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트릭스: 리저렉션’ 18년 만에 다시 빨간약 먹었더니 [쿡리뷰]

‘매트릭스: 리저렉션’ 18년 만에 다시 빨간약 먹었더니 [쿡리뷰]

기사승인 2021-12-25 06:41:02
영화 ‘매트릭스: 리저렉션’ 포스터.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영화 ‘매트릭스’(감독 워쇼스키 형제) 1편의 이야기가 반복된다. 트리니티(캐리 앤 모스)가 요원들에게 쫓기는 장면이다. 하지만 조금 다르다. 토끼 문신을 한 벅스(제시카 핸윅)는 이를 지켜보며 왜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는지 의문을 갖는다. 영화 ‘매트릭스: 리저렉션’(감독 라나 워쇼스키)(이하 ‘리저렉션’)을 바라보는 관객들과 같은 의문이다. 왜 ‘매트릭스’는 3부작을 마무리한 뒤 18년이 지나 다시 돌아왔을까.

‘리저렉션’은 ‘매트릭스’라는 유명한 3부작 게임을 만든 게임 디자이너 토마스 앤더슨(키아누 리브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사장은 ‘매트릭스 4’를 만들라는 지시를 하고, 카페에선 오랫동안 짝사랑한 티파니(캐리 앤 모스)를 마주친다. 회사에서 누군가의 문자를 받고 들어간 화장실에서 모피어스(야히아 압둘 마틴 2세)를 만난 앤더슨은 요원들의 공격을 받으며 뭔가 잘못됐다고 느낀다.

‘리저렉션’은 ‘매트릭스 3’의 뒷이야기를 전하는 후속편이 아니다. 부활(Resurrection)을 뜻하는 제목처럼 과거 이야기를 현재로 불러내 재창조했다. 영화는 지금까지 보여준 ‘매트릭스’ 시리즈가 모두 게임이었다는 설정에서 시작해 다시 네오에게 빨간 약과 파란 약을 내민다. 3부작에서 사망한 네오와 트리니티를 다시 영화 속으로 불러와 허상과 진실, 정해진 운명과 자유, 그리고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지금까지와 다른 방식으로 풀어낸다. 그리고 마침내 3부작과 ‘리저렉션’은 연결된다.

영화 ‘매트릭스: 리저렉션’ 스틸컷.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모호하고 이해하기 어려워야 ‘매트릭스’ 답다는 극 중 대사처럼, ‘리저렉션’은 한층 더 난해해졌다. 영화의 스토리를 따라가고 있다는 믿음은 쉽게 깨진다. 인물과 배경, 주제와 이전 시리즈의 장면들을 모두 기억해도 재조합해 펼쳐내는 영화의 속도감을 따라잡기 쉽지 않다. 정신없이 끌려다가 보면 인상적인 대사와 인물들의 선택, 멋진 영상과 액션이 뒤섞여 기억 속으로 들어온다. 누군가에겐 영화의 불친절한 태도가 불쾌하겠지만, 누군가에겐 그 자체를 ‘매트릭스’로 느끼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체험의 시간이 되겠다. 전작의 장면과 설정에서 소재를 가져온 대목에선 짧게 과거 영화 속 장면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3부작을 감상하지 않았으면 이해하기 힘든 영화다.

결국엔 사랑에 관한 영화다. ‘리저렉션’은 전개하는 다양한 이야기와 겹겹이 쌓인 세계관 한가운데에 사랑이 있다는 걸 잊지 않는다. 네오라는 한 명의 인간을 중심으로 그를 둘러싼 세계가 통념과 다르다는 통쾌한 역설을 보여준 전작들과 결이 달라지는 지점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와 인간의 의지가 곧 사랑에서 시작된다는 메시지는 영화에서 어떤 무엇보다 강력한 무기다. 그들이 보여주는 에너지는 하늘을 무지갯빛으로 물들일 기세다. 20여년이 지나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라진 감독의 성숙함이 영화에 그대로 담겼다.

지난 22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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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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