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현장 내에서는 사고가 끊이질 않고 있다. 해당 법은 중대재해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경영자 처벌’이라는 강력한 제제를 가하는 법안으로 주목을 받았다. 업계 전문가들은 발주처 안전관리 확대, 지자체 관리·감독 강화 등 보다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부터 12월까지 3개월 동안 전국 건설현장에서 안전사고 등으로 총 38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올해 1월 27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앞서 안전관리를 강화했다고 홍보한 시공능력평가 상위 100대 대형 건설사에서도 전국 16개 현장에서 사망자 17명이 나왔다.
100대 건설사 중에서는 KCC건설, 극동건설, 삼부토건 등 3개 회사의 건설현장에서 각각 2명이 사망했다. 삼성물산, 현대건설, 현대엔지니어링, DL이앤씨 등 11개 건설사에서도 1명씩 사망자가 발생했다. 하도급사 중에는 구산토건과 IL이앤씨, 산하건설, 정품건설, 준경타워 등 16곳에서 사망 사고가 났다. 집계되지 않은 올해 초 HDC현대산업개발의 광주 화정 아이파크 사고까지 더해지면 사망자 수는 더욱 늘어난다. 국토부는 사망사고가 발생한 30개 대형건설업체 및 관련 하도급업체에 대해 3월까지 특별점검을 실시할 방침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사고 ‘예방 효과’는 기대 이하'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 1월 27일부터 시행된 중대재해법은 상시근로자 50인 이상 사업장·50억 이상 건설현장에서 사망 등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 확보 의무 위반을 처벌하는 제도다. 위반 정도에 따라 1년 이상 징역형까지 선고받을 수 있다.
건설업계는 사고 예방을 위해 발주자에 대한 근본적인 감시를 강조한다. 건설업 특성상 작업시간이 오래 걸리는 만큼 발주자가 업체에게 충분한 시간과 안전관리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익명을 요구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발주자 측에서 안전관리 비용을 보장해줘야 하는데 입찰가격에 모든 금액이 포함돼 있다 보니, 하도급 업체 입장에서는 수주경쟁을 위해 안전관리 비용을 제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사현장이 속해 있는 각 지자체에서 관리·감독 기준을 더 높아져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최근 국토부 조사를 보면 사망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인·허가 기관은 경기도(13명)였다. 남양주시가 3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안성시(2명), 광주시, 김포시, 수원시, 오산시, 파주시, 용인시, 평택시, 양평군(이상 1명) 등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경기도에 이어 △인천(4명) △서울(3명) △강원도(2명) △경상남도(2명) △충청북도(2명)가 뒤를 이었다.
실제 쿠키뉴스가 지난해 서울과 경기도, 전국 5대 광역시(부산·대구·인천·광주·대전·울산)를 대상으로 10월30일 기준 철거 공사 현황을 조사해 본 결과, 대부분의 지자체에서 관리상 허점이 드러났다. 철거공사 현황 파악 미비, 부실한 현장점검 등이 주요한 사항이다. 철거공사만을 대상으로 조사한 만큼 신축 공사 현장까지 더하면 수치는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모든 현장을 다 갈 수는 없다. 최대한 갈 수 있는 한 가고 있다”며 “전문가 동행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지자체 관계자는 “건물별로 점검 보고서를 작성하지는 않는다”며 “그날 전체 안전점검 결과에 대한 보고서만 작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정부는 지자체든 건설사든 결국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현재 중대재해처벌법은 업체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만큼 각 지자체에게 책임성을 보다 강화할 수 있는 법안 마련도 함께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업체 측의 안전관리 의무를 강화하는 것으로는 분명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안세진 기자 asj0525@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