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년 만에 뭉친 송골매, 늙지 않는 청춘 [쿡리뷰]

38년 만에 뭉친 송골매, 늙지 않는 청춘 [쿡리뷰]

기사승인 2022-09-12 06:00:09
밴드 송골매 ‘열망’ 콘서트 현장. 드림메이커 엔터테인먼트

11일 오후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케이스포돔(옛 체조경기장). 가을비가 흩뿌리던 이곳에 ‘청바지 부대’가 떴다. 청춘과 반항의 상징인 청바지로 멋을 낸 이들은 머리카락이 희끗한 중년 관객들. 밴드 송골매 멤버 배철수와 구창모가 여는 ‘열망’ 콘서트에 모인 이들이었다. 몸은 나이를 먹어도 마음은 늙지 않는다고 했던가. 노점에서 응원 도구를 사고, 공연장 앞에서 연신 사진 포즈를 잡는 관객들 얼굴엔 설렘이 그득했다. 세월에도 빛바래지 않는 설렘이.

추석 연휴 셋째 날, 관객들이 고향집 대신 공연장으로 향한 덴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불멸의 히트곡 ‘어쩌다 마주친 그대’ ‘모두 다 사랑하리’ 등으로 1980년대를 주름잡던 배철수와 구창모가 40여년 만에 한 무대에 서는 자리여서다. “어쩌다 마주친 그대 모습에 내 마음을 빼앗겨 버렸네~” 구창모가 이렇게 공연을 열자 객석은 순식간에 들썩였다. 곁에서 기타 줄을 튕기며 관객을 보는 배철수의 얼굴엔 벅찬 기쁨이 차올랐다.

배철수. 드림메이커 엔터테인먼트

잠들었던 송골매를 깨운 이는 배철수였다. 그는 사업가로 변신해 타향살이를 하던 구창모를 10여 년 전부터 설득해 이번 공연을 성사시켰다. 러시아에서 회사를 운영하면서도 무대가 그리워 네 달 동안 노래방에 출근 도장을 찍었다는 구창모는 숙고 끝에 옛 친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공연을 앞두고는 체력을 키우려고 25층 집까지 매일 계단으로 올랐다고 한다. 마침내 관객을 마주한 구창모는 “이렇게 큰 무대에 설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살이 떨릴 정도로 흥분된다”고 했다. 배철수도 감격에 겨운 듯 “꿈인지 생시인지 얼떨떨하다”고 말했다.

강산이 네 번 바뀔 만큼 긴 시간이 흘렀지만 두 록커는 옛 모습 그대로였다. 데뷔곡 ‘구름과 나’를 부르며 2단 고음을 선보인 구창모의 맑은 미성, “학교 가기 싫은 사람, 공부하기 싫은 사람 모여라”(송골매 ‘모여라’)를 외치는 배철수의 장난기 어린 표정 모두 20대 시절과 다르지 않았다. 두 우상을 따라 공연장을 채운 9500여 명의 관객도 시간을 거슬렀다. 손에 든 야광봉을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흥이 차오르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몸을 흔들었다.

구창모. 드림메이커 엔터테인먼트

“열망 가득했던 10대 혹은 20대 때로 돌아가자”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을까. 송골매는 이날 연주한 ‘탈춤’, ‘세상만사’, ‘새가 되어 날으리’ 등 30여곡 대부분을 원곡 그대로 들려줬다. 송골매 3기 멤버였던 이태윤(베이시스타)을 필두로, 장혁(드러머), 전달현·이성렬(기타리스트), 박만희·안기호·최태완(키보디스트) 등 베테랑 연주자들이 빚어낸 록 사운드는 가슴을 때리고 심장을 긁어댔다. 배철수는 이 밴드를 “송골매 4기”라고 부르며 애정을 드러냈다.

변하지 않은 건 음악뿐만이 아니었다. 입담도 여전했다. 구창모가 1984년 송골매를 탈퇴한 사건은 배철수의 단골 농담거리였다. “구창모씨가 송골매를 배신하고 나갔잖아요. 기분이 너무 안 좋아서, 아들 이름을 (배)반, (배)신이라고 지으려 했어요.” 배철수가 이렇게 농담하자 구창모는 진땀을 뺐다. “저쪽(구창모를 제외한 송골매 멤버들)은 다섯 명이고 저는 혼자다. 다섯 명이서 저를 몰아세우는데, 팀에 있을 수가 없겠더라”고 반격해봤지만 결국 “배철수와 싸우기가 버겁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시대를 풍미했던 두 가수는 역사에서 깨어나 다시 한 번 청춘을 만끽했다. 1990년 MBC FM4U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맡은 뒤로 음악을 멈췄던 배철수는 “이런 날이 오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기적 같은 시간이었다.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이라고 말했다. 구창모도 “오늘 이 시간은 우리 가슴 속에 영원히 남을 것”이라고 거들었다. 두 사람은 12일 케이스포돔에서 한 차례 더 공연을 연 뒤, 부산 벡스코(9월24~25일), 대구 엑스코(10월1~2일), 광주여대 유니버시아드 체육관(10월22일), 인천 송도컨벤시아(11월12일)로 열기를 이어간다. 내년 3월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뉴욕, 애틀랜타도 찾는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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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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