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배해선이 사람답게, 재밌게 사는 법 [쿠키인터뷰]

배우 배해선이 사람답게, 재밌게 사는 법 [쿠키인터뷰]

기사승인 2021-12-15 06:00:16
배우 배해선.   버드이엔티 제공.

‘배우 아닌 인간 배해선으로 살아남기.’ 배해선은 최근 자신의 행보를 이렇게 표현했다. 올해에만 여섯 작품에 참여했고, 얼마 전 출연한 티빙 ‘해피니스’, 웨이브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이하 이상청), JTBC ‘구경이’는 세 작품의 결도, 공개된 플랫폼도 모두 다르다. 최근 만난 배해선에게 다작이 힘들지 않았냐고 묻자 “내년이 대운이라는데 운을 당겨썼나 보다”며 씩 웃었다.

각 작품에서 그가 보여준 얼굴은 다채롭다. ‘해피니스’에서는 이기적이고 위선적인 속물 동대표, ‘이상청’에서는 야망이 가득한 주체적인 정치인, ‘구경이’에서는 연쇄살인마의 이모를 연기하며 극에 긴장감을 더했다. 활약상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그는 “올해 열심히 하긴 했다”며 으쓱해 했다. 세 작품이 동시기에 방송된 건 예상치 못한 일이었지만, 뜨거운 반응이 일자 행복해졌단다.

“세 작품 모두 마음에 꼭 들었어요. ‘이상청’은 대본이 좋은 데다 함께 작업해보고 싶던 윤성호 감독님이 연출을 맡았거든요. ‘구경이’ 역시 이정흠 감독님의 연출이 새로웠고요. ‘해피니스’는 안길호 감독님 팬이어서 안 할 이유가 없었죠. 안 감독님은 사전 미팅 때 저를 보고 캐릭터와 잘 어울릴지 걱정하셨대요. 근데 어느 순간 제 눈빛을 보곤 확신을 가졌다고 하더라고요. 정말 좋은 기회들이었어요.”

웨이브 오리지널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캡처.

연기를 향한 배고픔이 배해선을 움직였다. 역할 비중과 상관없이 다양한 장르와 새로운 현장에 대한 갈증이 늘 컸다. 웨이브 단막극 ‘일주일 만에 사랑할 순 없다’에 참여한 것도 그 연장선이었다. “드라마, 영화 가릴 것 없이 다양성을 갖고 싶었다”고 설명하던 그는 “내 색깔을 찾아야 더 많은 작업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힘주어 말했다. ‘해피니스’ 오연옥과 ‘이상청’ 차정원은 그의 연기 고민이 고스란히 묻어난 캐릭터다.

“‘이상청’ 차정원은 정말 매력적이었어요. 정치인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접근했죠. 미묘한 뭔가를 가진 인물이 주인공을 괴롭히는 건 너무 뻔하잖아요. 주인공을 역경에 처하게 하는 것처럼 보여도 실상은 여우처럼 보이는 곰이라 생각했어요. 이런 제 해석을 감독님 역시 동의해주셨죠. ‘해피니스’ 오연옥은 양면성을 가진 소시오패스 느낌을 보여주려 했어요. 교양 있는 척하면서도 목적의식이 뚜렷한 사람 같았거든요. 우아하게 말하다가도 곧바로 돌변해 욕설을 내뱉는 게 오연옥이라 생각했죠.”

배해선은 ‘해피니스’로 그려진 인간군상에 흥미를 느꼈다. 전염병으로 인한 불안과 고립된 환경에서 오는 공포감. 이로 인해 도덕성을 잃고 불안정해지는 인물들을 보며 연기 욕심이 더 돋아났단다. 그는 “‘해피니스’는 주인공 한두 명이 끌고 가는 게 아닌, 모든 인물이 빛나야 살 수 있어서 더 재밌었다”면서 “평안한 상태와 극단적인 전시 상황이 교차하는 게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평했다. 이 같은 매력을 극대화한 공은 연출진에 돌렸다. 안길호 감독에 대해서는 “부지런하고 섬세해서 결과물이 잘 나올 수밖에 없겠더라”며 혀를 내둘렀다. ‘해피니스’, ‘이상청’, ‘구경이’ 모두 그를 흡족하게 한 결과물들이다.

티빙·tvN 드라마 ‘해피니스’ 스틸컷.   tvN 제공.

열띤 모습으로 연출 미학을 논하던 배해선은 연기 이야기가 나오자 더욱 진중한 눈빛으로 지론을 펼쳤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만 모르고 연기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하던 그는 “연기란 알수록 어렵고 힘들다”고 토로했다. ‘진짜’를 표현하기 위해, 그는 매번 진심으로 캐릭터에 임한다. 대본에 없는 캐릭터의 전사(前史)를 구상하며 밑바탕을 다진다. “기본이 갖춰져야 현장의 돌발 상황에 더 유연히 대처할 수 있다”고 역설하던 그는 “매체 연기 경험이 적은 내가 고민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저는 일상에 지장이 갈 정도로 연기를 생각해요. 그렇게까지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그런 건 딱히 없어요. 멈추지 못해서 열심히 달릴 뿐이거든요. 그래야 할 때니까요. 이렇게 살기 위해 스스로 방향성을 만들어 왔어요. 30대 중반까지는 저를 과도하게 몰아붙였죠. 쉬는 시간이 없었어요. 사람 배해선의 시간도 배우 배해선에게 뺏긴 거예요. 자다가도 몽유병처럼 일어나 연기 연습을 할 정도였거든요. 힘들지만 재밌던 경험이었죠.”

연기에 대해선 늘 활화산처럼 불타오르는 배해선이다. 연극 무대에서 활동하던 때, 조각가 역을 맡으면 미리 공연장을 찾아 찰흙부터 빚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무대에서 거짓말을 하기 싫어서 그렇게 했어요. 준비된 찰흙으로 하면 됐던 건데….” 당시를 회상하던 그는 덕분에 배우로서 새 기준을 세울 수 있었단다. 그때 배우 배해선이 아닌, 사람 배해선을 되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갈 동력을 얻었다.

“배우 배해선에 몰입할 시간은 언제나 부족하더라고요. 그래서 사람 배해선이 좋아하는 걸 찾아주자 싶었어요. 일과 삶을 분리하기로 마음먹으니 새로운 것들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사실, 전 언제나 저를 신인이라 생각하거든요. 뮤지컬 무대에서 전성기를 보낼 때도 연기에 늘 갈증이 있었어요. 깊게 파고들고만 싶었죠. 공동 연출도 해보고, 가사도 쓰고, 안무도 만들고, 티켓도 팔아보고… 그렇게 해보니 배우로 성장할 여지가 아직 많다고 느꼈어요.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면서 다시 새 마음으로 임할 수 있었어요.  어느 위치에서 무엇을 하든 상관없어요. 늘 마음 한 쪽에 뜨거운 횃불을 간직하면 되는 거죠. 어떤 작품을 만나도 그에 맞는 옷을 입고, 그 틀에 가득 차는 물 같은 사람이 될 거예요. 그러면 재미있게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처럼요.”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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