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처럼 펼쳐지는 삶의 마법, ‘킹키부츠’ [쿡리뷰]

축제처럼 펼쳐지는 삶의 마법, ‘킹키부츠’ [쿡리뷰]

기사승인 2022-07-26 09:00:08
뮤지컬 ‘킹키부츠’ 2020년 공연 장면. 롤라 역의 배우 최재림(가운데). CJ ENM

아찔하게 높고 짜릿하게 붉은 부츠, 그 위에 올라탄 근육질 몸매. 남자도 여자도 아닌 신비로운 존재가 말한다. “너 자신이 돼. 타인은 이미 차고 넘쳐!” 기운 찬 목소리가 흡사 기합을 넣는 것 같기도, 주문을 거는 것 같기도 하다. 성(性) 경계를 박살내고 ‘나다움’의 경지에 이른 그의 이름은 롤라. 지난 20일 개막한 뮤지컬 ‘킹키부츠’의 주인공이다.

‘킹키부츠’는 1979년 영국 노샘프턴의 신발공장에서 벌어진 실화를 토대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신발공장 사장 찰리와 드랙 퀸(사회적으로 고정된 성별 정의에서 벗어나 자신을 표현하는 아티스트) 롤라를 통해 세상의 시선에서 벗어나 ‘나다움’을 회복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2012년 미국 시카고에서 초연한 뒤 한국에서는 2014년부터 다섯 시즌 째 관객을 만나고 있다.

아버지에게 남성 수제화 공장을 물려받은 찰리는 골치가 아프다. 외국에서 수입되는 값싼 기성화 때문에 신발이 안 팔려서다. 신발 때문에 골치가 아프기는 롤라도 마찬가지. 자신의 육중한 신체를 견디지 못하는 하이힐이 야속하기만 하다. 찰리는 드랙 퀸을 위한 튼튼한 부츠, 일명 킹키부츠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그는 롤라를 디자이너로 고용해 밀라노 패션쇼를 준비한다.

공연은 한바탕 축제 같다. 휘황찬란한 드레스와 섹시한 부츠, 엔젤이라 불리는 드랙 퀸 배우들의 화려한 군무가 볼거리를 책임진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인생의 주인으로 우뚝 선 등장인물들이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응원을 나누는 전개가 가슴을 벅차게 한다. 다른 누군가와 함께하는 기쁨이 혼자인 데서 오는 슬픔을 몰아내는 삶의 마법. 유쾌하고 뭉클하다.

‘킹키부츠’ 2020년 공연 장면. 찰리 역 이석훈(왼쪽)과 롤라 역 최재림. CJ ENM

팝스타 신디 로퍼가 만든 음악은 흥겹게 관객을 달군다. 알앤비, 디스코 등 팝에 뿌리를 둔 음악은 강한 중독성으로 무장해 귓가에 달라붙는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방역 지침이 완화된 공연장에선 함성이 멎을 줄 몰랐다. 박수만 칠 수 있던 2년 전의 한을 풀 듯, 열성적인 환호가 곡마다 터져 나왔다. 마지막 곡 ‘레이즈 유 업’(Raise You Up)에선 관객들이 ‘떼춤’을 추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네 번째 시즌에 이어 다시 한 번 ‘킹키부츠’로 돌아온 이석훈과 최재림은 노련한 호흡을 보여준다. 다정하고 자상한 면모 덕에 ‘유죄 인간’으로 불리는 이석훈은 찰리의 샌님 같은 성격을 사랑스럽게 표현한다. 키 188㎝ 거구를 가진 최재림은 등장만으로도 시선을 빨아들인다. 능글맞고 너그러운 롤라의 모습 뒤로 그가 경험했을 산전수전 공중전을 상상하게 만든다. 이외에도 김성규와 신재범이 찰리를 번갈아 연기하고, 강홍석과 서경수가 롤라를 맡았다.

“네가 힘들 때 곁에 있을게 / 삶이 지칠 때 힘이 돼 줄게”라고 노래하는 ‘킹키부츠’는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고립된 이들에게 용기와 열정을 준다. ‘킹키부츠’의 실제 모델인 스티브 팻맨은 끝내 공장 폐업을 막지 못했다고 한다. 킹키부츠 성공 이후 드랙 퀸을 겨냥한 부츠가 여기저기서 쏟아져서다. 하지만 그에게서 시작된 ‘킹키부츠 정신’은 시간을 달리고 바다를 건너 2022년 한국 관객에게 와 닿았다. 어떤 실패는 실패로만 기록되지 않는다. 공연은 오는 10월23일까지 서울 흥인동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이어진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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