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이 단체장 삭발의 효과를 볼지는 미지수다. 의협은 과거에도 삭발식까지 동원한 강경투쟁을 수차례 펼쳤으나 매번 원하는 결과를 얻은 건 아니었다. 의협의 ‘삭발 일지’를 정리해봤다.
2017년 11월29일
의협 국민건강수호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저녁 청와대 100m 앞 효자치안센터에서 집회에 나섰다.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인 ‘문재인 케어’ 철폐를 요구하기 위해서다. 의사들은 ‘문재인 케어’가 재정적인 측면에서 지속 가능성이 없는 정책이며, 의사들의 의료행위를 통제해 직업 수행의 자유를 박탈한다고 비판했다.
이날 최대집 투쟁위원장은 삭발까지 감행했다. 정부를 향해 “의사들의 목소리를 가벼이 여기지 말라”며 목소리를 높이며 의료계 투쟁에 불씨를 당겼다. 최 위원장은 이후 “문재인 케어를 막을 의사는 자신 밖에 없다”며 40대 의협회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기도 했다.
2018년2월25일
‘문재인 케어 철폐’ 투쟁은 2018년에도 계속됐다. 2017년 12월10일 전국의사총궐기 대회 이후 의정실무협의체가 구성됐지만 논의가 지지부진했다. 이 가운데 정부가 포괄수가제와 예비급여 확대 계획을 밝히면서 의협이 항의하고 나섰다.
이필수 대한의사협회 국민건강수호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이 서울 용산구 의협 임시회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삭발식을 진행했다. 이 위원장은 포괄수가제‧예비급여 확대 철회, 문재인 케어 협상창구 단일화 등을 지켜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만 2018년 3월29일, 10차까지 진행된 의정실무협의체 협상이 결렬되며 최종 합의에 이르는 데 실패했다. 의협은 복지부가 상복부 초음파 급여화 고시를 일방적으로 강행했다며 더 이상 협상 테이블에 앉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2018년 10월25일
복부통증을 호소하며 10일간 병원을 4차례 찾은 폐렴 소아환자에게 변비라는 오진을 내려 사망에 이르게 한 의사 3명이 금고 1년형에 법정구속 되자 의협이 나섰다.
최대집 회장은 판결을 내린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앞에서 삭발 시위를 펼쳤다. 그는 “의사의 진료행위는 선한 의도로 최선의 진료를 다했음에도 결과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금고형을 선고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후 의사 3명은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거나 집행유예로 감형 받았다. 수원지방법원 2심 재판부는 2019년 2월15일 처음 진료한 응급의학과 A씨에게 무죄, 변비로 진단한 가정의학과 전문의 B씨에게 금고 1년형에 집행유예 3년, 영상 판독결과를 확인하지 않은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C씨에게 금고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 사회봉사 40시간을 선고했다.
2019년2월26일
최대집 회장은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 앞마당에서 “관치의료 타파, 대한민국 의료정상화”를 외치며 삭발식을 거행했다.
최 회장은 “관치의료 타파와 의료제도 정상화를 위한 회원 총의를 모으기 위해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13만 회원의 뜻을 모으는 가장 중요한 과제”라며 “적극 동참을 촉구하고 집행부의 결연한 의지를 보이기 위해 삭발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2019년 6월28일
최 회장이 서울 서초구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앞에서 삭발식을 거행했다. 4번째 삭발이다.
그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의 의원급 수가 협상을 앞두고 3.5% 이상의 수가 인상 요구,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안 철회 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삭발식을 진행했다.
다만 의원급 수가 인상률이 2.9%로 최종 결정됐다. 삭발 투쟁까지 나섰지만 관철되지 않았다.
2020년 8월26일
삭발식 없이 이뤄진 투쟁도 있었다. 의협은 20년 만에 최대 규모의 총파업에 돌입했다. 앞서 전공의들은 23일부터 무기한 전면파업을 벌였다.
의협은 26일 서울 여의대로를 비롯해 전국 4개 지역에서 ‘제1차 전국의사총파업’ 궐기대회를 개최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인 △의대정원 증원 △공공의대 신설 △한방첩약 급여화 △원격의료 확대를 ‘4대 악’으로 명명하며 전국적인 총파업을 이어갔다.
결국 의협은 ‘2020 전국의사총파업’을 통해 의대 증원 및 공공의과대학 설립 등 정부의 의사 인력 증원 정책 논의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안정화 이후’로 연기했다. 다만 코로나19 확진자가 폭증하는 상황에서 진행된 파업이라 국민 여론이 부정적이었다.
2022년 5월22일
3년여만에 삭발식이 다시 등장했다. 이필수 회장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 앞에서 열린 ‘간호법 제정 저지를 위한 전국 의사‧간호조무사 공동궐기대회’에서 삭발했다. 간호사 업무 명확화, 간호사 처우 개선 등이 담긴 간호법 제정을 막기 위해서다.
의협은 의료법에 규정된 다른 의료인들은 그대로 두고 간호 인력에 대해서만 독자적인 법률을 제정해야 하는 이유가 분명하지 않다며 ‘간호단독법’이라 규정, 반발하고 있다. 특히 간호 행위 장소를 기존 의료기관에서 지역사회로 확대한 것을 두고, 특정 직역이 단독으로 이를 수행하면 의료법과 상충할 수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의협의 강경한 반대로 간호법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 상정은 일단 불발됐다. 이달 말 전반기 국회가 마무리되며 법안 논의는 하반기로 미뤄졌다. 다만 법안이 폐기된 것은 아니라 의협의 투쟁은 계속될 전망이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