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돌이킬 순 없어요. 사실상 직선제는 끝난거 같아요."
(김상호 대구대총장 해임 판결 이후 학교 관계자의 말)
지난 1월 21일, 대구지법이 김상호 대구대총장 해임 처분이 정당하다고 판결하며 1년 가까이 지속된 총장 해임 사태가 일단락됐다. 입시 실패 책임을 지고 사퇴한 총장에 대학 법인은 총장이 학교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해임 처분을 했고, 이에 김 총장이 불복해 법원의 기각 판결을 받아내며 잠시 총장직에 복귀했으나, 그 끝은 불명예스러운 퇴진이었다. 결국 작년 3월, 입시 실패 책임을 지고 사퇴한 대구대총장은 해임으로 임기를 마치게 됐다. 우리 대학서 3년간 대학 언론으로서 활동하고, 언론 기관을 운영해온 나로서는 무척 복잡한 속내다.
학내 수습기자 시절 처음 만났던 김상호 총장
내가 처음 김 총장을 만난 것은 2018년, 대학에 갓 입학한 새내기 막내 수습기자 시절이었다. 당시 총장이던 홍덕률 한국사학진흥재단 이사장은 총장 임기 만료를 몇 개월 앞두고, 자진 사퇴했다. 이후 그는 2018년 지방선거 대구교육감에 출마했으나, 3위로 낙선했다.
총장 공석으로 치러진 직선제 선거에 입후보한 총장 후보자들의 소견 발표회에 취재를 간 것. 그것이 김 총장과 나의 첫 만남이다. 다른 입후보자들은 팸플릿, 자료 등을 구비하여 나눠주는 것에 비해 김 총장은 달랑 A4 용지에 자신의 소견문을 인쇄한 것에 그쳤다. 솔직히 말하면 김 총장은 취재 기자인 내 입장에선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지극히 평범했다.
그러나, 선거 결과는 김 총장의 당선이었다. 나중에 아는 교수님께 물어보니 "김 총장은 지난 선거에도 출마했으며, 이번 선거는 교수 사회 내부서도 양파전(兩巴戰)이었는데 그중 한 사람이 김 총장이었다"고 했다.
본관 떠난 총장.. 눈에 띄지 않던 김 총장
2018년 5월, 4년의 대학 총장 임기를 시작한 김 총장은 학생들 입장에선 별로 눈에 띄지 않던 총장이었다. 학생들 사이에선 우리 대학 총장의 이름도, 얼굴도 모르겠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장 대학 언론에서도 총장이 뭘 하고 있는지 잘 모르는 판국이었다. 특이점이라곤 20층 규모의 본관에 위치한 총장 집무실을 떠나 저 멀리 동편에 위치한 생환대 건물에 총장 집무실을 이전했다는 정도였다.
전임 총장이던 홍덕률 전 총장은 학생들과 이벤트성 소통에 능했던 인물이었다. 학생들 앞에 자주 나타나 행사에 참여하기도 했으며, 간식 행사에서 직접 활동했다. 그러나, 김 총장은 우리 학생들 앞에 나타나 무엇을 했다는 기억이 사실상 전무하다. 그래서 "전임 총장은 얼굴이라도 보여줬는데, 지금 총장은 있는지도 모르겠다"며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재임 기간 학내 언론과 가진 대면 인터뷰는 단 2번
취임 직후 김 총장을 만났다. 공강 시간 편집국 사무실에 홀로 앉아있었는데 우리 사무실 문 밖으로 사람 몇 명이 서성거리더니 문을 두들겼다. 문을 여니 김 총장이 밖에 서있었다. 대학 총장이 편집국 사무실에 직접 방문했는데, 이를 맞이하는 사람이 막내 수습기자인 나 혼자 뿐이었다.
김 총장에게 나를 소개하고, 소견 발표회 때 취재 갔던 기자임을 밝혔다. 그러면서 당선 축하 인사말을 전했다. 총장은 나에게 화답하며 우리 편집국 사무실을 둘러보고 나갔다. 사무실을 빠져나가려는 김 총장에게 나는 당돌하게 "우리 학내 언론에 관심 많이 가져주시고, 신문 지면 발행 기회를 늘려달라"고 요구했다. 김 총장은 웃으며 "꼭 살펴보겠다"고 했다.
그러나, "꼭 살펴보겠다"던 김 총장은 우리 언론과 만난 일이 별로 없다. 직무 정지 기간 포함 재임 3년 10개월간 학내 언론과 가진 전격 대면 인터뷰는 단 2번이었다. 2018년 여름, 2020년 겨울이었다. 2019년에는 영자 신문사가 지면 발행을 위해 총장 대면 인터뷰 기사를 실으려고 했으나, 인터뷰 요청에 대한 총장 비서실의 회답이 미뤄지고 미뤄지다 무산된 사례가 있다.
마지막 만남이 된 2020년 11월 겨울 인터뷰
지난 2020년 11월, 김 총장과 나는 총장 집무실에서 만나 인터뷰를 했다. 그는 동편 캠퍼스 생환대 건물에서 다시 본관 총장 집무실로 복귀했다. 나는 인터뷰 첫 질문으로 "2년 만의 학생 언론 인터뷰이다. 학생 언론에 소홀했던 부분이 없었는지"라고 물었다. 김 총장은 내 걱정과 달리, "자신이 소홀했던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며 시인한 뒤, "앞으로 자주 만나 소통하겠다"고 약속했다.
2년 만에 이뤄진 학생 언론과 대담은 질문 30개가 넘게 오고 가며 1시간 넘게 진행됐다. 분위기는 무거우면서도, 나름 화기애애했다. 총장은 우리 언론의 질문에 성실히 대답했고, 나에게 "학교 내부 사정을 잘 꿰고 있다"며 "누구의 도움으로 이런 질문지를 구성했냐"고 묻기도 했다.
나는 "우리 기자들이 직접 구성한 질문지"라고 대답했고, 김 총장은 "아주 훌륭하다"고 칭찬했다. 인사를 마치고, 내가 총장 집무실을 빠져나올 때 그는 살짝 뒤뚱거리며 우리를 배웅했다. 김 총장의 집무실엔 정장 재킷과 재난 상황서 자주 보이는 노란색 잠바, 그리고 우리 대학 휘장기가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총장의 모습과 집무실이 어딘가 우울하고 외로워 보였다.
우리가 총장 인터뷰 기사를 작성하면서, 대학 본부의 간섭은 일절 없었다. 총장 비서실은 그저 총장과 인터뷰 일정을 잡아주는 역할에만 그쳤고 이후 기자들이 어떻게 기사를 작성하는지 묻지도 않았다. 덕분에 우리 언론은 자유롭게 총장과 인터뷰한 내용을 기사화할 수 있었다. 직선으로 선출된 총장이기에 학내 언론 자치기구의 자치성의 중요성을 김 총장이 잘 알고 있었을 것이고, 그 덕에 우리 기자들을 나름 존중해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입시 미달 참사를 전적으로 책임지겠다는 김 총장
학교 법인이 김 총장을 해임시킨 이유는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것이다. 우리 대학은 2021학년도 입시철, 정원에서 약 800명이 미달되며 충원율 약 80%라는 충격적인 입시 성적을 떠안았다. 이에 김 총장은 "자신의 책임을 통감한다"며 자진 사퇴한 것이다. 물론 입시 실패에 김 총장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순 없겠으나, 전반적인 지방대 몰락으로 귀결된 우리 대학 입시 실패 사태를 총장 한 사람이 전적으로 책임지는 것은 옳지 않다고 나는 본다.
이후 법인은 김 총장이 학교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해임 처분했고, 김 총장이 이에 불복하며 항소하고 다시 복직하는 등 또다시 학내에서 소란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어찌 되었든 우리 대학 이름을 걸고 활동했던 학생 언론인으로선 민망한 일이다.
지난 2020년, 직선으로 선출된 김 총장이 버젓이 있는 상황서 우리 대학 법인은 선거 제도 개정을 진행했다. 본래 우리 대학은 교수회, 직원 노조가 총장을 직접 선출하여 총장 후보자를 선출하면 법인이 승인하는 형식으로 나름 직선제 구실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러한 선거 제도를 운영해온 것이 30년가량 되어간다. 지방대에서 보기 드문 민주 사학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내가 편집국장이던 시절 이와 관련하여 법인 이사장을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사실 이 인터뷰도 이사회 사무국장을 취재하며 쌓은 인연이 아니었다면, 성사되기 어려운 자리였다. 정식적으로 인터뷰를 진행한 것이 아니라 이사장이 경산 캠퍼스에 방문하여 간담회를 진행한 뒤 시간을 잠시 내어 이뤄진 것이었다.
이사장은 인터뷰에서 "현행 직선제로 이뤄진 폐해가 너무나 크다"면서 "반드시 개정을 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특히, 학생들의 총장 직선제 참여 확대가 옳은 방향이 아니냐는 내 질문에 이사장은 "오히려 우리가 추진 중인 총장추천위원회 제도에 총학생회 지분이 포함되어있으니 더 민주적"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와 진행한 인터뷰를 그대로 적어 학생들의 판단에 맡겼다. 당연히 학생들의 반응은 그다지 우호적이진 않았다.
해임된 김 총장을 떠나보내며
마지막 만남이었던 2020년 11월 인터뷰에서 김 총장은 인터뷰 내내 "더 이상 총장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해야 할 일이 많은데 너무 아쉽다"를 유독 많이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법인과 대학 본부와 조율이 되지 않아 무산된 사업도 있었고, 직선 총장이 눈앞에 있는데 법인의 선거 제도 개정 시도에 김 총장도 내심 불쾌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총장은 학내 언론 인터뷰에서 법인에 대한 비판보다는 코로나 상황서 학교 운영에 대한 생각을 허심탄회하게 말했으며, 학생 언론이 총장에 대해 지적한 사항을 대답하는 것에 치중했다.
나의 대학 언론인으로서 활동한 기간 3년은 김 총장의 재임 기간에 온전히 포함된다. 나는 그의 대학 운영에 대해 비판적인 기사를 많이 적었다. 우리는 대학 본부에 대해 비판적 기사를 나름 자유롭게 작성할 수 있었고, 그가 임명한 학내 보직자들 역시 학생 언론이 날카로운 질문을 할 때마다 성심 성의껏 대답해줬다. 나름대로 우리 언론인들을 그만의 방식으로 존중해줬다고 생각한다.
어찌 보면 김 총장의 비극적인 해임 결말은 그만의 일이 아니라, 대학 언론인이었던 나에게도 해당될 수 있다. 법인이 직선으로 선출된 총장 해임 시도가 법적으로 정당하다는 판결을 받은 상황서 학생 언론의 운명도 어두워질 수 있다는 우려를 씻을 수 없다. 또 학교 관계자의 말처럼 현행 총장 직선제가 물 건너간 상황이라면, 김 총장이 우리 대학 역사 속 마지막 직선 총장이 될 수 있는 것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나는 김 총장을 옹호하거나, 그의 해임 판결이 부당하다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어찌 됐든 그는 학교 집행부 최고 책임자이고, 우리 대학 언론은 그를 비판하고 감시해야 할 책무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래도 나름 학교 운영에 애썼을 김 총장을 유감스럽게 떠나보내게 돼 안타까운 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