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정 서울대 총장, 여정성 교육부총장, 이원우 기획부총장 등은 15일 오전 서울대학교 행정관 대회의실에서 민주당 산업재해TF에 청소노동자 사망 관련 내용을 보고했다. 이해식·장철민·이탄희 의원이 참석했다.
서울대는 이날 “청소노동자 사망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며 “객관적이고 공정한 사실관계 파악 및 후속 조치를 위해 인권센터 조사를 의뢰했다.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해 공정한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민주당 의원과 오 총장 등 서울대 관계자간 질의·응답은 비공개로 진행됐다. 의원들은 학내 인권센터 자체 조사에 공정성 우려를 표했다. 서울대는 학내 원칙을 주장하며 자체 조사 당위성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재해(산재) 인정에 대해서는 신속한 절차 진행을 약속했다.
이날 민주당 의원들은 현장 조사도 진행했다. 청소노동자가 일했던 기숙사와 숨진 채 발견된 기숙사 내 휴게실 등을 돌았다. 쓰레기를 모아두는 분리수거장도 방문했다. 100ℓ 쓰레기봉투를 직접 들어보기도 했다. 앞서 정부는 청소노동자의 근골격계 질환 예방을 위해 100ℓ 봉투의 사용을 제한하기로 했다. 서울대 관계자는 “100ℓ 봉투에는 무거운 쓰레기를 담지 않았다”며 “왜 100ℓ 쓰레기봉투를 계속 썼는지는 알아보겠다”고 했다.
의원들과 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조, 유가족의 간담회도 열렸다. 노조는 청소노동자의 사망 경위와 고된 업무, 갑질 내용에 대해 자세히 발표했다.
기숙사 청소노동자들의 업무는 쓰레기 분리수거뿐만이 아니었다. 샤워실·화장실 곰팡이 제거 및 청소, 휴게실·주방·독서실·세탁장 청소 및 관리, 창문·복도 청소, 낙엽쓸기, 잡초제거, 도랑치우기 등 기숙사 내외 미화를 모두 담당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기숙사 내 쓰레기양도 늘었다. 동료 노동자 A씨는 “어느 날은 안전관리팀장이 외국 정원사들이 잔디 깎는 영상을 보여주며 ‘우리 기숙사도 저렇게 해야 한다’고 지시했다”며 “두려웠다. 팀장을 겪었던 2~3주보다 앞으로 겪을 일들이 더 무서웠다”고 말했다.
드레스코드와 시험 실시 등이 갑질이라는 점도 재차 주장됐다. 서울대 기숙사 청소노동자들은 지난달부터 매주 수요일 회의 시 정장 또는 ‘멋지고 예쁜 옷’을 착용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기숙사 이름을 한자 또는 영어로 적으라는 시험도 봐야 했다.
노조 관계자는 “고인은 회의에 참석했다가 옷을 지적당해 불편함을 토로했다”며 “동료들과 ‘최저임금 밖에 못 받으면서 일하는데 (다음 달 월급에서) 정장 살 돈을 따로 빼둬야 하나 고민’이라고 이야기를 나눴다”고 전했다. A씨 증언에 따르면 고인은 나뭇잎 무늬 옷을 입고 회의에 참석했다. 이에 안전관리팀장은 ‘나뭇잎 무늬?’라고 갸우뚱거리며 ‘어…. 통과’라고 평가했다.
시험 관련 해명이 사실과 다르다는 언급도 있었다. 학교 관계자는 SNS를 통해 청소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시험에 대해 2회까지만 시행하고 종료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노조는 “현장 노동자들은 시험을 없애겠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며 “사망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시험을 계속 시행했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점수를 공개하지 않았다는 입장에 대한 반박도 있었다. 노조는 “점수를 적어서 나눠주니 다른 사람들이 모두 알 수밖에 없었다”며 “(안전관리팀장이) 0점을 맞은 한 노동자에게는 ‘빵점 맞으셨다’며 시험지를 줬다고 했다. 이는 모욕”이라고 강조했다.
노조와 유가족은 학교의 자체 조사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고인의 남편 이모씨는 “학교에서 공정한 조사가 이뤄질 것이라 믿었지만 이제는 거부한다”며 “학교 자체 조사에 응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학교는 제가 억지를 부려 무언가를 받아내려 하는 걸로 생각하는 것 같다”며 “학교에서 행한 갑질에 아내가 찬성했다는 취지의 변명을 들으며 모욕감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노조는 그동안 인권센터의 자체 조사 결과가 ‘제 식구 감싸기’에 불과했다고 비판했다. 인권센터는 지난 2017년 성추행과 폭언, 연구비 횡령 등의 의혹을 받은 H 교수에 대해 정직 3개월의 권고를 내려 논란이 됐다. 당시 학생들이 H 교수 파면을 요구하며 121일간 농성을 벌였다. 지난 2019년 성추행 혐의를 받는 한 교수에게도 정직 3개월을 권고하는 것에 그쳤다.
학교 및 노조·유가족과 면담을 마친 의원들은 각각 입장이 상충한다고 봤다. 이탄희 의원은 “서울대판 ‘설국열차’를 보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며 “청소노동자들이 겪은 상황에 대해 안전관리팀장을 포함, 관리자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알고 싶어 하는 것 같지도 않다”고 말했다. 이어 “학교에서는 (시험 실시, 드레스코드 등에 대해) ‘선의’로 했다고 하지만 노동자들은 참을 수 없는 모욕감을 느꼈다. 모욕감에 대해 표현할 수도 없는 분위기였다”면서 “두 개의 세상을 보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해식 의원도 “학교는 인권센터가 조사를 맡은 것에 대해 내규에 따른 원칙이라는 입장을 반복했다”면서 “학교에서 사안의 심각성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문제가 해결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내다봤다.
지난달 26일 서울대 기숙사 청소노동자였던 민주노총 조합원 고(故) 이모(59·여)씨가 건물 내 휴게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심근경색에 의한 병사였다. 민주노총과 유가족은 이씨의 죽음을 과로사라고 봤다. 과중한 업무와 갑질로 인한 스트레스에 시달려왔다는 것이다. 서울대는 학내 인권센터를 통한 자체 조사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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