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을 ‘약국 밖’에서 살 길이 열렸다

약을 ‘약국 밖’에서 살 길이 열렸다

화상투약기계, 개발 10년 만에 제도적 인정받아

기사승인 2022-06-21 06:00:06
대한약사회 회원들이 19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열린 약 자판기 저지 약사 궐기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화상투약기가 실증특례를 받고 개발 10년만에 본격 출시된다. 대한약사회(이하 약사회)의 반대 속에 타결된 실증특례인 만큼, 향후 정부·기업·약사회의 대화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20일 오후 4시부터 규제샌드박스 심의위원회를 개최하고 화상투약기 관련 안건을 심의했다. 심의 결과 조건부로 실증특례를 승인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구체적으로 어떤 조건이 붙게 될지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이에 앞으로는 화상투약기를 통해 24시간 약을 판매하는 약국도 등장할 수 있다. 화상투약기는 휴일, 심야 등 약국이 운영되지 않는 시간대에 의약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약국 앞에 설치하는 기계다. 모니터를 통해 약사와 화상통화를 진행하고 기계를 통해 의약품을 구매하는 방식이다. 약사는 약국 밖에서 환자에게 필요한 의약품을 판단해 원격으로 선택한다. 결제를 마친 환자는 화면으로 약사에게 의약품이 정확히 제공됐는지 확인받고, 복약지도를 받게 된다.

화상투약기 실증특례는 지난해 한 차례 무산됐다. 과기부는 당초 지난해 12월 제21차 심의위원회 안건으로 화상투약기를 상정할 예정이었지만, 사전 회의를 통해 업체 측과 대한약사회, 심의위원들의 의견을 조율하지 못했다. 이후 논의가 잠정 보류됐다가 새 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개최된 이날 심의위원회 안건으로 오르게 됐다.

실증특례를 얻은 제품이나 기술은 상용화까지 정부의 특혜가 보장된다. 과기부는 실증특례 승인기업에게 실증특례비 최대 5억원과 책임 보험료 최대 1500만원을 지원한다. 융자지원 혜택도 따라온다. 산업구조고도화지원 프로그램에 따라 우대금리를 적용받을 수 있다. 특허를 출원하는 경우 2개월 내 심사를 완료할 수 있다. 일반 심사 대비 11개월 시간을 아낄 수 있다. 화상투약기는 약국가에 형성된 인프라가 전혀 없어, 출시 동력을 확보하려면 실증특례가 선결과제였다.

현재 운영 중인 화상투약기는 없다. 앞서 2012년 개발 이후 2013년 인천 부평구 소재 약국에 시범 설치된 사례가 있다. 지난해에는 경기도 용인시 소재 약국에 시범 설치되기도 했다. 하지만 두 차례 모두 오래지 않아 철수 수순을 밟았다. 약국 이외 장소에서 의약품을 판매할 수 없다는 약사법상 규제에 저촉된다는 논란이 해소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화상투약기에 완강한 반대 의견을 표한 대한약사회(이하 약사회)측과 견해 차이도 좁히지 못했다. 법률 문제와 약사회 측 반대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약사회는 소수의 사기업에 약국이 예속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보건의료 분야는 공익을 위해 시장 논리가 배제되는데, 약국 운영에 몇몇 기업이 개입해 영리를 추구하기 시작하면 부작용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규제샌드박스 실증특례를 받을 만큼의 필요성도 없다고 지적한다. 전국에 지정된 약국들이 심야·휴일에 운영되고 있고, 수요가 증가하면 그에 따라 지정 약국을 조정하면 된다는 것이다. 

규제샌드박스 실증특례를 인정할 만큼 신기술로서 가치가 높다고 평가할 수 없다는 비판도 나온다. 개발된지 10년이 경과했기 때문에 이미 시의성을 잃었다는 것이다. 복약지도와 정확성도 담보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대한약사회 관계자는 “화상통화를 하면서 복약지도를 받고, 기계가 제공한 약을 화면에 비춰서 확인하는 방식이라면 그에 따르지 않는 환자들은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나”라며 “복약지도를 듣지 않고, 약을 받아 바로 자리를 떠나버리면 방법이 없지 않나”고 반문했다. 이어 “약사법상 규제들을 섣불리 완화하면, 법으로 보호하려는 보건의료의 공공성과 안전성이 금세 훼손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약사회는 19일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총력 집회를 개최하고 화상투약기의 규제샌드박스 심의위원회 안건 상정을 규탄했다. 약사회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약 자판기 도입 시도는 국민의 건강과 안전은 안중에도 없고 기업의 이익만을 고려한 특혜성 정책에 불과하다”며 “약 자판기는 구체적인 사업계획도 없을뿐더러 약화사고 시 책임소재, 기계 오작동 및 의약품 변질 등 그동안 지적해온 문제점이 어느 것 하나 해결되지 않았음에도 일단 도입 논의부터 하자는 것은 무책임하고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화상투약기 실증특례가 비대면 진료 서비스에 일시적 차질로 이어질 조짐도 보인다. 약국가의 집단 보이콧이 예고됐기 때문이다. 약사회는 “만에 하나 약 자판기(화상투약기) 실증특례가 허용될 경우, 비대면 진료 대응 약·정 협의 전면 중단과 동시에,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전면 투쟁에 나설 것임을 천명한다”고 완강한 입장을 표했다.

한성주 기자 castleowner@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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