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쇼트트랙 남자 1000m 준결승 레이스는 황대헌에게 부정하고 싶은 악몽과도 같았다. 1조 경기를 1위로 마쳤지만 심판의 납득할 수 없는 판정이 나오면서 실격처리 됐다.
중국 측의 노골적인 텃세에 상심이 컸을 법도 한데, 황대헌은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경기 후 취재 요청을 정중히 사양하고 믹스트존을 빠져나간 그는, 늦은 밤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심경을 밝혔다.
황대헌은 미국프로농구(NBA)의 전설적인 스타 마이클 조던의 명언인 ‘장애물을 마주했다고 반드시 멈춰 서야 하는 건 아니다. 벽에 부딪힌다고 돌아서거나 포기하지 말라. 어떻게 벽을 오를지, 뚫고 나갈지 또는 돌아갈지 생각하라’는 글을 올렸다. 처지를 원망하기보다 향후 비슷한 상황이 오더라도, 두려워하고 피하기보다 정면으로 맞서 이겨내겠다는 의지를 다진 것이다.
황대헌은 9일 열린 쇼트트랙 남자 1500m 레이스에서 분노의 질주를 펼쳤다. 준준결승과 준결승을 전부 1위로 통과한 황대헌은 총 10명이서 치른 결선에서도 가장 돋보였다.
초반 후방에 처져있던 그는 9바퀴를 남기고 단숨에 선두까지 치고 올라왔다. 이후 단 한 번의 위기도 없이 레이스를 단독으로 이끌었고, 그대로 결승선을 통과해 금메달을 따냈다. 메달을 확정지은 황대헌은 한풀이를 하듯 포효했고, 이내 빙판에 미끄러지듯 주저앉으며 두 팔을 하늘로 뻗어 기쁨을 만끽했다.
쇼트트랙 최강국인 우리나라는 이번 올림픽에서 다소 고전했다. 혼성계주 준준결승에서 3위에 그치며 결승 진출이 불발됐고 여자부 에이스 최민정은 500m 경기에서 미끄러져 실격했다. 황대헌과 이준서는 1000m 경기에서 편파 판정의 피해자가 됐다. 하지만 황대헌의 금메달로 다시금 추진력을 얻을 수 있게 됐다. 한국은 오는 11일 쇼트트랙 여자 1000m, 13일 여자 3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노린다.
문대찬 기자 mdc050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