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온 얼음페트병…“불합리한 처우개선 요구했을 뿐인데”

날아온 얼음페트병…“불합리한 처우개선 요구했을 뿐인데”

대우조선해양 인권운동 긴급대응팀, 기자회견 개최
파업의 배경, 조선업의 기형적 노동구조 "하청에 또 하청"
"대우조선해양, 노동자간 갈등 부추겨"

기사승인 2022-07-21 16:08:29
연합뉴스

“처음 파업의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열악한 조선소 환경에서 제 자녀들, 후배들, 젊은이들이 일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전면 파업 이후 회사는 구사대를 통한 폭력침탈을 시도하더군요. 함께 뜻을 모은 동료들은 서로 팔짱을 끼고 현장에서 버텼습니다. 그들은 욕을 하며 들어오더군요. 그들은 ‘너희가 먼저 던졌다’며 살인무기와 다를 바 없는 얼음페트병을 던졌고 저희 조합원 한 분이 맞았습니다. 절대 저희는 폭력적 대응을 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싸움이 이어질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 싸움에서 꼭 이겨서 많은 분들이 좀 더 나은 삶의 질을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노조 파업이 49일째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사측이 노동자들 사이 혐오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들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은 파업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회사 존폐의 책임을 파업 노동자에게 돌리거나 자격증이 없는 노동자를 작업에 투입하고 있다. 또 현장을 점거한 파업 노동자를 몰아내기 위해 투입된 구사대는 얼음 페트병, 커터칼 등을 이용해 폭력적 진입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파업투쟁 인권운동 긴급대응팀은 21일 오후 1시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파업 관련 긴급인권보고서 발표회를 가졌다. 이날 기자회견은 임금 문제 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조선업의 기형적인 노동구조와 사측의 인권 탄압에 대한 심도 깊은 비판이 제기됐다.

안세진 기자

하청에 또 하청…조선업의 노동구조

파업의 배경에는 조선업 특유의 기형적 노동구조가 있다. 원청이 하청에게, 하청이 또다른 업체에게 재하청을 주는 구조로 이뤄져 있다. 하청업체는 원청과 업무의 완성을 목적으로 하는 도급계약을 체결하는 만큼 작업시간, 휴게시간, 연장근로 등은 모두 원청의 통제와 지시 하에 이뤄진다.  노동자들이 인권 개선을 위해 의견을 개진하려면 수많은 하청업체, 원청업체인 대우조선해양, 모회사인 산업은행을 거쳐야 하는 만큼 구조 속에 갇힌 셈이다.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는 “재하도급은 원하청간 도급 계약서상 금지되어 있지만 조선소 현장에서는 물량팀과 아웃소싱이라는 이름으로 편법적 재하도급이 운영 중이다”라며 “독립적인 사업을 할 역량이 안되는 하청업체들이 원청이 지급하는 기성금 이외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인력을 파견하고 중간착취를 하는 것 뿐”이라고 비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한 조선소 안에 다양한 임금구조가 존재하고 있다. 조합원 A씨(용접공, 상용직)는 “현재 관리직만 월급제고 나머지는 모두 시급으로 전환됐다. 같은 시급제에도 직시급, 물량만큼 지급, 일당 등 임금구조가 너무 많다”라고 토로했다. B씨(터치업, 일당제)는 “임금을 올려준다고 해도 사람마다 다 다르다. 울며 겨자 먹기로 근로계약서를 쓴다”고 말했다.

산업은행이 책임을 피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 2000년 10월 대우중공업의 구조조정과 한국산업은행의 출자 전환에 따라 산업은행 자회사로 편입됐다. 현재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의 지분 55.7%를 보유하고 있으며 연결대상 자회사로 관리하고 있다. 

김혜진 활동가는 “노동자들이 요구하는 삭감된 임금의 원상회복은 결국 원청인 대우조선해양이 기성금을 올려야 가능한 것이고, 그렇게 기성금을 올리는 데에는 대주주인 산업은행이 권한을 가지고 있다”면서 “그런데 산업은행은 이번 파업에 대해 노사간 문제는 자신들이 관여할 일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안세진 기자

"대우조선해양, 노동자간 갈등 부추겨"

상황이 길어지면서 사측과 하청노동자들의 대립은 노동자와 노동자의 대결구도로 재편됐다. 지난 6일 대우조선해양은 담화문 발표에서 “도크 무단 점거로 전후 공정의 생산량을 대폭 축소할 수밖에 없는 등 회사 존폐가 우려되는 상황에 이르게 됐다”며 폐업의 책임을 파업 노동자들에게 돌렸다. 파업 노동자들을 향한 공격은 온라인에서도 이뤄졌다. 익명으로 만들어진 카카오톡 채팅방에서 파업 노동자들을 향한 혐오가 이어졌다.

랄라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는 “대우조선해양은 경영위기, 휴업, 손실의 원인이 하청노동자들의 파업 때문이라며 정규직과 하청노동자들의 불안을 부추겼다”며 “사측은 파업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아웃소싱이나 작업 자격증이 없는 노동자를 고용해 작업을 진행했다. 대립 과정에서 사측의 폭력이 강해졌고 동원된 사람들은 커터칼을 꺼내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서로 간에 불신과 혐오가 자리잡았다”며 “위기론은 조선소 내부를 넘어서 거제 지역사회로까지 확장되었다. 대우조선해양은 최근 지역 시민들까지 동원해 정상화를 기원하는 인간 띠 잇기 행사를 진행하거나 정부에 ‘불법파업에 공권력 투입해달라’라는 민원을 제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정부는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공권력 투입 가능성을 언급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전날 국무회의에서 “불법적이고 위협적인 방식을 동원하는 것은 더 이상 국민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공권력 투입을 통한 강경 대응을 시사했다. 

랄라 상임활동가는 “지난 2019년 경찰청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백남기 농민 사망, 쌍용차 파업, 용산 화재 참사에서의 경찰인권침해를 조사하고 이를 개선하고자 했다”며 “특히 쌍용차 파업에 대한 경찰진압은 청와대 승인에 따라 정부가 노사 자율로 해결할 사안을 경찰의 물리력을 통해 해결하라고 한 사건으로 집회의 권리보장을 우선으로 하고 경찰력 투입은 최후적 또는 보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권고 담겨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와 경찰은 진상조사위의 권고를 다시 상기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세진 기자 asj0525@kukinews.com

안세진 기자
asj0525@kukinews.com
안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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