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국회‧의약계 “낙태죄 대체입법 시급”

정부‧국회‧의약계 “낙태죄 대체입법 시급”

기사승인 2022-06-14 17:44:01
14일 국민의힘 서정숙‧최재형‧전주혜 의원이 공동주최하고 바른인권여성연합이 주관, 대한약사회가 후원한 ‘낙태법 개정안 입법 세미나’가 국회에서 열렸다.   사진=김은빈 기자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지 3년이 흘렀다. 그러나 임신중단을 희망하는 여성들은 여전히 불안에 떨고 있다. 정부와 국회가 논쟁적 이슈에 손을 놓으면서 대체 입법을 마련하지 않은 탓이다. 불법적으로 유통된 낙태약을 구입, 복용하는 등 사각지대가 여전하다.

이에 정부와 국회, 의약계가 모여 대체 입법을 논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14일 국민의힘 서정숙‧최재형‧전주혜 의원이 공동주최하고 바른인권여성연합이 주관, 대한약사회가 후원한 ‘낙태법 개정안 입법 세미나’가 국회에서 열렸다.

의약계 “낙태약, 전문가 지도 아래 복용할 수 있도록 정비해야”

낙태법이 국회에서 표류하는 사이 온라인상에서는 낙태 유도제가 불법적인 방법으로 거래되는 실정이다. 김영희 대한약사회 이사는 이같은 사태에 우려를 표하며 의사, 약사 같은 전문가들의 지도 아래 복용할 수 있도록 조속히 법령을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이사는 약물에 의한 인공임신중절은 진단, 처방, 조제 및 복약지도에 있어 여성의 건강상태 뿐 아니라 심리 상태를 고려한 세심한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전문가 상담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김 이사에 따르면 지난 2005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인공임신중단약을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하고 약의 안전한 사용에 있어 약사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권고하고 있다.

김 이사는 “이 순간에도 불법낙태약은 여전히 검색되고 구매가 되고 있다. 미성년자나 여건이 어려운 여성의 경우 온라인상에서 30~40만원에 해당하는 불법낙태약을 구하기 위해 또 다른 범죄가 유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불법적인 약 구매는 정상적인 성분이 함유돼 있는지도 확인할 수 없어 반드시 의사 약사 상담이 필요한 약”이라며 “수요는 계속 발생하는 현실에서 언제까지 여성들이 국가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건강권을 불법적인 온라인상에 내던진 채 수수방관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에서 낙태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신중하게 정해야 한다”며 “불안한 수요자들에게 안전하고 건강한 재생산을 위해 약물 투여 전과 후처리와 관련된 전문가의 정확한 케어를 받을 수 있게 되길 정부와 국회에 간절하게 호소한다”고 했다.

14일 국민의힘 서정숙‧최재형‧전주혜 의원이 공동주최하고 바른인권여성연합이 주관, 대한약사회가 후원한 ‘낙태법 개정안 입법 세미나’가 국회에서 열렸다.   사진=김은빈 기자

정부 “입법 공백에 정책 추진 한계… 논의 시작해야”

정부는 낙태죄 입법 공백으로 인해 정책 과제 추진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최영준 보건복지부 인구정책실 출산정책 과장은 “정부가 추진해야 할 정책 과제들이 기획 단계에만 머무르고 있다”고 밝혔다. 

그동안 정부는 여성 건강권 보장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마련했다. 구체적으로 2018년, 2021년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를 실시해 개선입법 기한 경과 이후 현장의 변화 및 의료환경 실태파악을 추진했다. 지난해 8월 인공임신중절 관련 교육‧상담 수가를 신설해 임신한 여성들이 인공임신중절에 관한 정확한 의학적 정보와 심층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개정법의 부재로 추진하지 못한 사업도 있다. 정부는 임신‧출산 종합 상담센터 구축,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를 통한 계획 임신 등에 관한 교육 및 홍보 고도화 등 정책을 설계했으나 예산 확보 단계에서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 과장은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라는 두 가지 기본권을 어떻게 조화롭게 법‧제도에 어떻게 담아낼지가 중요하다”며 “심도 있는 토론을 통해 헌법재판소가 주문한 개정 입법과 제도를 만들어야 할 때”라고 촉구했다.

14일 국민의힘 서정숙‧최재형‧전주혜 의원이 공동주최하고 바른인권여성연합이 주관, 대한약사회가 후원한 ‘낙태법 개정안 입법 세미나’가 국회에서 열렸다.   사진=김은빈 기자

국회 “법안 마련 시급… 입법부로서 책무 다할 것”

국회도 낙태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아직 관련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낙태법 개정안(모자보건법, 형법)은 더불어민주당 2건(권인숙‧박주민), 국민의힘 2건(조해진‧서정숙), 정의당 1건(이은주) 등 총 6건의 개정안이 발의됐다.

권인숙‧박주민 민주당 의원과 이은주 정의당 의원의 안은 낙태죄 자체를 폐지하는 내용이다. 기존 모자보건법에 ‘태아가 모체 밖에서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시기’라는 허용 범위 조항을 삭제해 사실상 임신 전 기간의 낙태를 허용하도록 했다.

반면 조해진‧서정숙 국민의힘 의원안은 사실상 낙태죄의 틀 자체는 유지하는 내용에 가깝다. 조 의원안은 ‘심장박동법’으로 불리는 텍사스 주법과 마찬가지로 태아의 심장박동이 감지되는 6주 이후의 낙태를 금지한다. 7~10주 이내엔 사회적‧경제적 사유가 있을 때, 강간 혹은 여성건강 침해 시 임신 20주 이내에 임신중단을 허용하도록 했다.

서정숙 의원안은 임신 10주 이내만 임신중단을 허용한다. 서 의원은 10주 이내를 기준으로 한 이유에 대해 “임신 10주가 되면 태아는 대부분의 장기와 뼈가 형성되고 그 이후 낙태할 경우 과다출혈과 자궁손상 등 산모의 합병증 위험이 더 커진다. 자궁소파술이나 확장추출방식으로 인해 자궁천공, 출혈 등 산모의 건강이 심각하게 위협 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날 토론에 참석한 의원들은 대체 입법 논의를 조속히 시작하겠다고 약속했다. 서 의원은 “국회가 입법시한을 넘긴지도 벌써 1년6개월이 다 돼 간다. 그 사이 태아의 생명권도 지키지 못하고 여성의 건강도 지키지 못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 걱정스럽다”며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법을 만드는 입법부로서 책무를 다하겠다”고 말했다. 

최재형 국민의힘 의원도 “입법부의 일원으로서 큰 책임감을 느낀다”며 “태아의 생명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고 진정 여성의 인권을 위하는 입법과 정책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도 “낙태 관련 법 조항의 효력이 상실됐음에도 대안 입법이 표류하고 있어 개정안 마련이 시급하다”며 “오늘 자리가 건강한 여성의 삶과 태아의 생명권 보호에 대한 발전적 대안을 제시하는 귀중한 공론의 장이 되길 기대한다”고 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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