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여가부’ 지울 수 있을까

윤석열 정부, ‘여가부’ 지울 수 있을까

권성동, ‘여가부 폐지법’ 발의… ‘인구가족부’는 없던 일로
“여가부 지켜달라” 여성계 간곡 호소
대안 제시 없는 개정안에 입법화 ‘불투명’

기사승인 2022-05-10 06:00:02
윤석열 대통령.   사진=곽경근 대기자

여당이 윤석열 대통령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 실현을 위한 지원에 나섰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여가부 폐지법을 발의한 것이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권 원내대표의 법안 발의를 ‘지지자 달래기용’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 한다. 법안 내용이 허술한 데다, 거대야당의 동의 없이는 입법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尹 “여가부, 역사적 소명 다했다”

윤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인 지난 1월7일 “여성가족부 폐지”, 단 일곱 글자를 페이스북에 올렸다. 구체적인 비전이나 설명은 없었다. 그러나 해당 공약은 ‘이대남’(20대 남성)의 뜨거운 호응을 받으며 윤 대통령의 당선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윤 대통령은 당선 이후에도 여가부 폐지 방침을 재확인했다. 그는 3월13일 “이제는 (여가부가) 부처의 역사적 소명을 다하지 않았느냐”며 “여성이나 남성이 구체적 상황에서 겪는 범죄 내지 불공정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지난 3일 발표한 새 정부 110대 국정과제에서 ‘여가부 폐지’가 빠진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이대남’들을 중심으로 “공약 후퇴”라는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이에 윤 대통령 측은 논란 진화에 나섰다. 당선인 대변인실은 5일 입장문을 통해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여가부 폐지 공약을 추진한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음을 말씀드린다”고 약속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즉각 관련 법안을 마련했다. 권 원내대표는 지난 6일 여가부 폐지를 뼈대로 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개정안에는 여가부가 본래 담당하던 청소년‧가족 업무를 복지부로 이관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법안을 제안한 이유로 사회 흐름이 달라졌다는 점을 꼽았다. 권 원내대표는 “2001년 특임부처로서 여성부가 처음 신설되고 20여 년이 지난 지금 여성가족부에 대한 국민의 여론은 이전과 많이 달라진 상태”라고 진단했다. 이어 “여성가족부 폐지론의 배경에는 여성 인권을 대변한다는 명목으로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여성단체와 이를 지원하는 여성가족부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쌓여온 데 있다”며 폐지 당위성을 피력했다.

당초 검토됐던 ‘인구가족부’로 확대‧개편하는 방안은 없던 일이 됐다. 권 원내대표는 “인구가족부라는 별도의 부처를 만드는 건 아이디어 중 하나일 뿐 공식 의견이 아니다”라며 “좀 더 심도 깊은 논의가 필요하므로 이번 개정안에선 여가부 폐지에 집중하고 인구 문제는 적절한 방향을 찾을 것”이라고 했다.

여성가족부 폐지 반대 국회 청원.   국회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 캡처

‘구멍 숭숭’ 여가부 폐지법, 대안 제시 ‘물음표’

윤 대통령 측은 여가부가 폐지돼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 자신한다. 여가부가 해오던 업무를 다른 부처로 이관하면 된다는 설명이다. 권 원내대표는 “여가부 이전에 가족과 청소년 정책은 보건복지부에서 해왔다. 이미 아동과 노인 정책을 하고 있는 복지부가 차질 없이 전문적으로 수행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나 여가부가 하던 ‘여성’ 분야의 업무를 누가 어떻게 이어받을 지에 대한 대안 제시는 없었다. 권 원내대표가 발의한 개정안에는 여가부 장관이 여성정책의 기획‧종합, 여성의 권익증진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는 내용이 명시된 제41조가 삭제됐다.

권 원내대표는 여가부의 역사적 소명이 끝났다는 점을 재차 강조하며 “각 부처에서 개별적으로 판단해 달라진 시대 상황에 맞게 수행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성 범죄와 관련한 정책은 법무부에서 더 전문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식이다.

이를 두고 여성계에서는 반발이 일었다. 성차별이 여전한 사회에서 대안도 없이 여가부를 없앤다는 이유에서다. 전국 27개 여성단체가 모인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지난 6일 성명서를 내고 “여성 인권을 볼모로 표 장사에 나서는 전무후무한 저급한 혐오정치를 당장 멈춰라. 여성 주권자의 존재를 삭제하는 정당은 역사가 심판할 것”이라며 “여가부 폐지 시도를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고 경고했다.

성범죄 피해자가 보호받기 어려워질 것이란 우려도 나왔다. 자신을 성범죄 피해자이자 해바라기센터에서 도움을 받던 사람이라고 밝힌 A씨는 국회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에 청원글을 올려 “(해바라기센터 덕분에) 끔찍한 사건을 겪은 직후에도 긴장을 풀고 사건 관련 진술에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해바라기센터는 여가부‧지자체‧의료기관‧경찰청이 협력해 성폭력·가정폭력 등 피해자에게 상담‧의료‧법률‧수사 지원을 하는 기관이다.

A씨는 “피해자의 경직되고 긴장한 마음에 따뜻한 손길로 보듬어주는 부처는 여가부 외에 없다고 생각된다. 여가부를 지켜달라”고 간곡히 호소했다. 지난달 8일에 올라온 청원글은 7일 5만명의 동의를 받아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의 심사를 받게 됐다. 

전문가는 성범죄 업무가 법무부로 이관될 경우 피해자 보호가 어려울 것이라 전망했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는 9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법무부는 성인지 관점으로 사건을 바라보지 않는다. 죄의 유무를 법적으로 따지는 곳이지, 피해자 보호를 중심으로 접근하는 부처가 아니다”라며 “해바라기센터가 다른 부처로 이관될 경우 제 기능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여성위원회 회원들이 3월3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사무실 인근에서 ‘윤석열 당선자는 구조적 성차별을 없애고 성평등한 노동환경을 만들라는 여성노동자의 목소리를 경청하라’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법안 통과 가능성도 희박… 민주당 반대 넘어야 

권 원내대표의 개정안은 입법화도 불투명하다. 여가부를 폐지하기 위해선 민주당과의 협치가 필수적인 탓이다. 

정부조직법을 개정하려면 우선 국회 문턱을 넘어야 한다. 국회의원 300석 중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진보 진영이 180석을 차지하고 있는 여소야대(與小野大) 상황이라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의 의지만으론 법 개정이 어렵다.

당장 민주당 의원들의 반발이 거세 법안 통과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신현영 민주당 비대위 대변인은 6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어떤 사회적 합의도 없이 껍데기밖에 없는 구호만 내세워 국가적 갈등을 불러일으킨 것도 모자라, 국회의 입법 권한을 악용해 정부조직법 개정안 발의란 또 하나의 슬로건을 지방선거 전략으로 내세우고 있다”고 꼬집었다.

애초에 ‘지지자 달래기용’ 법안이 아니냐는 의구심도 드러냈다. 신 대변인은 “국민의힘의 속셈은 뻔하다”라며 “‘우리는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지키려 노력했으나, 민주당이 협조하지 않았다’란 프레임으로 선거에서 재미를 보겠다는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인 권인숙 민주당 의원도 “어차피 정부조직법은 민주당이 동의하지 않으면 통과되지 않을 테니 아이들 장난감 같이 아무렇게나 인기몰이에 써먹겠다는 것 아닌가”라며 “나라가 분열되든 말든, 국민이 고통 받든 말든, 상관없이 또다시 성별 갈라치기로 이기고 보자는 심보 아닌가. 참으로 저급하고 못된 정치를 한다”고 고개를 저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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