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는 무대 위 댄서들을 바쁘게 좇으면서도 손가락은 휴대폰 자판 위를 하염없이 서성였다. 뉴니온이냐 턴즈냐, 그것이 문제로다. Mnet ‘스트릿댄스 걸스 파이터’(스걸파) 최종회가 방송된 지난 4일 밤. 결국 결승에 오른 여섯 팀 모두에게 차례로 투표한 뒤에야 결과 발표를 기다리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최종 우승 크루는…축하합니다, 턴즈입니다!” 진행자 강다니엘이 외치자 턴즈를 이끌던 조나인은 눈물을 터뜨렸고, 객석에선 환호가 터져 나왔다.
‘스트릿 우먼 파이터’ 속 여성 댄서들이 보여준 불굴의 열정은 다음 세대로 고스란히 계승됐다. 지난해 11월부터 두 달 간 내달린 ‘스걸파’가 그 증거다. 여성 청소년 댄서들의 춤 경연을 다룬 이 프로그램 시청률은 최고 2.3%(닐슨코리아, 전국유료방송가구 기준)까지 올랐다. 그룹 방탄소년단 멤버 RM와 정국도 ‘스걸파’ 팬을 자처했다. 11일 서면으로 만난 김나연 PD는 “춤을 향한 10대들의 순수한 열정이 대단했다. 그들이 가진 간절함과 열정이 춤으로 드러나 보는 이의 마음도 울린 것 같다”고 말했다.
김 PD는 ‘스우파’를 보며 “댄서들의 열정과 진정성, 서로에게 보내는 격려와 존중”에 감명 받았다. ‘스우파’를 연출한 최정남 PD와는 ‘댄싱9’ 시리즈를 함께 제작하며 ‘댄스 DNA’를 나눈 사이다. 김 PD는 “‘스우파’가 그랬듯 ‘스걸파’에서도 춤이 가진 매력과 댄서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조명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첫 회에서 심사위원 겸 멘토로 나선 ‘스우파’ 리더들은 독설 대신 찬사를 쏟아낸다. “너희 ‘찐’이구나!” “놀 줄 아는 녀석들이네” “언니들이 도와줄게.” 참가자들 실력이 뛰어난 덕에 나온 반응이지만, “‘스걸파’는 냉혹한 평가를 위한 프로그램이 아니”라는 제작진의 소신을 반영한 연출이기도 하다. 김 PD는 “옆에서 지켜본 여고생 댄서들의 괴물 같은 실력과 안무 완성도는 ‘스우파’ 댄서들과 견줄 정도로 대단했다”며 감탄했다.
여고생 원톱 크루를 가린다면서 “평가를 위한 프로그램이 아니”라니. 사실 제작진은 일찍부터 “‘스걸파’는 성장 리얼리티”라고 강조해왔다. 그 안에서 참가자들은 이글대는 눈빛으로 승부욕을 불태우다가도, 배틀이 끝나면 상대를 부둥켜안고 서로가 느낀 압박감을 위안했다. 김 PD는 “배틀 규칙을 잘못 이해한 참가자가 실수를 인정하고 상대에게 사과한 모습도 신선했다”고 돌아봤다. 탈락 후 ‘스우파’ 시즌2에 섭외해달라고 외친 박혜림과 “이제 브레이킹을 연습할 때”라며 산뜻하게 결과를 받아들인 신지윤도 인상적이기는 마찬가지. 김 PD는 “경연에서 탈락해도 유쾌하게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친구들”이라고 했다.
‘스걸파’가 거둔 최고의 성취는 뭐니 뭐니 해도 ‘소녀’의 새로운 얼굴을 들췄다는 점이다. Mnet ‘프로듀스101’ 시리즈 등 아이돌 서바이벌이 정형화한 소녀상에 ‘스걸파’는 기분 좋은 균열을 냈다. 다양한 외모와 체형을 가진 10대 여성들이 흥에 겨워 즉석에서 댄스 배틀을 벌이고, 그 모습에 소리 지르며 환호한다. 누군가는 심각한 표정으로 팀을 이끌지만, 누군가는 익살스럽게 모두를 웃긴다. 참신하고 진귀한 광경이다. 음지에서 오염된 ‘여고생’ 이미지를 강인하고 유쾌한 얼굴로 씻어낸 점도 반갑다.
다만 K팝 안무 창작 미션 당시 벌어진 잡음은 제작진에게 성찰을 독촉한다. 이 미션 규칙은 각 팀 퍼포먼스에 들어갈 안무 일부를 경쟁 상대 쪽에서 짜는 것. 경쟁 팀끼리 안무를 교환했던 ‘스우파’ 미션을 비틀어 더티 플레이를 유발했다. 클루씨는 이 미션에서 경쟁 상대인 스퀴드에게 우스꽝스러운 안무를 넘겨줬다가 호되게 비난받았다. 미션 규칙에 함정을 파놓고도 한 발 물러서 있던 제작진은 참가자 부모님이 나선 뒤에야 “건강한 경쟁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권영찬 CP는 “K팝 안무 창작 미션은 각 크루 강점을 보여주기 위해 기획됐다. 이 과정에서 보내주신 여러 의견들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했다.
‘스걸파’가 끝난 자리는 ‘남자들 싸움’이 채운다. Mnet은 ‘스우파’ 남성 버전인 ‘스트릿 맨 파이터’를 올 여름 방영할 예정이다. Mnet 걸그룹 경연 프로그램 ‘퀸덤’이 보이그룹 버전인 ‘킹덤’을 거쳐 ‘퀸덤2’로 돌아오듯, ‘스맨파’ 이후 ‘스우파2’가 돌아오길 기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권 CP는“실력 있는 여자 댄스 크루가 모일 수 있다면 ‘스우파2’ 제작도 가능하다고 본다. 만약 ‘스우파2’를 만든다면 자신들을 불러달라고 한 아마존 크루와 우승팀인 턴즈 크루 등이 모두 섭외 대상이 될 것 같다”며 웃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