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변방의 케이블 채널에서 방영한 드라마가 시청률과 화제성을 넘어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 줄. 이변을 일으킨 주인공은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우영우 인사법, 우영우 김밥, 고래 등 극에 등장하는 여러 요소가 유행으로 번졌다. 매 회 화제를 몰며 신드롬을 일으킨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만든 유인식 감독과 문지원 작가는 인기 이유를 어디에서 찾을까. 유 감독과 문 작가는 26일 서울 상암동 스탠포드호텔코리아 그랜드볼룸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작품 준비과정과 인기에 대한 소회 등 여러 이야기를 풀어놨다.
“입소문 타길 바랐지만 이 정도일 줄은…”
감독과 작가는 “이 정도의 인기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입을 모았다. 아직 인지도 낮은 케이블채널 ENA에서 방송했다. 장애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확신도 적었다. 하지만 0.9%(닐슨코리아 전국 유료가구 기준)로 시작한 시청률은 매 회 자체 최고치를 찍으며 13.1%까지 올랐다. 작품이 동시 공개되는 넷플릭스에선 자체 집계 기준 비영어권 국가 1위를 기록했다. 유 감독은 “평양냉면처럼 심심한 드라마인 만큼 입소문을 타길 바랐다”면서 “초반부터 이렇게 열화와 같은 반응이 올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작가 역시 카페나 버스에서 우영우 이야기가 나오는 걸 들으며 인기를 실감했단다. 문 작가는 “순두부 계란탕처럼 밝고 따뜻한 힐링 드라마지만 그 안엔 많은 야심과 도전이 숨어있다”고 말했다.
“자폐 긍정적으로만 그린다? 어쩔 수 없는 한계”
일각에선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을 너무 긍정적으로 그리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문 작가는 “드라마에 자문을 해주신 교수님이 장점 중심으로 접근하는 게 좋다더라. 이분들이 가진 좋은 부분이 그려지는 걸 지지한다는 말에 힘입어 캐릭터를 구체화했다”면서 “불편한 의견도 깊이 공감한다. ‘내 의도는 이렇다’며 변호하고 싶진 않다. 작품이 가진 한계”라고 말했다. 유 감독 역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자폐인이 비자폐인과 함께 변호사가 되면 어떨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면서 “이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가 우영우다. 우영우가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을 대표할 순 없다. 주인공의 현실성보다는, 창작자로서 하려는 이야기가 잘 전달될지에 집중했다”고 강조했다. 작가는 “자폐로 인한 어려움이나 어두운 부분을 다루지 않으려 한 건 아니다”면서 “그걸 보여주다가 실제 자폐인 가족에게 상처를 줄까 봐 표현 강도를 두고 고민을 거쳤다”고 부연했다.
“조연 캐릭터, 들러리로 느껴지지 않도록 경계”
조연 캐릭터 설정에도 주의를 기울였다. 정명석(강기영)은 문 작가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40대 남자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작가는 “자칫하면 ‘우영우와 들러리’로 느껴질 것 같아 경계했다”면서 “매 회 사건을 풀어야 하는 만큼 인물들에게 분량을 많이 할애할 수 없었다. 짧게 봐도 빛이 날 수 있도록 개성을 주는 데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봄날의 햇살’ 최수연(하윤경), ‘권모술수’ 권민우(주종혁)는 우영우에게 쏠릴 현실적인 반응을 대변하는 인물들이다. 작가는 “권민우는 ‘권력에 민감한 친구’라는 뜻을 넣어 지은 이름”이라면서 “최수연은 잘해주고 싶지만 잘해주는 게 괴로운, 내면의 갈등을 담은 봄날의 햇살이라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동그라미(주현영)는 강렬한 인상을 주고자 독특한 이름으로 설정했다. 작품에 악역(빌런)이 없는 것도 특징이다. 작가는 “우영우가 마주한 가장 큰 어려움은 자폐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편견”이라면서 “도드라지는 빌런을 굳이 넣지 않으려 했다”고 부연했다.
“우영우 러브라인, 꼭 필요하다 생각”
우영우와 이준호(강태오)의 러브라인을 두고 시청자 사이에선 의견이 갈렸다. 극의 흐름을 해친다는 비판도 나왔다. 작가는 “이준호는 감독과 가장 고민을 많이 했던 캐릭터”라면서 “자폐로 인해 자기중심적인 영우가 사랑에 빠져 타인을 자신의 세계에 초대하고 발맞춰 걷는 서사가 성장 드라마로서 꼭 필요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배우 강태오의 캐릭터 해석에 감탄한 순간도 있었다. 작가는 “강태오가 준호와 영우를 보고 고양이를 산책시키는 마음이 들었다더라. 개는 보호자가 리드줄을 묶고 가지만 ‘산책묘’는 한 발 뒤에 떨어져 고양이가 가는 대로 따라가다 필요할 때만 도움을 준다더라. 그 말을 듣고 무릎을 탁 쳤다. 이런 느낌으로 두 사람의 관계를 그리려 했다”고 말했다. 이어 “8회까진 서로에게 빠져드는 모습이 담겼다. 앞으로는 더욱더 깊은 고민이 드러날 것”이라면서 “영우로선 자폐인이 타인을 받아들이는 게 어떤 의미인지, 준호로선 장애가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다룰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권민우의 ‘역차별’ 발언, 현실을 보여주려 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인기를 얻으며 여러 담론이 형성됐다. 권민우가 최근 사회에 만연한 능력주의와 이기주의를 대변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작가는 “우영우는 배려와 양보가 필요한 약자임과 동시에 기를 쓰고 이기려 해도 이길 수 없는 강자다. 주변 인물은 심경이 복잡할 것”이라면서 “최수연 같은 사람도 있겠지만 권민우처럼 역차별로 느낄 사람도 있지 않을까. 대형 로펌에 입사한 영우에게 쏠릴 여러 입장을 현실적으로 보여주려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창작자가 작품을 통해 뭔가를 말하려 하면 시청자가 그걸 빨리 캐치해 시시해한다. 메시지를 따로 전할 생각은 없었다. 혹시라도 메시지가 들어갈까 늘 경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우영우 패러디 논란, 새로운 기준점 만들어지길”
얼마 전 우영우의 말투를 흉내 내는 영상이 올라와 논란이 됐다. 희화화와 패러디 사이에서 비난 여론도 조성됐다. 제작진은 이에 대해 조심스러운 입장을 밝혔다. “드라마 만드는 사람으로서 편안한 이야기는 아니다”고 운을 뗀 유 감독은 “우영우를 따라 하는 게 자폐인을 비하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을 거라 본다. 하지만 우영우의 행동은 드라마를 통해 쌓은 맥락 위에서 벌어지는 것이나, 드라마 밖에서 그 행동의 어느 순간만을 따라 하면 또 다른 맥락이 발생한다. 본인 의도와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시대 감수성이 빠르게 변하는 만큼 희화화와 패러디를 누군가가 정의할 순 없다. 만든 사람으로서 시청자가 드라마를 즐기는 방식에 왈가왈부할 수도 없다”면서 “소재가 소재인 만큼 과거와는 다른 문제의식이 생겨난 것 같다. 공론화를 거쳐 새 기준점이 만들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