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n년차, 시위 왜 하는지 알려드릴게요”

“휠체어 n년차, 시위 왜 하는지 알려드릴게요”

출퇴근길 버스·지하철에 휠체어 들어갈 곳 없어
지하철역 엘리베이터 찾아 삼만리… 점검 중이면 다음역 가야
‘장콜’ 직접 잡아본 사람만 안다… 기본 1~2시간 애써야 탑승

기사승인 2022-03-30 07:00:01
서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이동권 예산 확보'를 요구하며 출근길 선전전을 벌이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휠체어 타고 생활하는 제가 말씀드릴게요. 이동권 시위를 하는 이유는 한두가지가 아니에요”

눈송이(가명, 22세)는 서울시 용산구 소재 학교에 재학 중인 대학생이다. 자신을 ‘휠체어 n년차 경력자’로 소개한 그는 장애인 이동권 쟁취 투쟁이 불편한 이들에게 할 말이 많다. 최근 날마다 출근길 지하철이 시위로 떠들썩해지는 데는 필연적인 이유가 있다. 28일 눈송이에게서 비장애인은 모르는 불편한 경험을 들었다.

#“버스랑 지하철은 시민의 발이라죠. 휠체어는 일정 공간이 확보되지 않으면 못탑니다. 출퇴근 시간에 버스와 지하철에서 휠체어를 본 기억이 있나요? 장애인 고용률이 높은 회사들 대다수는 출근 시간이 10시30분까지인 이유, 아시겠죠?”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버스에 타려면, 최소 공중전화부스만한 공간이 필요하다.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시행규칙은 버스에 설치해야 하는 교통약자용 좌석의 규모를 ‘길이 1.3미터, 폭 0.75미터’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휠체어는 저상버스만 탈 수 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혼자 힘으로 일반버스의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리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전국 시내버스 가운데 저상버스 보급률은 지난해 기준 28.4%다.

지하철에는 휠체어를 비롯한 이동 보조 수단을 사용하는 장애인을 위한 공간이 있다. 하지만 주로 전동차의 맨 앞이나 맨 뒷칸에 마련되어 있다. 비장애인을 위한 공간에 비하면 극히 희소하다는 점도 문제다. 10량 전동차가 다니는 1호선에 마련된 전동차 전용공간 승하차 지점은 등 4개뿐이다. 마찬가지로 10량 전동차를 운행하는 3호선과 4호선에도 전동차 전용공간 승하차 지점은 4개다. 출퇴근길에 섞일 수 없는 우리나라 장애인의 고용률은 34.9%로, 전체 인구 고용률 60.7%의 반토막이다.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 설치해 줬는데, 뭘 더 바라냐고요? 엘리베이터 경쟁률 ‘박 터져요’. 휠체어가 하나 들어가면 3분의 2가 들어찰 정도로 좁고, 속도가 느린데 수요가 많아서 한참 기다려야 합니다. 엘리베이터가 구역마다 1개만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항상 ‘엘리베이터 찾아 삼만리’죠. 30분 헤매다 찾은 엘리베이터가 점검중이면 다시 지하철을 타고 다른 역으로 이동합니다.

지난해 기준 서울교통공사 관할 지하철 1~8호선 275개 역 가운데 254개 역에 최소 1개 이상의 엘리베이터가 있다. 설치율 92.3%라는 성적은 그럴듯 하지만, 바꿔 말하면 아직까지 서울권에 11개 지하철역은 휠체어를 탄 사람이 이용할 수 없다는 의미다. 개선 속도도 지극히 느렸다. 서울교통공사는 2024년까지 설치율 100%를 달성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 투쟁은 2001년 본격적으로 시작됐으며,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은 2005년 제정됐다.

엘리베이터가 없어 인명피해가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 2017년 지하철 신길역 1호선에서 5호선으로 환승하기 위해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한 장애인 고(故) 한경덕씨가 역무원 호출 버튼을 누르려다 계단 아래로 추락해 중상을 입었다. 한씨는 3개월가량 치료를 받다가 사망했다. 휠체어 리프트는 엘리베이터의 대안으로 지하철역 내 계단에 설치된 장치다. 국가인권위원회는 휠체어 리프트가 안전사고에 취약하고, 사방이 트여있어 이용 중인 장애인이 수치심을 느끼게 한다며 장애인을 위한 편의 시설로 인정하지 않는다.

#장애인 택시 이용하면 편하지 않냐는 말도 많이 들어요. 그거, 직접 잡아본 사람은 다시는 그렇게 말 할 수 없을 거에요. 수도권은 외출 1~2시간 전부터 이용 가능한 택시가 있는지 확인하면서 대기해야 합니다. 지방 상황은 더 열악해서 하루 종일 전화기를 붙잡고 있어도 이용하기 어려워요. 

‘장콜’로 불리는 장애인 콜택시의 경쟁률은 150대 1이 훌쩍 넘는다.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시행규칙은 지방자치단체 특별교통수단의 운행 대수를 ‘보행상의 장애인으로서 장애의 정도가 심한 장애인’ 150명당 1대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수도권 밖 대부분의 지자체가 이 기준조차 지키지 못하고 있다. 2020년 기준 서울은 법정 요구대수 587대 대비 실제 보유대수 619대로 105%의 운영비율을 보였다. 반면 광주는 요구대수 186대, 보유대수 116대로 운영비율이 62% 수준이다. 충북은 요구대수 208대, 보유대수 110대(운영비율 53%)에 머물렀다. 

한국장애인개발원이 장애인 30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51.8%(156명)은 대기시간이 너무 길다고 답했다. 응답자들의 평균 대기시간은 48.2분으로 나타났으며, 최대 대기시간은 240분에 달했다. 12%(36명)은 지역 밖으로는 이동할 수 없어 불편을 겪었다. 장애인 콜택시 중에서도 휠체어가 탑승할 수 없는 차량이 많다고 토로한 이들도 10.3%(31명)이나 있었다.

“그래도 버스, 지하철, 택시는 어렵게나마 이용할 기회가 있죠. 휠체어를 타면 고속버스는 이용할 수 없어요. 타 지역으로 이동하려면 KTX 이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습니다. 일상적으로 비장애인이 가볍에 걸어 넘어가는 문턱도 휠체어를 탄 사람은 혼자 넘어가기 힘들어요. 장애인 이동권 투쟁 시위에 대해 이해와 공감까지는 아니더라도 관심은 가져주세요.”

한성주 기자 castleowner@kukinews.com

한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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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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