니다. 같이 협업을 시작한 이후엔 중압감과 압박감이 컸어요. 천재 감독님이자 제가 팬인 감독님과 일하면서 최선을 다해서 최고의 퍼포먼스를 내고 싶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태국에서 같이 일할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감독님이 원하는 걸 제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우려도 있었어요. 더 노력을 해야 했습니다. ‘랑종’이 한국에서 소개되고 제가 예상했던 것 이상의 반응을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영화를 보다가 무서워서 극장 밖으로 나갔다는 반응도 들었는데 기쁘더라고요.”
‘셔터’로 유명한 반종 감독이지만 ‘랑종’은 그에게도 도전이었다. 초기에 공포영화를 연출하다가 비슷한 형식에 회의를 느껴 다른 장르로 방향을 바꾼 지 10년이 넘었다. ‘랑종’이 다루는 무속신앙에 대한 지식도 없었다. 그 두 가지 도전을 해결하기 위해 반종 감독은 1년 동안 직접 태국 곳곳을 취재하는 등 철저한 준비과정을 거쳤다.
“‘랑종’ 시나리오 원안 받았을 때 느낀 감정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 번째는 소재가 흥미롭고 재밌다, 해보고 싶다, 흥분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두 번째는 중압감과 압박감이었습니다. ‘랑종’ 시나리오를 읽기 전까지 전 태국 무속신앙을 잘 몰랐거든요.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오랜 시간 리서치를 하면서 한국과 태국 무속신앙에 공통점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영화를 찍으면서 흥미로움이 더 커졌습니다. 원안의 골격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태국 지역에 맞게끔 제가 조사한 태국 무속신앙의 디테일이 영화에 많이 스며들었습니다.”
태국 무속신앙을 조사하며 다양한 무당을 만났다. 그중엔 사기꾼도 있었고, 영화처럼 마을 사람들에게 상담사 역할을 하는 무당도 있었다. 한국처럼 태국 역시 무속신앙을 믿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존재했다.
“태국 사람들에겐 많은 믿음과 신앙이 혼재돼 있어요. 영화를 찍기 전 나홍진 감독님과 의견을 모았어요. 기존 공포영화들처럼 공포만 주는 것이 아니라, ‘랑종’을 통해서 관객들이 알던 믿음이나 악(惡)에 대해 다시 생각할 시간과 기회를 주자고요. 이전에 제가 찍은 영화들은 다음 장면을 알 수 있는, 관객이 미리 공포감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영화였어요. ‘랑종’은 그런 픽션 영화가 아닌 영화 분위기에 젖어 들면서 서서히 공포를 느끼고 마지막에 생각할 수 있는 영화예요. 본인의 믿음과 작품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갖는 영화라는 점이 차이점 같아요.”
처음부터 청소년 관람불가를 만들 생각은 아니었다. 반종 감독은 15세 이상 관람가 영화를 만들 생각이었다. 하지만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나홍진 감독과 상의하며 등급보다 영화 완성도를 높이자는 걸 목표로 하게 됐다. 각 장면의 수위 역시 나 감독과 상의하며 굉장히 조심스럽게 접근했다고 털어놨다.
“공포영화는 공포심을 느끼게 하는 것이 매력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공포영화에서 공포를 느끼게 하는 게 굉장히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예전과 다르게 공포영화를 보고 무섭다고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공포영화를 싫어하고 안 봤습니다. 나홍진 감독 작품이 나 아리 에스터 감독 영화를 보기 전까진요. 그들의 새로운 영화들은 차별화되고 독특합니다. 서서히 공포를 느끼게 하는 것이 저에게도 새로운 도전이었습니다. ‘랑종’은 저한테도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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