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제약사들 모인 산별노조, 왜 필요할까?

다국적 제약사들 모인 산별노조, 왜 필요할까?

기사승인 2022-07-15 06:00:01
전국제약바이오노동조합(NPU) 안덕환 의장(왼쪽)과 강승욱 사무국장.   사진=임형택 기자

 

제약산업 근로자들이 새롭게 출범한 산별노조 ‘전국제약바이오노동조합(NPU)’로 모였다. 팬데믹을 계기로 의약품 산업의 중요성이 급부상했지만, 실질적으로 산업을 굴러가게 하는 근로자들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는 것이 이들의 문제의식이다. 

13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난 NPU 안덕환 의장과 강승욱 사무국장은 다국적 제약사의 근로자들이 지속적으로 공동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구심점의 역할을 해낼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16개사 근로자 2500명 모인 ‘대식구’

NPU에는 총 16개 제약기업이 모였다. 15개는 다국적 기업과 1개의 국내기업(현대약품) 등이다. NPU는 산별노조이므로, 이에 참여한 기업별 노조는 산별노조 전환 절차를 밟아야 한다. 산별노조로 전환되면 단체교섭과 단체협약 체결권 등은 NPU가 갖는다. 기존 기업별 노조는 NPU의 지부가 된다. 사측과 마주앉는 노측의 몸집과 목소리가 더욱 커지는 셈이다.

참여 기업 중 △암젠코리아 △입센코리아 △한국노바티스 △한국비아트리스 △노보노디스크제약 △바이엘코리아 △한국얀센 △한국화이자제약 등 8개 기업의 기업별 노조는 산별노조로 전환을 마쳤다. 나머지 △현대약품 △오펠라헬스케어코리아 △한국머크 △사노피-아벤티스코리아 △알보젠코리아 △한국GSK △한국베링거인겔하임 △한국아스트라제네카 등 8곳의 노동조합도 산별노조 전환 작업 중이다.

안덕환 의장: “NPU는 모든 제약계 노조에 열려있어요. 다국적 제약사만으로 가입 범위를 한정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국내 제약사와 다국적 제약사는 노조의 구성에 차이가 있어요. 국내 제약사는 국내 생산 설비가 있어 생산직, 현장직 중심인 경향이 있습니다. 다국적 제약사는 국내에 생산 설비가 있는 경우가 매우 드물어서 사무직, 영업직 중심으로 조직되죠. 그러니 성격이 비슷한 다국적 제약사의 노조들이 자연스럽게 함께 모이게 된 것입니다.”

강승욱 사무국장: “총 조합원은 현재까지 2500여명입니다. 조합원들은 생산직 근로자들도 있고, 사무직과 영업직 근로자도 많아요. 특히 영업직 근로자들의 참여가 큰 의미를 갖습니다. 제약사 영업부는 전국에 분산되어 있고, 외근직 특성상 모일 기회도 적어요. 업무 특성상 성과가 바로 수치화되기 때문에 근로자들 간 내부 경쟁이 치열하죠. 그래서 사측에 함께 대응해야 할 때도 목소리를 모으기 쉽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영업직이야말로 노동조합의 필요성이 가장 큰 직무라고 할 수 있어요.”

안 의장이 NPU의 활동 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본사 방침’은 만능 열쇠 아냐

NPU가 제시하는 핵심 목표는 상당히 수수하다. 화려한 복지도, 파격적인 임금상승도 아닌 ‘국내 법 준수’다. 안 의장과 강 사무국장에 따르면, 글로벌 제약기업의 한국 법인은 본사가 임의로 조직을 축소·조정하기 쉽다. 한국에는 공장이 없기 때문에 조직에 변화를 가해도 생산과 공급에 지장이 생길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 법인의 사측 역시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본사의 방침을 그대로 따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글로벌 제약기업 근로자들에게는 철마다 ‘본사 방침’이라는 말이 전달된다. 외신을 통해 본사가 구조 조정, 조직 개편, 인원 감축 등을 감행한다는 보도를 접하면 근로자들은 불안감에 휩싸인다. 다음날 회사에 출근하면 어김 없이 본사 가이드라인에 따른 희망퇴직프로그램(ERP) 공지가 내려오는 수순이다. 본사 방침이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을 뛰어넘는 상황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것이 NPU의 각오다.

안덕환 의장: “2003년 영업부서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같은 부서 선배 가운데는 마흔을 무사히 넘긴 사례가 없었습니다. 영업부서 직원들은 40살이 넘으면 당연히 희망퇴직을 한다고 불문율로 정해져 있었죠. 하지만 우리나라 노동법을 아무리 샅샅이 뒤져봐도 마흔이 넘은 직원은 내보내도 좋다는 규정은 없어요. 법보다 회사의 방침이 당연한 규칙으로 여겨지는 기형적인 상황을 바로잡고 싶었어요. 사측의 경영 방침과 사업 전략에 무작정 반대하는 노동조합은 없어요. 조합원들도 직장을 아끼는 근로자들이고, 자부심을 갖고 일합니다. 다만 법은 지키라는 요청을 하는 겁니다.”

강승욱 사무국장: “한국 법인의 경영진은 대개 본사의 방침을 어길 수 없다는 입장으로 일관합니다. 하지만 정말로 그런지는 알 수 없죠. 최소한 본사에 한국의 노동법을 설명하고, 설득하려는 노력은 할 수 있잖아요. 본사와 한국 법인의 사이에서 근로자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휘둘리기 쉬운 처지입니다. 그래서 글로벌 제약기업 근로자들에게는 더욱 노동조합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근로자 개인이 불이익 위험을 감수하고 회사의 부당한 처사에 문제를 제기하기는 어렵습니다. 노동조합이 본사에 직접 메일을 보내거나 외신과 접촉하는 등 근로자들을 대신해 적극 나설 수 있죠. 모든 요구사항을 관철하지는 못하더라도, 근로자들의 목소리를 모아 지속적으로 전달해야 합니다.” 

최근 관심을 두는 노동이슈를 묻는 질문에 강 사무국장이 답변하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고용불안·감정노동 ‘이중고’ 영업직 주목

팬데믹 이후 심화한 고용불안으로부터 근로자를 보호하는 것이 NPU가 당면한 과제다. 특히, 안 의장과 강 사무국장이 가장 마음이 쓰이는 이들은 영업직 근로자들이다. 의료기관과 약국에 출입하기 어려워지면서 영업활동 방식이 비대면으로 전환됐다. 기업 경영진에게 영업부서는 비용을 절감하기 좋은 부서로 지목되기 십상이다. 실제로 국내외 구분 없이 팬데믹 이후 제약기업들의 판관비는 대폭 줄었다.

대면 영업이 활기를 찾아도 문제다. 제약기업 영업직 근로자들은 감정노동자로서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감정노동자 보호법’으로 불리는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은 고객 응대 근로자가 고객의 폭언과 괴롭힘 피해를 입었을 때 △업무의 일시적 중단 △업무 전환 △휴게 시간의 연장 등의 조처를 하도록 규정한다. 콜센터나 은행과 같이 고객이 근로자를 찾아오는 직장을 전제로 마련된 법이다. 고객을 찾아다니는 제약기업 영업직 근로자들은 법의 사각지대에 남겨지기 쉽다.

안덕환 의장: “최근 2년 사이에 제약기업들의 영업비용이 굉장히 낮아졌어요. 영업에 드는 비용을 아낄 수 있으니 직원들에게 재투자도 하지 않죠. 현재 많은 영업직 근로자들이 자신의 쓸모를 입증하지 못하게 될까 불안감을 느끼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동안 회사의 성장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야 하는 근로자들이, 오히려 자리를 지킬 수 없게 되는 상황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노동조합의 기본적인 목표인 고용안정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는 상황입니다.” 

강승욱 사무국장: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근로자들은 비단 제약계 영업직 근로자뿐이 아닐 겁니다. 감정노동을 감수하게 되는 직업은 너무나도 다양한데, 지금 산업안전보건법은 그 중에서도 몇개의 한정적인 직업만 보호한다는 한계가 있어요. 영업직 근로자들이 안정적으로 법의 보호를 받으면서 근무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NPU에서도 보다 다양한 노동이슈에 관심을 갖고 신선한 시도를 하려고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한성주 기자 castleowner@kukinews.com

한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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