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먹이는 엄마, 벌벌 떠는 아이들” 폴란드-우크라 국경은 지금

“울먹이는 엄마, 벌벌 떠는 아이들” 폴란드-우크라 국경은 지금

기사승인 2022-03-03 14:31:40

-우크라이나 난민 100만명 넘겨…폴란드 교민 난민 성금 모으기 나서
-난민 대피소로 변한 국경지역 기차역·체육관…추위 떠는 아이들
-교민 “우크라이나 침공 우리 모두의 문제, 응원해달라”

지난달 김씨 지인이 찍은 폴란드 프세미시우 중앙역 내부 모습. 사진 촬영 당시는 빈 공간이 보인다. 김씨는 지난달 28일 직접 방문했을 때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곳곳에 널린 봉제인형이 눈에 띈다. 사진=폴란드 교민 제공
“같이 일하는 동료, 친구의 나라가 이런 일을 당했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우크라이나를 탈출한 난민이 3일(현지시간) 100만명을 넘었다. 러시아 침공 일주일만이다. 시작에 불과하다. UN(국제연합)은 난민이 앞으로 4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2일 폴란드 한인회 온라인 카페에 글 하나가 올라왔다. 난민 지원 성금을 모아 보자는 내용이다. “난민들이 이 추운 겨울 아이들을 데리고 목숨을 걸고 폴란드 국경으로 피난을 오고 있다”며 “교민이 십시일반 작은 정성을 모아 난민을 도와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는 글이 담겼다.

글을 올린 이는 폴란드 거주 10년차 교민 김모(49)씨다. 김씨와 전화로 인터뷰했다. 김씨는 물류회사에서 일하면서 과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를 자주 방문했다. 말도 안 되는 침략전쟁은 기어코 현실이 됐다. 예전에 알던 우크라이나 친구와 동료 얼굴이 자꾸 눈에 밟혔다. 

뭐라도 도울 방법이 없을까. 김씨는 지난달 28일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6km 떨어진 폴란드 국경도시 프세미시우로 향했다. 차로 세 시간을 달렸다. 프세미시우 중앙역은 지금도 우크라이나행 열차가 오간다. 대형 셔틀 버스도 쉬지 않고 난민을 실어나른다. 방송과 SNS를 통해 어느 정도 실상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현장에서 김씨가 두 눈으로 본 모습은 달랐다.
폴란드 프세미시우 지역 한 체육관에 간이 침대를 깔고 난민 임시 숙소를 만들었다. 사진=폴란드 교민 제공

프세미시우 중앙역 역사 내부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바닥, 벤치, 계단 등 어디든 지친 표정의 난민으로 가득 차 있었다. 걸어서, 택시로, 혹은 기름이 떨어진 차를 버리고 셔틀버스를 타고 간신히 국경을 넘은 이들이다. 대부분 여성과 아이들이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징집령을 내려 18~60세 남성들은 우크라이나 밖으로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간이 침대 위에는 봉제 인형이 널려 있었다. 전화기를 붙잡고 어떻게든 폴란드에 있는 아는 사람에게 연락해 지낼 곳을 찾는 엄마들은 반쯤은 울고 있었다. 서로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내려 부둥켜 안은 채 잔뜩 웅크린 가족도 있었다. 현지 자선단체에서는 아동을 위한 비상약과 담요가 부족하다며 지원을 촉구했다. 김씨는 “그런 사람들 앞에서 도저히 카메라를 들어 사진 찍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폴란드 정부는 프세미시우 중앙역은 물론이고 인근 체육관, 학교, 대형 창고에 임시숙소를 만들었다. 간이침대를 깔고 담요를 지급했다. 하지만 24시간 밀려오는 난민을 수용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실내에 머물 수 있다면 운이 좋은 편이다. 

밤에는 기온이 영하 4~5도까지 떨어진다. 기차역 주변 식당, 맥도날드 심지어는 주유소 편의점까지도 난민들로 꽉 찼다. 김씨는 “추우니까 어디든 들어갈 곳이 필요한 것”이라며 “다행히 폴란드 사람들이 매정하지 않다. 난민들을 이해하고 받아준다”고 했다.

폴란드 프세미시우 중앙역 앞을 난민들이 오고가는 모습. 사진=폴란드 교민 제공

임시 숙소에서 언제까지나 머무를 수는 없다. 폴란드에 연고가 있으면 그곳에 가서 지내면 된다. 무작정 탈출한 난민 대부분은 연고가 없다. 연고가 있더라도 폴란드에 외화벌이 하러 온 가족과 지인은 차를 끌고 역으로 데리러 올 여유가 없다는 게 김씨 설명이다.

때문에 폴란드 자선단체에서는 숙소를 알선해 제공하거나 난민을 목적지까지 태워주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김씨도 대도시 크라쿠프에 한 가족을 태워다줬다. 엄마와 15살짜리 딸, 4살짜리 아들이다. 구글 번역기를 돌려가며 의사소통을 했다. 김씨는 “일단 크라쿠프로 가면 공항도 있고 해외나 다른 도시로 넘어가기도 쉽다”고 부연했다.

폴란드는 난민 지원에 적극적이다. 폴란드 정부는 자국에 들어오는 모든 우크라이나인에게 거처와 지원을 약속했다. 난민에게 교통수단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김씨는 “폴란드는 이번 전쟁을 남의 일처럼 보지 않는다”면서 “폴란드는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소속이라 안전한 편이다. 하지만 모두가 우크라이나가 무너지면 폴란드와 러시아가 국경을 접하는 위험한 상황이 올 것을 경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폴란드 프세미시우 중앙역 앞의 취재진 모습. 역 앞은 혼잡한 탓에 난민을 태워가는 차 외에는 차량 통행을 막고 있다. 사진=김씨 제공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자선단체가 쥐어준 과자를 먹는 아이들. 엄마 품에 안겨 우는 아이들. 담요를 두르고 벤치에서 떠는 아이들. 이들의 고통 앞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너무나 작다는 게 김씨 마음을 가장 아프게 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김씨는 강조했다. 공장을 운영하는 폴란드 교민들은 인력 유출을 우려하고 있다. 생산 인력 절반 이상이 우크라이나인이다. 고국에 돌아가 싸우겠다는 이들을 설득하고 있지만 언제까지 동료를 붙잡을 수 있을지 모른다. 러시아에 있는 김씨 지인은 나중에 환전하기 위해 모아둔 루블화가 반토막 났다. 돈을 인출하기도, 러시아를 떠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김씨는 “모두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전쟁을 멈추고 일상으로 돌아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때까지는 버티는 수밖에 없다”며 “다만 푸틴의 사악함이 어디까지 갈 것인지 우려된다”고 걱정했다.

김씨는 “우크라이나를 많이 응원해달라. 한국에 있는 우크라이나인도 많다. 걱정이 많을텐데 가족, 친구, 친지 소식이 잘 전해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한국 정부가 인도적 지원을 하겠다고 밝혀 기대가 크다. 앞으로 모금 뿐 아니라 민박, 차량 지원 등 도울 수 있는 여러가지 방법을 생각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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