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남' 현상이 착각이라고?

'이대남' 현상이 착각이라고?

이한상 고려대 교수 SNS 글

기사승인 2021-11-09 12:08:57
20대, 특히 20대 남성이 대통령선거가 다가오면서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국민의힘은 홍준표 후보의 탈락 이후 2030 세대 당원이 탈당하고 있고, 더불어민주당은 좀처럼 20대 남성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같은 20대 남성, 즉 이대남 현상이 과연 언론의 왜곡된 프레임인지, 20대 남성의 시대착오적 인식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기성세대가 미쳐 보지 못한 문제가 드러난 것인지 의견이 분분하다. 이한상 고려대 경영대 교수가 9일 이대남 현상을 계층문제로 분석한 천관율 전 시사인 기자의 글에 반박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 교수의 허락을 얻어 글을 전재한다. 글에 붙은 번호는 원문에서 옮겨 왔으며, 사진과 제목은 쿠키뉴스가 붙였다.

 
   '이대남 현상, 계급으로 전부 설명 가능한가? 문제는 성장과 기회다'(원제)


이한상 고려대 교수


1. 천관율씨가 ALOOK.SO에 '계급이 돌아왔다 - 이대남 현상이라는 착시'라는 글을 썼다. 글을 보려면 https://alook.so/posts/XBteeJ 에 가서 간단한 가입절차를 거치고 읽으면 된다.

2. 글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두명의 학자가 18~34세 남녀 약 1천명을 조사했다. 청년들의 처지를 상, 중, 하로 나누었는데, 방식이 독특하다. (1) 생계 걱정 없이 공부 전념, (2) 공부방 가졌는지 여부, (3) 정기적 용돈 받음, (4) 필요할 때 독서실 학원 다님, (5) 부모님의 학업 지원, (6) 부모의 대학진학 소망을 물어 상 33%, 중 43%, 하 19%로 분류하고 이를 '공부방 계급론'으로 부른다. 이 방식대로 청년들을 분류하고 다음의 두 문장을 제시한다. “내 미래는 내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내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기대된다.” 결과는 붙임 그림과 같다.



3. 이 결과를 바탕으로 저자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계층 격차가 발목을 잡아서 삶의 궤적이 나빠진다. 2021년 청년 문제의 본질은 ‘이대남 현상’이 아니라 가장 고전적인 계층문제다. 그게 특정 세대‧성별에서 먼저 분출했을 뿐이다.

이대남 현상이 계층의 문제라면, 젠더와 페미니즘은?

4. 우리 사회가 모든 개인에게 태어난 환경에만 전적으로 지배 받지 않고, 노력하면 이룰 수 있는 기회를 듬뿍 주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데 누구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청년들의 현재의 처지, 그리고 그에 따른 미래의 전망이 태생적 과거, 환경 요소에 많은 부분 지배 받는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그래서 국가가 개입해 사회적 이동성을 강화하고 이 글에 나오는 하층 청년들의 공부방을 제공해야 한다는 점에 우선 동의한다는 점을 밝힌다.

5.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과 그 바탕이 되는 연구에 대해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2021년만 문제인가? 도대체 지구 역사상 어느때 어느곳에 청년들을 상, 중, 하로 나누어 위와 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 있을까? 아마도 전쟁때, 그리고 신분제 사회라 신분상승을 체념해야 하는 사회 정도가 아닐까? 저 연구가 계층이라는 단일 요소를 가지고 2021년의 한국사회가 과거에 비해서, 혹은 한국사회가 외국에 비해서 더 사회적 이동성이 떨어진다는 주장을 하려면, 벤치마크가 필요하다.

솔직히 난 저 그림을 보고 공부방도 없이 부모가 도와주지도 않고 대학을 가기도 바라지 않는 청년 37%와 42%가 “내 미래는 내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내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기대된다.”라고 대답한 것이 신기할 정도다. 야, 사회가 부모가 해준 것 하나도 없는데 좌절하지 않는 청년들이 많구나! 기특하다. 1987년에도 이랬을까? 1997년에도 이랬을까? 2007년에도 이랬을까? 미국도 이런가? 독일도 이런가? 스웨덴도 이런가? 알고 싶다. 그런 벤치마크 없는 숫자 제시는 공허하다.

6. 이 글을 쓴 사람은 계급이 문제라고만 했지 어떤 대책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솔직히 계급이 문제인데, 혁명 말고 무슨 답이 있겠나? 하지만, 그래도 부르주아 자본주의 국가에 살면서 개량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면 저 하층으로 분류된 사람들에게 국가가 모든 역량을 써서 집중적으로 공부방을 만들어 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천관율씨의 글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주로 소위 진보진영이라는 점, 그리고 그 진보진영이라는 곳이 2021년 복지를 두텁게 하자는 합리적인 사람들을 팽개치고 전국민에 푼돈을 나누어주자는 반계급적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사람들, 그리고 억강부약-대동세상-공평한 파멸을 바라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은 참 아이러니다.

천관율씨는 20대 사이에서도 공부방을 가진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의 태도가 다르다며 계층 문제가 본질이라고 분석했다. 사진은 한 가구회사의 공부방 가구 세팅.

일자리를 둘러싼 경쟁 구도가 바뀌었다

7. 이제부터 내가 하고 싶은 얘기다. 천관율씨는 현사태가 계급 하나의 문제라고 하면서 ‘이대남’은 엉뚱한 문제제기를 한다고 한다. 반만 맞고 반은 틀렸다. 왜 젠더 이슈, 온라인세상, 페미니즘의 정치화가 계급 문제에 섞이지 않았겠는가?

8. 쉬운 예를 위해 극단적 단순화를 해 보겠다. 1987년에 100명의 남녀 청년이 있고, 사회가 25개의 좋은 일자리와 25개의 그럭저럭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었다고 하자. 1987년에는 극단적으로 말해 남자가 50개의 일자리를 독식하고 50쌍의 부부가 생겨 사회가 돌아 갔다. 일부 사회에 진출한 여성들도 이러저러한 남녀차별과 환경적 제약으로 커리어를 이어가지 못했다. 이게 좋다는 게 아니라 대략 그랬다는 것이다.

2021년에도 100명의 청년들이 있고 25개의 좋은 일자리와 25개의 보통 일자리가 있다고 하자. 그런데 2021년에는 25개의 좋은 일자리를 12명의 똑똑한 여성과 13명의 똑똑한 남성이 차지한다. 25개의 그저 그런 일자리는 10명의 여성과 15명의 남성이 차지한다. 졸지에 남성 22명이 먹고 살 방도가 없어진 것이다. 여권 신장의 결과다. 좋은 일자리를 차지한 저 여성 12명이 상, 중, 하 중 어떤 계층이겠나? 다른 아무런 요소가 없다 하더라도 1987년의 50쌍보다 부부가 적게 만들어질 것은 자명하다.

9. 그런데 여기 트위스트가 있다. 페미니즘의 정치화와 온라인 환경이다.

우선 온라인. 우선 과거에는 계급 격차가 있어도 소위 끼리 끼리 문화 때문에 어울릴 일도 없고 비교할 일도 적었다. 그런데 요새는 전국의 모든 청년들이 상류층이 어떻게 사는지 실시간으로 본다. 그러니 당연히 알랭 드 보통이 '불안'에서 쓴 것처럼, 현재의 내 지위가 자유주의 세계에서 능력주의 때문에 그저 내 탓이 되어 버리는 불안의 문제는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SNS가 청소년의 우울감과 자살율을 높였다는 건 철지난 이야기가 되었다.

10. 게다가 페미니즘의 정치화라는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요소가 있다. 1982년생 김지영을 읽어보면 한 여성에게 일어나면 안되는 일들의 종합선물세트가 펼쳐진다. 물론 그러한 에피소드들은 사실이고 1987년에 대학을 졸업한 여성에게는 그게 진실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기반으로 피해자서사가 만들어지고, 그래서 당한 것을 갚아주어야 한다거나, 당했기 때문에 받을 권리가 있다, 그래서 촘촘히 가해지는 여성할당과 여성우대, 그리고 결혼은 미친짓이다라는 정서를 일부 정치세력이 이용해 자원과 권력을 독점한 것은 사실이다.

여성우대정책들은 2021년 대학을 졸업하는 여성들의 생애 주기 전반을 생각해 보면 아직도 타당할 수 있지만, 위에서 말한 20대 남성 입장에서 보면 미치고 환장할 일일 수도 있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1987년에 태어났으면 괜찮은 직장을 꿰찰수 있었던 남성 12명이 더 좋은 환경에서 자란 똑똑한 여성 12명에게 자리를 내주는 판인데, 본인보다 더 형편이 나은 여성들에게 주어지는 여성할당 여성우대가 왠 가당치 않은 소리냐라고 하는 걸 이해하지 못할 바도 아니라는 것이다.

소설로 나와 영화화된 82년생 김지영은 한국 사회에서 40대 여성이 겪는 불평등을 다뤘다.

설거지론, 퐁퐁남, 김지영의 비극


11. 사실 1982년생 김지영의 큰 해악이 결혼은 미친짓이다라는 생각을 여성들에게 널리 전파한 것이라면, 이의 데칼코마니가 소위 설거지론이다. 이제는 젊은 남성들도 결혼은 미친짓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1982년생 김지영과 설거지론-퐁퐁남의 비극은 그것이 정말 먹고 살만한 좋은 직장 25개를 가진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대남의 공정론은 12개의 직장을 여성에게 뺏긴 남자들이 주인공이라고 생각한다. 설거지론-퐁퐁남은 직장마저 가지지 못하는 22명의 남자들이 만들어 내는 고통의 절규이자 여우의 신포도론이다.

1982년생 김지영을 읽고 결혼은 미친짓이라며 남성을 혐오하는 사람들은 결코 좋은 직장을 가진 13명의 여성들이 아니다. 이 게임에서 가장 패자는 직장을 가지지 못하는 28명의 여성이다. 그들은 지금 한국에서 결혼을 하기도 싫고 할 수도 없는, 그래서 자살증가율이 가장 높고 가장 보호받아야 하는 그룹이라고 생각한다. 20대 남성들은 더 이상 호구짓을 하지 않으려 한다. 남성들의 책임감을 극렬 페미니즘이 일정부문 앗아갔다고 본다.

12. 이야기가 또 삼천포로 빠지려고 하니 이쯤에서 정리하자. 계급론? 언제는 계급 아니었나? 그런데 이대남 스토리는 실체가 있다. 여권은 신장되었다. 온라인으로 삶이 실시간 비교된다. 본인보다 공부방 환경이 좋은 여성들에게 왜 할당제니 여성우대를 해야 하는지 이론적으로 생애주기 전반의 관점에서 따지기에는 20대 남성들 중 상당수는 그냥 절박하다. 그게 이대남 스토리의 밑바탕에 깔린 정서인데, 이게 실체가 없다?

좋은 일자리 못 만들고 푼돈이나 나누겠다는 기성세대에 책임 있다

13. 이게 다 왜 생기는 일인지 근원을 생각해 보자. 젊은이들의 갈등이 계급 때문인가? 아니면 그들에게 50개가 아닌 100개의 일자리를 제공하지 못한 기성세대의 잘못인가? 생각해보면 지금의 20대는 남녀 불문 대한민국 최고의 스펙을 가진 똑똑한 젊은이들이다. 이들에게 에너지를 맘껏 분출할 수 있는 100개의 기회, 100개의 일자리를 주었다면 지금처럼 이 친구들이 남녀 갈등을 하고 있을까? 아마 신나게 직장 다니고, 열심히 짝 찾아서 연애하고, 그 어떤 세대보다 행복하게 지낼 것이다.

모든 문제가 성장을 일구어 내지 못하고, 좋은 일자리 좋은 기회를 만들지 못한 기성세대의 잘못이다. 결론은 성장을 위한 기회와 일자리를 만들어 젊은이들이 에너지를 신나게 발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장기적인 대책과는 별도로 현재의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국가가 공부방이 없는 저 분류에서 ‘하’인 청년들에게 두텁고도 집중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대책이라고 푼돈을 나누어 주겠다가 시대의 담론이라니.

14. 젊은 청년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원인은 계급도 아니고, 성별도 아니다.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가진 능력자들인 여러분들이 실컷 뛰놀고 에너지를 발산하며 성장할 수 있는 일자리와 기회를 주지 못한 못난 기성세대다. 그래서 말한다. 계급 타령, 젠더 갈등도 좋지만, 진짜 원인이 성장의 기회라는 것을 직시하고 기성세대에 요구하라. 일자리를 만들어 내라. 경제를 성장시켜라. 미친 집값을 잡아라. 애 좀 낳아 키우기 좋게 만들어라. 애 낳으면 나라가 좀 알아서 미친 사교육비 필요 없게 공부방과 선생 좀 붙여라. 그러려면 20대 남녀가 싸울 일이 아니라 힘을 합쳐서 무능한 586들에게 당신들이 편하게 산 세상만큼 우리도 좀 먹고 살게 해달라고 짱돌을 던지시라.

하버드대학 석좌교수가 쓴 이 책은 여성의 임금이 남성보다 적은 이유를 심층적으로 탐구, 노동시장의 구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이끌어 낸다.


15. 마지막으로 이대남들에게 한마디 한다. 하버드 경제학과 클라우디아 골딘이 쓴 '커리어 그리고 가정'을 한번 읽어 보시라. 여성을 배려하는 많은 정책은 여러분보다 훨씬 똑똑하고 좋은 집안에서 큰 여성들을 위한 특권으로 만들어진게 아니다. 가정이 있는 여성은 아무리 열심히 하려고 해도 근본적으로 여러분들을 당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러한 제도들은 미래의 여러분의 아내와 딸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아직도 여성들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세팅이 대한민국이다. 여러분들의 분노와 스트레스도 이해하지만 많은 정책들은 남자 여자가 공존하기 위해 만들어진다. 갈등하기 보다는 일자리와 기회를 더 많이 만들어 내라고 청춘남녀가 손잡고 아저씨, 아줌마들을 조지기 바란다. 이상.
김지방 기자
fattykim@kukinews.com
김지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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