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와 간호사,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간의 충돌여파가 의료현장으로까지 번질 조짐이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간호조무사협회는 22일 서울 여의도에서 ‘간호법 제정 저지를 위한 전국 의사-간호조무사 공동 궐기대회’를 개최하며 ‘파업’ 카드를 꺼내들었기 때문이다.
이필수 대한의사협회장은 “간호법이 독립법으로 제정되면 직역 간 상호협력이 제대로 이뤄질 수 없고, 다른 보건의료 직역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질 것”이라며 “간호법이 최종 통과된다면 14만 의사와 85만 간호조무사를 포함한 보건의료 단체가 대대적인 총궐기에 나설 수밖에 없다”이라고 규탄했다.
곽지연 대한간호조무사협회장도 “간호법 적용 대상이 지역사회로 확대되면서 앞으로 장기요양 기관에서 일하는 간호조무사는 일자리를 잃거나 간호사의 보조인력으로 들어가게 된다. 응급구조사나 임상병리사들도 고유 영역을 뺏길까 전전긍긍하고 있다”며 간호법이 통과되면 파업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단독법 제정은 ‘원팀’ 파괴 행위 vs 미래 사회를 위한 시대적 요구
이들 각 직역 회장들이 의료현장 붕괴를 외치며 삭발을 단행하고 ‘파업’을 입에 올린 배경이 된 간호법 제정안은 지난 1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했다. 지난 1977년부터 이뤄진 간호사들의 숙원이 풀릴 조짐을 보인 셈이다.
하지만 통과과정부터 순탄치 않았다. 17일 복지위에서는 여야 합의 없이 민주당의 주도하에 법안이 단독 상정돼 통과됐다. 이 과정에서 전문간호사 등을 둘 수 있도록 하는 간호사의 업무범위에 대한 내용은 현행 의료법을 준용하는 차원으로 후퇴했다.
통과된 법안의 주요내용으로는 △간호 요구자에 대한 교육·상담 및 건강증진을 위한 활동의 기획과 수행,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보건활동 △간호조무사가 수행하는 업무 보조에 대한 지도 등 간호사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강화하는 내용이 다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단체와 간호조무사단체가 필사의 저지에 나서고 있는 셈이다. 간호사를 위한 단독법이 제정될 경우 여타 보건의료직군들의 단독법 요구가 커지게 되고 의료현장에서의 협업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진료보조인력으로 일부에서 간호사들의 업무를 대신하고 있는 간호조무사들의 경우 일자리를 잃고 열악한 처우가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 ‘생존권’을 건 투쟁에 나선 상황이다. 간호사들의 처우 개선에는 공감하지만 단독법 제정은 해법이 아닌 해악이라는 주장이다.
한편, 간호사들은 코로나19 펜데믹(대유행)과 같은 공중보건 위기상황을 비롯한 사회변화에서 간호수요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만큼 이를 해결하기 위한 간호법 제정은 반드시 이뤄져야할 시대적 과제라는 입장을 내놓으며 통과시키지 않으면 ‘파업’에 나서겠다는 뜻을 내보인바 있다.
이에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에서의 심의절차 단 2단계만을 남겨둔 간호법 제정을 둘러싼 논쟁을 국회가 어떻게 풀어갈지, 그로 인해 의료현장에서의 진료차질이 발생할 것인지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