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단체의 직역 간 갈등이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간호법 제정안이 오는 2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심사대에 오르는 탓이다. 간호단체는 제정안의 조속한 통과를 위해, 의사단체는 이를 저지하기 위해 각각 국회를 찾아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 위한 간호법 제정돼야” vs “간호단독법, 의료근간 훼손”
대한간호협회(간협)는 25일 국회 앞에서 간호법 제정 촉구 결의대회를 열고 조속한 간호법 제정을 촉구했다. 간호법을 통해 간호사의 처우를 개선하고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하면 국민에게 좋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신경림 간협 회장은 “간호법은 시대와 국민이 요청하는 법으로 다가올 고령화사회와 간호·돌봄에 대한 국민의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것”이라며 “국민 건강과 환자 안전을 위해 간호법 제정을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법 제정을 반대하는 이들을 향해서는 “국민 건강과 환자 안전을 위한 간호법을 악법이라 호도하며 국민을 볼모로 국회를 겁박해선 안 된다”며 “의사단체와 간호조무사단체는 더 이상 간호법에 대한 가짜뉴스와 거짓주장을 즉각 중단해 달라”고 지적했다.
조문숙 병원간호사회 회장도 “간호법 제정 과정에서 찬반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었고, 반대 의견까지 모두 반영해 여야가 합의한 간호법 대안을 마련했다”며 “앞으로 변화할 보건의료 환경에 대응하고 국민의 생명과 환자의 안전을 돌보기 위해 간호법은 조속히 국회에서 제정돼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의사단체는 ‘간호단독법’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이정근 대한의사협회 상근부회장 겸 간호단독법 저지 비상대책특별위원회 공동위원장은 이날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며 “독소조항이 대부분 삭제됐다고 하지만 우려되는 부분이 아직 남아있다”면서 “간호법 제정으로 인해 국민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막아낼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경화 의협 간호단독법 저지 비상대책특별위원회 간사도 전날 1인 시위에 나서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하고 의료근간의 훼손을 막기 위해서라도 간호법 저지를 위해 마지막까지 물러서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간호사는 찬성, 의사는 반대하는 ‘간호법’… 이유는
간호법 제정은 간호계의 숙원 과제다. 70여년 전에 제정된 의료법은 바뀐 시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해 간호사의 업무 영역이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이 오래 전부터 제기됐다. 간협은 면허증을 받아도 의료 현장을 떠나는 간호 인력이 늘고 있다는 점을 문제로 꼽는다. 간호사들은 법정 근로시간 초과 근무, 휴게시간 미보장, 연차휴가 강제 지정 등 열악한 근무환경을 호소하고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현행 의료법에서 간호사의 업무를 명확하게 규정하고, 적정 노동시간 확보 등 간호사의 처우 개선을 담은 간호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것이 간호단체의 주장이다.
쟁점이었던 ‘간호사의 업무 범위’는 현행법 그대로 두기로 했다. 당초 발의된 법안에는 ‘환자 진료에 필요한 업무’라고 명시했으나 복지위 전체회의를 거치며 해당 문구를 삭제했다. 현행 의료법에 따라 ‘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로 수정됐다. 간호사의 단독 개원 가능성을 열어놨다는 의협 등의 요구를 반영했다.
간호법을 우선 적용하는 특별법적 지위도 배제했다. 또 간호법 적용 범위에서 요앙보호사·조산사 관련 내용을 없앴다. 간호종합계획 5년마다 수립, 간호업무 기본지침 제정 및 재원 확보 방안 마련 등의 조항도 삭제됐다. 의사단체가 독소조항이라고 반발한 내용이 대거 삭제된 셈이다.
그러나 간호계를 제외한 의사단체, 간호조무사단체 등은 여전히 반대 의사를 굽히지 않고 있다. 이들은 의료법에 규정된 다른 의료인들은 그대로 두고 간호인력에 대해서만 독자적인 법률을 제정해야 하는 이유가 분명하지 않다며 ‘간호단독법’이라고 질타했다. 간호법 제정보단 현행 법체계 안에서 개정을 하거나 정부 정책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간호조무사들도 난색을 표한다. 의사의 진료보조인력인 간호조무사가 간호사만의 보조인력이 돼 사회적 지위를 악화시킬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간호법, 법사위 통과할까
오는 26일 열리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가 간호법 제정안 처리의 최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핵심 쟁점은 간호 행위 장소를 기존 의료기관에서 지역사회로 확대한 것이다. 간호계는 지역사회 돌봄 등에 적용해야 하기 때문에 ‘지역사회’ 표현을 포함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반면 의협, 간호조무사협회 등은 지역사회의 의료서비스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특정 직역이 단독 이를 수행하면 의료법과 상충할 수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법사위 통과가 최대 관문이다. 보건의료단체의 직역 간 갈등이 큰 탓에 만약 이번에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제정안이 계류된다면 논의는 또다시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
간호법이 법사위를 통과하면 제정까지는 국회 본회의만 넘으면 된다. 간호법 제정안은 지난 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제1법안소위를 통과했고, 지난 17일에는 복지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