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하니’와의 짧은 만남을 기억한다. 위축되고 조심스러워 보였다. 그룹 EXID 멤버이자 역주행의 아이콘으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시기였다. 잊고 있던 짧은 만남은 JTBC ‘아이돌 : The Coup’(이하 아이돌)에서 제나 역을 맡은 그를 보자 선명히 되살아났다. 힘든 길을 씩씩히 헤쳐 나간 끝에, 불안해하던 EXID 하니에서 당찬 배우 안희연으로 거듭난 모습이었다. 최근 만난 그에게 당시의 일을 이야기하자 “그땐 정말 그랬다”며 호쾌히 웃었다.
안희연에게 ‘아이돌’은 특별한 경험이다. 그는 망해가는 아이돌 그룹 코튼캔디 리더 제나를 연기했다. 그룹 EXID 하니로 활동하던 시절을 돌아보게 된 시간이었다. “제나와 하니를 분리하려 애썼는데, 그럴 필요가 없겠더라고요. 제나가 하니고, 하니가 제나였으니까.” 후련한 얼굴로 진지하게 말하는 안희연에게 고민과 불안은 없어 보였다.
“처음에는 지금껏 하지 않았던 스타일링을 하려 했어요. 사람들이 제나를 하니로 보면 안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 왜 이런 고민을 하나 싶더라고요. 제나는 하니일 수도 있고, 이 업계에서 일하는 아이돌이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역발상으로, 저를 주목받게 한 직캠 영상 속 스타일링을 시도해봤죠. 제나와 가장 닮은 시기의 제 모습을 반영해서 연기하려고 했어요. 예전에 출연했던 방송부터 그때 썼던 일기장까지, 많은 것들을 돌아봤어요.”
‘아이돌’의 엔딩은 상징적이다. 코튼캔디는 ‘1위하면 해체하겠다’는 파격적인 공약을 내세웠다. 결국 1위는 하지 못했다. 팀 해체 후 코튼갠디 멤버들은 각자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제2의 인생을 산다. 안희연은 이 엔딩에 끌려 ‘아이돌’의 긴 여정을 달려왔다. 안희연이 하니로서 전하는 위로인 셈이다.
“아이돌은 끝을 염두에 둬야 하는 직업이에요. 어릴 때 연습생 생활을 시작해 이 일만 해온 사람들이니 끝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고요. 하지만 ‘아이돌’은, 끝을 새로운 시작이라고 말해요. 연어 같은 드라마인 거죠. 모두의 바람처럼 코튼캔디가 1위를 하진 못했지만,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정말 좋았어요. 누군가가 이 드라마를 보고 조금이라도 힘을 얻었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성공이다 싶어요.”
안희연은 ‘아이돌’을 통해 다시 팀의 일원이 됐다. 그리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우리’라는 소속감이 소중하다고 느끼면서도 ‘나’보다 ‘우리’가 앞서면 안 된다는 걸 배웠어요.” 진지한 얼굴로 말을 잇던 그는 “모르는 걸, 잊고 있던 걸 깨닫게 해서 연기가 재밌다”며 활짝 웃었다. 그에게 연기는 배움의 통로다.
“저는 원래 독립적인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그룹 생활을 하며 ‘우리’와 ‘함께’의 가치를 배웠어요.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걸 EXID로 활동하며 깨달았거든요. 저는 ‘우리’를 맹렬히 사랑했고, 무조건 믿었어요. 제게 새로운 세상을 알려줬으니까요. 하지만 ‘아이돌’에서 제나를 연기하며 ‘나’와 ‘우리’를 분리해서 생각하게 됐어요. 연기로 다른 사람의 삶을 살며 시야가 넓어진 거죠. 연기를 시작하고 나, 타인, 관계, 세상 등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어요. 이게 연기의 맛이겠죠? 하하.”
부침을 겪은 끝에 스타로 도약했다. 꿈같은 일이었지만, 마음고생도 심했다. 방송 중 갑자기 눈물을 쏟아 걱정을 사기도 했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머리를 싹둑 자르기도 했다”며 당시를 떠올리던 안희연은 “힘듦을 이겨낸 건 EXID 멤버들 덕분”이라며 고마움을 표했다. 혼란스럽던 시간을 지나, 안희연은 이제 EXID 하니를 넘고 배우로 토대를 다졌다. 올해에만 네 작품을 선보이며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힘들진 않냐고 묻자 그는 다부진 얼굴로 “지친 적도 있지만 더 열심히 해야 할 때”라며 각오를 다졌다.
“제가 배우로서 더 잘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알 수 있던 시간이었어요. 힘든 순간은 언제나 있어요. 하지만 하고 싶다는 동기만 확실하면 되더라고요. 그러려면 저를 사랑해야 하고… 그래서 일과 삶을 분리하기로 했어요. 우선순위는 저 자신이고요. 예전에는 큰 사랑을 받으면서도 삶의 주인공이 아닌 것 같다고 늘 생각했어요. 이제는 달라요. 뭔가 계획하는 것보다 제가 하고 싶은 것과 좋아하는 것에 집중할 거예요. ‘무엇을’보다는 ‘어떻게’ 하는지가 더 중요해졌거든요. 무엇이든 저는, 즐겁고 재미있고 행복하게 할 거예요.”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