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하늘 다른 주거’… 마지막 판자촌 구룡마을

‘같은 하늘 다른 주거’… 마지막 판자촌 구룡마을

기사승인 2022-04-12 06:00:22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판자촌 뒤로 고층 아파트가 보이며 다소 이질적인 풍경이 그려졌다.   사진=조현지 기자 

대로를 사이에 두고 주거지역의 환경 차이는 극명하게 갈렸다. 판자촌과 신흥 부촌을 동시에 형성 중인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이야기다. 

때 이른 초여름날씨가 이어진 11일 서울의 마지막 판자촌으로 불리는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을 찾았다. 구룡산 입구에 하차한 기자의 눈앞에는 왕복 10차선 도로를 경계로 엇갈린 풍경이 펼쳐졌다. 판잣집 등 가건물이 밀집한 구룡마을 건너편엔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브랜드 고층 아파트들이 즐비했다.

개포동 구룡마을은 지난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으로 도심개발이 이뤄지자 집을 잃은 영세민들이 몰려들면서 형성됐다. 면적은 약 26만6000㎡, 축구장 37개가 넘는 크기다. 도심 내 최대이자 강남의 유일한 판자촌으로 불린다. 

구룡마을 초입에는 개발을 촉구하는 구룡마을 주민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정부주도’ 개발이 주 메시지였다. “구룡마을 주민들은 정부주도의 구룡마을 개발을 강력히 촉구한다”, “정부주도의 구룡마을 이주대책을 하루속히 실시하라” 등 색색의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골목.   사진=조현지 기자

마을 골목은 한사람이 간신히 지나갈 정도로 좁았다. 거미줄처럼 늘어진 전깃줄과 낮은 철제 슬레이트 지붕으로 키 160cm 후반대인 기자가 고개를 숙여야 간신히 이동할 수 있었다. 녹슨 철제문 위에는 유리를 대체하기 위한 청 테이프와 비닐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곳곳에 빈집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주민들이 구청에서 마련한 공공임대주택으로 이주하면서 공가가 늘어난 것이다. ‘공가폐쇄’ 문구가 붙은 빈집 내부에는 주인 잃은 집안 살림 물품들이 남겨졌다. 공가가 많이 모인 골목에는 사람 대신 거미가 줄을 치고 터를 잡았다.

구룡마을에 서서 고개를 들면 판자촌 위로 우뚝 선 아파트가 보였다. 마을 입구부터 걸어서 10분도 채 안걸리는 자리에 위치한 개포 래미안블레스티지(총 1957세대)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1월 전용 84㎡가 30억원에 거래됐다. 지난해 12월(1억6000만원↓), 10월(2억원↓)보다 소폭 내렸고 지난해 9월(5000만원)보다 오른 금액이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건너편에 조성된 도심. 넓은 인도 등 쾌적한 환경이 조성됐다.   사진=조현지 기자

개포 래미안블레스티지 뿐만이 아니다. ‘역시 강남’이라고 할 정도로 구룡마을 건너편에는 부촌이 형성됐다. 재건축을 통해 대형건설사의 브랜드 아파트가 들어서면서다. 신흥 ‘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도 오는 23년 11월 입주를 목표로 건설 중이다. 

때문에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구룡마을과 전혀 다른 분위기의 도심이 펼쳐진다. 제대로된 간판 하나 없던 구룡마을의 상점과 달리 GS더프레시와 같은 대형 슈퍼와 피자헛, 교촌치킨 등 프랜차이즈 음식점도 영업 중이었다. 아파트 사이에 4차선 도로가 지나고 쾌적한 인도도 조성됐다. 

30여년째 첫 삽을 뜨지 못한 구룡마을의 재개발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구룡마을 원주민들과 토지주 등 당사자들의 이해관계 충돌과 개발방식을 둘러싼 서울시와 강남구 간 이견 등으로 개발이 지연되면서다. 

개포동 인근 공인중개소 관계자는 “오세훈 시장의 서울시가 재개발을 본격 추진하려고 했지만 전망은 어둡다. 임대 분양을 추진하는 서울시 측과 임대 후 분양을 요구하는 입주민들 간의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고 내다봤다.

조현지 기자 hyeonzi@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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