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위상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음을 뼈저리게 느낀다. 대학언론에 속해 있는 수년 동안 유사한 위기감을 경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먹고 살기 빡빡해졌다는 이유로 곁에 있는 우리 또래들은 뉴스를 더이상 보지 않는다. 20대에게 뉴스란 SNS 피드를 내리다가 우연히 발견한 헤드라인이나 유사언론이 전부인 경우가 많다. 만약 언론인이 된다면 함께 할 세대인데 이쪽을 쳐다보지도 않으니 어쩐지 왕따를 당하는 기분이다.
대학언론을 거쳐 ‘언시생’이 된 우리는 이미 언론의 뒷면을 봤기에 마냥 언론인의 삶을 기대하고 동경할 수 없다. 오히려 종종 찾아오는 허탈함과 좌절감으로 언론사 문턱에 닿기도 전에 포기를 꿈꾸기도 한다. 십수 년간 대명사처럼 사용된 ‘기레기’라는 단순한 단어 하나, 저널리즘 위기라는 오래된 담론도 그저 쉽게 지나칠 수 없다. 이에 언론인 지망생 생활은 꿈을 꾼다기보다 현실에 적응해가는 과정에 가깝다.
지난달 언론중재법 개정안 입법이 추진되면서 언론인이란 꿈을 지속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본격적으로 들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게 무분별하게 기사를 쏟아내는 기레기를 막기 위해서라는데 엄벌에 가까운 신설조문에 과연 그 취지가 맞는지 의심된다. 이런저런 언론위기에도 간신히 붙잡았던 허탈함과 좌절감이 이참에 기승을 부리며 언론인의 꿈을 포기하라고 재촉하는 듯하다.
그래서 언론인 지망생에게 기레기는 단순한 비난이 아니다. 목도한 현실이고 미래에 대한 방향성에 영향을 주는 무거운 단어다. 어쩌면 내가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주기에 기성언론보다 나은 기자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게 만든다. 또한 언젠가 감당해야 할 정체성이 될 수도 있다는 각오를 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우리는 언론인을 꿈꾼다. 기자보다는 기레기로 불리는 것을 감수하더라도 저널리즘의 편에 서고 싶은 바람이다. 진실의 곁에 함께 있고자 하는 마음이다. 정말 ‘쓰레기’ 같은 기사는 생산하지 않겠다는 지금의 각오를 지키겠다고 언시생 생활 내내 다짐한다. 흔들리는 기성언론 속 기레기보단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는 것을 꿈꾼다. 저널리즘을 넘어 정확한 사실 전달과 현명한 콘텐츠를 고민한다.
지금 이렇게 치열하게 좋은 언론인을 꿈꾸면 우리가 기레기라는 말을 완전히 없앨 수 있진 않을까. 아니, 기레기라는 맹목적인 비난을 받더라도 묵묵히 좋은 기사만을 써내서 기레기라는 단어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커다란 사회 변화를 이끄는 언론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비록 어디선가 비난받는 직업을 꿈꾸지만 지금 그 잘못된 모습만은 답습하지 않는 언론인이 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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