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스포츠 주인공이 될 수 없다? ‘다큐 인사이트’ [TV봤더니]

여자는 스포츠 주인공이 될 수 없다? ‘다큐 인사이트’ [TV봤더니]

기사승인 2021-08-13 16:57:33
세르비아와의 동메달 결정전이 끝난 뒤 김연경이 표승주와 포옹하고 있다.   연합뉴스
[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1231만 명. 시청률 조사회사 TNMS가 조사한 2020 도쿄올림픽 여자배구 준결승 브라질전 시청자 수다. 전국 시청률은 36.8%(SBS 14.6%, KBS2 12.7%, MBC 9.5%)로, 중계된 올림픽 경기들 가운데 가장 높았다. 경기 중 최고 1분 시청률은 40.9%까지 올랐다. 그러나 브라질전보다 일주일 앞서 열렸던 여자배구 A조 예선 4차전 일본전은 지상파에서 볼 수 없었다. 3사 모두 같은 날 진행된 야구·축구 중계에만 매달려서다.

왜일까. 왜 여자배구는, 여자 스포츠는 주변으로 밀려 났을까. 김연경은 “(여자배구는) 남자배구팀 뒤에 있는 이벤트 경기라는 느낌이 컸다”고 돌아봤다. 그는 물었다. “여자배구에 스타성 있는 선수가 없어서 그런 건지, 좋은 경기력이 나오지 않아서 그런 건지…?” 김연경이 던진 질문에 KBS 스포츠국 소속 박주미 기자는 답했다. “김연경 선수가 나오기 전까지 스포츠는 남자만의 것으로 여겨졌고, 여자는 주변인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컸었거든요.” 지난 12일 방송한 KBS1 ‘다큐 인사이트’ 국가대표편 내용이다.

KBS1 ‘다큐 인사이트’ 예고 화면.   KBS 제공.
‘다큐 인사이트’ 국가대표편은 박세리·남현희·김연경·김온아·지소연·정유인 등 전·현직 국가대표 선수들의 경험담을 통해 스포츠계 성차별을 직시한다. 방송을 제작한 이은규 PD는 2016년 리우올림픽 당시 스포츠국에 파견돼 일하는 동안 펄떡대는 여자 스포츠의 에너지를 처음 느꼈다. 이 PD는 13일 쿠키뉴스와 통화에서 “여자 선수들의 모습이 많이 노출되지 않아 아쉬웠다. 여자 선수들의 이미지를 모아 보는 것만으로도 힘을 받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국가대표편 방송 직후 ‘다큐 인사이트’ 시청자 게시판엔 1200개 넘는 감상평이 쏟아졌다. “이토록 마음을 울린 다큐멘터리는 처음”(전하*), “수신료의 가치를 느꼈다”(김유*) 등 호평이 줄을 잇는다.

방송은 다양한 유형으로 발생하는 스포츠계 성차별 문제를 러닝타임 1시간여 안에 압축해 보여준다. 명문 구단 첼시FC위민 소속 지소연과 ‘배구 황제’ 김연경의 입을 빌려 성별 간 임금격차를 지적하고, ‘골프 영웅’ 박세리와 핸드볼계 에이스 김온아, 한국 최초 여자 펜싱 메달리스트 남현희를 비춰 여성 지도자의 부재와 필요성을 역설한다. 수영선수 정유인에게 붙은 ‘여자 마동석’이란 표현을 냉소하며 여성의 다양한 신체를 긍정할 수 있게 한다. ‘요정’ ‘국민 여동생’ ‘미녀군단’ ‘얼짱’ ‘얼음공주’ 등 여성 선수들을 향한 별칭이 “여자는 스포츠의 주인공이 아니라는, 오래 전부터 굳어진 인식의 연장선”(박주미 기자)임을 짚어낸다.

2020 도쿄올림픽에 참가한 여자 선수는 전체의 49%다. 여자 선수 비율이 절반에 다다르기까지 125년이 걸렸다.    KBS1 ‘다큐 인사이트’ 캡처.
제1회 아테네 올림픽의 여성 참가자 수는 0명. 근대 올림픽 창시자인 피에르 드 쿠베르탱은 “여자가 올림픽에 참가하는 것은 추하고 상스럽고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한때 영국에서 남자축구보다 높은 인기를 누리던 여자축구는 1921년 ‘축구는 여성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50년 간 경기가 금지되면서 쇠락했다. 사회 전반에 만연한 성차별은 여자 선수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한 지난한 투쟁”(박주미 기자)을 이어가게 만들었다.

그 기울어진 운동장 위에서 단단한 유리천장에 균열을 내며 사상 최초 올림픽 2회 연속 여성 국가대표 감독 기록을 만든 박세리는 이렇게 말한다. “남자와 여자를 나누기 전에 갖고 있는 능력을 봐야죠. (여자들이) 해보지 못했지만 할 수 있다, 더 많은 분야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올림픽이 끝났어도, 우리가 여자 스포츠 선수들을 응원하고 지지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wild37@kukinews.com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이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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