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걸리는 신약 개발, AI는 7년만에 뚝딱

15년 걸리는 신약 개발, AI는 7년만에 뚝딱

AI신약개발 걸음마 단계… 이질적 분야 연계 관건
협업 플랫폼 구축해 기업 매칭·전문가 육성할 것
글로벌 기업 따라잡아야… 사업모델 개발 시급
보건의료 데이터 확보·업계 신뢰도 제고 숙제

기사승인 2022-03-31 07:00:01
김우연 한국제약바이오협회 AI신약개발지원센터장.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신약 개발은 통상적으로 15년이 걸리는 대장정이다. 하지만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후보물질 발굴, 임상시험 디자인 등 연구개발(R&D) 단계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이미 해외에서는 ‘알파고’의 동생들이 신약 개발에 투입되기 시작했다.

30일 한국제약바이오협회(이하 협회) 기자간담회에서 김우연 AI신약개발지원센터(이하 센터)장은 글로벌 시장에서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미래 경쟁력이 AI기술 확보에 달렸다고 전망했다. 센터는 AI신약개발의 개념을 정립하고,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과 AI기술을 개발하는 기업의 연계를 돕기 위해 협회 산하기관으로 지난 2019년 출범했다. 김 센터장은 “AI기술은 신약개발 전 단계에 활용돼 신약개발주기를 15년에서 7년으로 단축시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AI신약개발 걸음마 단계… 이질적 분야 연계 관건

국내 AI신약개발 분야는 아직 미성숙하다. AI기술 접목이 R&D 비용 절감으로 이어진 실제 사례가 충분히 도출되지 않았다. 타깃발굴, 후보물질 설계, 합성, 검증과정을 넘어 전임상, 임상 등 신약개발 단계마다 적용할 수 있는 AI기술 개발도 필요하다. 

센터 자체조사 결과, 국내에는 38개의 신약개발 AI 스타트업이 있다. 자체적으로 AI기술을 개발하거나, AI기업과 협업을 시도 중인 제약바이오 기업도 30여곳 있다. 지난해 상반기에는 14개 신약개발 AI 스타트업에 1700억원의 투자가 이뤄졌다. 정부는 ‘AI 활용 혁신신약 발굴’ 등 27개 사업을 통해 제약바이오산업의 AI 활용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AI기술을 본격적으로 신약 개발에 활용하는 단계로 나아가지는 못하고 있다. 김 센터장은 “많은 기업들이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며 “신약개발과 AI라는 이질적인 두 분야의 소통과 협업이 어려운 과제”라고 밝혔다. 이어 “AI기술에 대한 이해, 데이터 구축과 전문인력 확보 방안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도입전략 구축이 요구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협업 플랫폼 구축해 기업 매칭·전문가 육성할 것

국내 AI신약개발 시장에서 협업은 더딘 실정이다. 원인은 제약바이오 기업과 AI기업의 매칭 과정에 있다. AI신약개발 모델은 실제 실험에 적용해봐야 정확한 성능을 알 수 있다. 제약바이오 기업의 입장에서는 자사가 원하는 기술력과 활용도를 갖췄는지 가늠하기 어려운 AI기업과 선뜻 협력을 체결하기 부담스럽다. AI기업의 입장에서도 자사가 개발한 AI솔루션의 가치를 입증하는 것은 어려운 과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AI기술과 신약개발 수요가 잘못 매칭되고, 공동연구가 두 기업 모두에게 실망스러운 결과를 남기기도 한다.

센터는 제약바이오 업계와 AI 기업들의 협업을 촉진하는데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다. 계획의 일환으로 올해 하반기에는 ‘신약개발 연구자를 위한 AI 플랫폼’을 출시한다. AI기술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는 의약화학자들이 웹상에서 손쉽게 활용해, AI신약개발에 대한 이해와 긍정적인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융합형 AI 신약개발 전문가 교육사업도 강화한다. 특히 올해는 신약개발 연구원 맞춤형 학습과정과 현장실습과정을 개설, 신약개발 현장의 AI 전문인력 부족현상을 해소한다는 목표다. 현재까지 센터는 온라인 교육플랫폼 라이드(LAIDD)를 구축해 3년간 800명의 교육생을 배출해 왔다. 

소통의 장도 마련할 예정이다. 센터는 전문가 자문위원회와 AI 신약개발 협의체를 운영, 인공지능과 신약개발 두 전문영역이 활발하게 소통하고 기술을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늘릴 방침이다. 특허와 논문을 통해 입증한 AI기술을 소개하고, 기술에 대한 신약개발 영역의 피드백이 선순환을 이루면 매칭의 정확도가 높아지고 협업사례도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아울러 국내외 AI기술 동향과 AI기업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웹사이트도 오는 5월부터 가동한다. 

글로벌 기업 따라잡아야… 사업모델 개발 시급

해외 기업들이 선보이는 AI신약개발 사업 모델을 따라잡기 위한 노력도 지속한다. 해외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이미 AI기업과 공동연구 및 라이선스 인-아웃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AI기술을 접목한 신약개발 사업을 가시화 하고 있다. 지난해 4월 영국에서는 AI로 디자인한 신약후보물질이 임상시험에 들어갔다. 앞서 2020년 10월 미국에서는 AI가 추천한 코로나19 약물재창출 신약 후보물질이 임상시험을 거쳐 긴급사용 승인을 받기도 했다. 

특히 ‘알파폴드2’의 등장과 인공지능 단백질 설계 기술의 발전으로 항체 신약 등의 바이오 의약품 개발에도 AI기술이 접목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전까지 AI기술 접목은 저분자 화합물 신약 분야에 쏠려 있었다. 알파폴드2는 알파고를 개발한 구글 산하 AI기업 딥마인드가 개발한 단백질 구조 예측 기술이다.

이에 비해 국내 AI 신약개발 시장은 M&A와 라이선스 인-아웃 같은 뚜렷한 비즈니스 모델이 조성되지 않았다. 이는 AI기업와 제약기업이 공동으로 협업할 적절한 접점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김 센터장의 분석이다. 그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활용한 신약개발기술은 아직 글로벌 선두주자와 비교해 그 격차가 크지 않다”며 “우리가 제약바이오 기업의 신약개발 능력과 AI기업의 기술을 잘 접목시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전문가 자문위원의 도움으로 AI 신약개발 백서를 발간해 신약개발 전 과정에서 요구되는 AI 기술 로드맵을 제시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보건의료 데이터 확보·업계 신뢰도 제고 숙제

충분한 데이터 확보가 까다로운 과제로 남았다. AI신약개발을 가속화하기 위해서는 인력 및 기술과 함께 보건의료 데이터가 요구된다. AI기술의 성능과 정확에는 데이터베이스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화합물, 오믹스, 문헌정보, 임상정보, 의료정보 등 다양한 데이터 소스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보건의료 데이터는 개인정보, 기술유출 등의 이슈가 있어 접근하기 쉽지 않다. 현재 국내에서는 공공기관, 의료기관, 제약바이오 기업이 모두 각자의 데이터를 폐쇄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공공기관의 빅데이터, 데이터 중심병원의 의료데이터를 제약바이오 기업의 임상데이터와 연계해 활용할 방법이 요원한 실정이다. 

센터는 산-학-연-병이 연결되는 정부 차원의 컨소시엄 구축을 요청할 방침이다. 현재는 한국화학연구원에서 운영하는 화합물은행이 신약 후보물질 관련 정보를 범국가적으로 수집·관리해 모든 연구자들이 공동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이와 유사한 구심점을 더욱 확충해야 한다는 것이 센터의 입장이다. 김 센터장은 “단순히 기술 개발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신약개발과 AI기술을 둘러싼 다양한 분야의 소통에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며 “전문적인 카운셀링과 정부 사업 매칭을 촉진해 실질적 성과가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AI신약개발에 대한 정부와 사회의 신뢰를 얻기 위한 고민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일시적인 주가 부양 효과를 노리고 AI기술의 후광에 기대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김 센터장은 이에 대해 “AI신약개발이 기업들의 ‘쇼’가 아니냐는 지적과 우려에 대해 충분히 공감한다”면서 “현재 주식시장에 상장된 AI기업이 많지 않고, 기술개발에 중점을 두는 스타트업이 대부분인 것도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시간을 갖고 지켜봐줄 것을 당부했다. 김 센터장은 “신약과 AI기술은 모두 단번에 성과가 나오는 분야가 아니다”라며 “신약 개발 과정은 매우 복잡하고 지난한 절차를 거쳐야 하며, AI 역시 기술 성숙이 필요한 분야”라고 말했다. 이어 “새로운 기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은 다양하기 마련이고, 지나친 기대나 우려에 부딛치기도 한다”며 “현장 연구자들이 시간과 노력을 쏟아 개발을 지속한다면 결실을 도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성주 기자 castleowner@kukinews.com

한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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