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는 낙태하고 가난한 사람은 죽는다’ [쿠키청년기자단]

‘부자는 낙태하고 가난한 사람은 죽는다’ [쿠키청년기자단]

기사승인 2022-08-20 06:00:19
AP연합뉴스
미국 연방대법원이 여성의 임신중지권을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기하면서 미국 취약 계층 여성의 피해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로 대 웨이드 판결은 미국 헌법 사생활 보호 조항에 따라 태아가 자궁 밖에서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시기(약 임신 28주) 전까지 여성의 임신 중단 결정 권리를 보장한 판결이다. 그러나 지난 6월 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기함에 따라 임신중지 결정권은 연방정부가 아닌 각 주정부와 의회에 넘어갔다.

미국 비영리 연구기관 구트마허 연구소는 판결 폐기 이후 50개 주 중 26개 주가 임신중지를 금지할 것이 확실하다고 예측했다. 현재 9개 주는 임신중지 시술을 전면 중단했으며, 4개 주에서도 6주 이내의 임신중지만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안전한 상담이나 시술을 받기 어려워진 미국 여성들은 원정 임신중지를 계획하거나 약물을 사들이며 대비책을 세우고 있다.

지난달 23일 쿠키뉴스는 구트마허 연구소와 국제 여성 단체 Women Help Women(WHW)과 서면 인터뷰를 가졌다. 단체들은 임신중지가 제한됨에 따라 취약 계층 여성이 받을 피해가 더 커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구조적인 차별은 건강 격차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실제 구트마허 연구소가 2014년 진행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임신중지 환자의 약 75%가 저소득층이다. 이중 53%는 흑인 환자와 히스패닉 환자였다.

WHW는 이번 판결이 인종 불평등을 심화시킬 것이라고 봤다. 저소득층이 많은 흑인, 라틴계, 원주민 여성들은 의료기관에 접근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접근성이 떨어지면 정보를 얻기 어렵다. 수술이 가능한 병원부터 복용 약물, 의료진의 경력, 시술 비용 등을 개인이 찾아야 한다. 의료기관에 방문하더라도 진료를 거부당하거나, 시술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얻지 못하는 일도 빈번하다.

현재 낙태죄는 폐기되었지만, 임신중지에 대한 지원체계가 없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성적 권리와 재생산 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가 진행한 2021 임신중지 경험 실태조사에 따르면 의료진이 충분한 설명과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고 답한 비율이 30.9%였다. 수술 이후 부작용과 후유증 설명을 듣지 못한 경우는 57.4%였다.

반면 임신중지를 법적으로 보장하는 캐나다나 영국은 국가가 시술과 약물 정보를 공개한다. 해당 국가에서는 온라인을 통해 집과 가까운 산부인과 위치와 병원에서 제공하는 의료 서비스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WHW는 또 임신중지가 취약계층 여성의 경제 부담을 높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불법 경로로 운영하는 시술이나 약물은 비싼 값으로 거래되기 때문이다. 진료 기록을 남기지 않기 위해 병원들은 현금을 유도한다. 10대나 경제적 기반이 없는 사람은 무리하게 돈을 빌리기도 한다.

취약 계층 여성은 원정 임신 중지를 택하기도 어렵다. 임신중지를 강하게 금지하는 폴란드에선 도구를 사용해 스스로 임신중지를 하는 위험한 시도도 보고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이런 현실을 고려해 여성의 임신중지를 전면 비범죄화할 것을 강력하게 권고했다.

여성 시민단체들은 국가가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가이드와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셰어 나영 대표는 “전 세계 낙태죄 폐지 운동에서 ‘부자는 낙태하고, 가난한 사람은 죽는다’라는 유명한 구호가 있다. 임신중지에 제약이 가해질 때 취약 계층의 피해가 커지는 현실을 반영하는 말이다. 여성의 임신중지를 법적 처벌과 통제 안에 가두지 말고 안전한 임신중지를 보장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슬기 쿠키청년기자 sookijjo@naver.com
민수미 기자
min@kukinews.com
민수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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