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만 인프라·여성 건강’ 위기, 정책 변화 절실

‘분만 인프라·여성 건강’ 위기, 정책 변화 절실

분만 인프라 붕괴 심각… 더는 방치할 수 없어
분만 의사에 ‘무과실 책임’ 부담… 국가보상제 필요
어린이부터 중장년까지… 교육·서비스 개선해야

기사승인 2022-03-19 07:00:07
“지난 2년간의 코로나19 사태는 국내 여성 및 임산부 건강에 큰 위협이 상존했던 힘든 시기였습니다. 앞으로는 여성 건강 증진 정책에 변화가 있어야 함을 인식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박중신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대한산부인과학회 이사장)는 급변하는 사회 상황을 반영해 새로운 여성 건강 증진 정책을 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정부가 저출산 현상을 해소하고, 여성 건강을 위해 많은 노력을 투입했지만 뚜렷한 효과는 거두지 못했다. 새 정부의 출발과 함께 임산부와 여성 건강을 위한 새로운 지원 방향성을 설정해야 한다는 것이 박 교수의 당부다. 

박중신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대한산부인과학회 이사장).   사진=한성주 기자

18일 대한산부인과학회는 간담회를 개최하고 ‘임산부와 여성 건강을 위한 정책제안서’를 발간, 향후 중장기적 여성 건강 정책의 기본 틀을 제안했다. 정책제안서는 △임산부 건강을 위한 정책 △여성 건강을 위한 정책 △지속가능한 산부인과학 발전 등 3개 대주제 하에 22개 세부 정책이 담겼다. 학회는 지난 20대 대선을 앞두고 정책제안서를 주요 정당의 각 대선캠프에 전달했다. 

분만 인프라 붕괴 심각… 더는 방치할 수 없어


현재 우리나라의 저출산 현상은 국가적 재난 상황으로 간주될 만큼 심각하다. 여성 1명이 가임기간(15~49세)에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인 ‘합계출산율’은 2020년 기준 0.837명이다. 연도별 출생아 수는 2011년 약 47만1000명에서 지속적으로 감소해 2020년 27만2000명까지 줄었다.

저출산 현상에 따르는 가장 큰 문제는 분만 인프라 붕괴다. 산모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출산을 할 수 있는 환경을 확보하기 어려워 진다는 의미다. 학회에 따르면 산부인과 전문의 배출은 지난 2004년 259명에서 2020년 124명으로 절반 이하까지 감소했다. 지난해 학회가 설문조사한 결과, 산부인과 전공의 57%가 전문의 수료를 마쳤지만, 분만을 포기했다고 답했다.

전문 인력의 부족으로 분만취약지역은 계속해서 방치됐다. 국내 분만 병원은 2007년 1027곳에서 2010년 808곳, 2019년 531곳으로 감소했다. 2020년 12월 기준 우리나라 250개 시·군·구 중 산부인과 의료기관이 없는 지역은 23곳이나 존재한다. 산부인과가 있지만, 분만실이 없는 지역도 42곳으로 조사됐다. 모체태아의학과(산과) 교수가 4명 이하인 행정구역은 8곳으로, 전체 행정구역의 53%에 달했다. 

분만 의사에 ‘무과실 책임’ 부담… 국가보상제 필요

의료진에게 지어지는 부담이 분만실 유지를 단념하게 만든다는 지적도 나왔다. 우리나라는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제도에 따라 ‘무과실 분만사고 보상기금’을 운영 중이다. 보건의료인이 충분한 주의의무를 다했음에도 분만 과정에서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환자에게 최대 3000만원의 보상금이 지급된다. 기금의 적립 목표액은 31억원인데, 국가가 70%, 의료기관이 30%의 비율로 분담한다. 즉, 의사가 과실을 범하지 않았어도 분만 후 산모의 예후가 좋지 않다면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기금 분담 대상 의료기관은 ‘분만 실적이 있는 산부인과’로 한정된다. 이는 의사들이 분만은 물론, 산부인과 자체를 기피하는 현상을 부추기는 부작용을 유발한다는 것이 학회의 지적이다. 또한 이 기금은 최근 5년간 20억원이 지급돼, 고갈 논란에 휩싸이는 등 재원 불안정성 문제도 불거졌다. 불가항력 의료사고에 대한 공적 지원을 강화하는 정책적 개선 없이는 분만 인프라 확충이 요원한 실정이다.

김훈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대한산부인과학회 사무총장).   사진=한성주 기자

어린이부터 중장년까지… 교육·서비스 개선해야

성장기 여성들을 위한 교육 지원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우리나라 여성의 평균 초경연령은 10-12세다. 현재 60-04세 여성들의 평균 초경연령이 16.3세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초경연령은 매우 빠르게 앞당겨지고 있다. 하지만 초경, 성교육, 피임에 대한 학교 교육은 학생들의 발달 수준과 사회문화적 배경을 반영하지 못해 미흡한 내용에 그친다는 것이 학회의 우려다.

학생들 역시 학교 성교육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청소년 성교육 수요조사 연구 결과, 청소년들은 ‘학년별 교육내용의 차별성이 없음’, ‘설명식 강의에 그치는 학교 성교육 방법’ 등을 이유로 학교 성교육이 효과적이지 않다고 답했다. 학회는 형식적인 교육보다는, 산부인과 전문의들이 참여해 보다 실질적인 내용을 교육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분석했다.

여성의 폐경에 대한 의료적 지원도 희박한 실정이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우리나라 여성의 평균 기대수명은 86.3세다. 50세를 폐경 연령으로 가정하면 여성은 폐경 후에도 30년 이상을 살아간다. 폐경에 따른 신체 증상은 근골격계 통증, 수면장애, 불안감, 골다공증, 심혈관질환, 알츠하이며병 등의 치매질환 등이다. 폐경 후 여성에 대한 전인적 접근이 필요하며, 각종 질환 예방을 위한 지원의 필요성이 크다.

학회는 폐경 여성을 대상으로 건강상 문제점을 파악하고, 질환을 예방하기 위해 50-55세 사이 여성을 대상으로 산부인과 전문의 상담을 국가에서 1회 지원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질환이 나타난 이후에 사후적 지원을 하는 것이 아닌, 예방을 도모하는 사전적 지원이 국민 건강 제고라는 보편적 목표를 달성하는 데 적합한 방식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질병을 효과적으로 예방한다면, 국가적으로 의료비 지출을 절감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김훈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대한산부인과학회 사무총장)는 “헌법 제36조 제2항은 국가가 모성의 보호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며 “새로 선출된 대통령은 임산부와 여성의 건강에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모성보호 정책을 수립해 시행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학회가 학술활동만 하며 뒷짐을 지고 있기 보다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해소하는 데 전문가로서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최근 윤석열 당선인의 인수위에 정책제안서를 전달했고, 앞으로도 정책이 사회에 원활히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성주 기자 castleowner@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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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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