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콘텐츠가 이 정도로 전 세계를 뒤흔들 줄 누가 알았을까. 선봉장에 선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은 역사에 남을 성적을 냈다. 작품 공개 후 28일 동안 누적 시청량은 16억5045만 시간에 달한다. 괄목할 만한 성과인 만큼 파급력도 컸다. 공개 1주년을 맞아 ‘오징어 게임’이 불을 지핀 화두를 되짚어봤다.
한국으로 눈 돌린 글로벌 OTT… 한국 제작사는 ‘오겜’ 타고 해외로
‘오징어 게임’이 성공하자, 해외 미디어 기업이 K콘텐츠 성장성에 주목했다. ‘오징어 게임’ 외에도 다수 한국 콘텐츠가 넷플릭스 시청 시간 상위권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며 가능성을 입증했다. K콘텐츠는 ‘가성비’도 뛰어나다.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완다 비전’은 제작비가 회당 약 300억원씩 들어갔다. ‘오징어 게임’ 총 제작비 260억원을 크게 상회한다. 할리우드 콘텐츠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비용을 투자하지만 흥행 잠재력은 어마어마하다. 넷플릭스가 한국에 오리지널 콘텐츠를 공격적으로 론칭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애플tv+도 국내 제작사와 콘텐츠 계약을 체결하고 ‘닥터 브레인’과 ‘파친코’를 선보여 좋은 성과를 거뒀다.
해외 OTT는 한국 시장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파라마운트는 티빙과 MOU를 체결하고, 티빙에 파라마운트+ 특별관을 론칭하며 한국에 진출했다. 티빙은 파라마운트 글로벌이 보유한 미국 OTT 플랫폼 플루토 TV와 피콕을 통해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파라마운트 중앙&북유럽, 아시아 지역을 총괄하는 마크 스펙트 대표는 지난 6일 국내에서 연 미디어데이에서 “한국 론칭은 미래 OTT 사업의 이정표”라며 “파라마운트 자체 스튜디오의 리얼리티 쇼 등 여러 IP를 한국판 리메이크 콘텐츠로 만들 예정”이라고 밝혔다.
역으로 국내 OTT 업체가 할리우드 스튜디오를 인수해 콘텐츠를 만드는 형태도 점차 확대 중이다. SLL(구 JTBC스튜디오)은 미국 제작사 wiip과 콘텐츠 공동 제작과 양사의 IP를 토대로 글로벌 리메이크 콘텐츠 개발 계약을 체결했다. 영국 국영방송 ITV와도 파트너십을 맺었다. 일본과 싱가포르엔 법인 설립을 통해 현지화에 적극 나선다. 스튜디오드래곤은 애플tv+와 함께 첫 할리우드 진출작 ‘빅 도어 프라이즈’를 제작 중이다. 박현 스튜디오드래곤 글로벌사업 담당은 지난 달 열린 2022 국제방송영상마켓 세션에서 “‘호텔 델루나’ 등 한국 IP 기반으로 여러 콘텐츠를 개발할 예정”이라면서 “포맷 세일즈가 아닌 미국 내 스튜디오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날 박준서 SLL 제작총괄은 “과거 글로벌 업체는 IP 주도권을 잡고 영어 콘텐츠를 선보이는 걸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오징어 게임’의 성공으로 비영어 콘텐츠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면서 “기획 단계부터 유연함이 더해졌다”고 귀띔했다.
IP(지식재산권) 패권 다툼의 시작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챙긴다.’ ‘오징어 게임’이 비약적인 성공을 거둔 뒤 업계에서 자조적으로 돈 말이다. 곰은 ‘오징어 게임’, 왕서방은 넷플릭스를 지칭한다. ‘오징어 게임’ IP가 넷플릭스로 넘어가며 한국 제작사의 추가 수익이 거의 없어서다. 넷플릭스는 ‘오징어 게임’에 제작비 260억원을 들여 1조3700억원 상당의 경제 효과를 창출했다. 넷플릭스 덕에 전 세계에 작품을 선보였으나, IP 비즈니스 등 부가가치를 창출할 기회를 놓친 셈이다.
‘오징어 게임’이 남긴 교훈은 콘텐츠 시장에서 IP 확보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과거엔 제작사가 방송국·OTT 등 플랫폼에 콘텐츠를 판매하는 게 급선무였다면, 이젠 IP를 확보하기 위해 열을 올린다. 에이스토리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IP를 확보하기 위해 넷플릭스나 지상파 채널이 아닌 ENA와 방영권 계약을 맺은 결정이 대표적이다. ‘오징어 게임’을 제작한 김지연 싸이런픽쳐스 대표는 16일 열린 에미상 수상 기념 간담회에서 “지금까지 국내 제작사는 자본 확보에 어려움을 겪어 투자에 의존해야 했다”면서 “제작자가 자기자본을 가지면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진다.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제작사에 자금을 보탤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 K콘텐츠의 성장을 이끈다는 계획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발표한 2023 예산안에 따르면, 문체부는 내년 9743억원 규모 예산을 투입해 콘텐츠 산업을 지원한다. 우리나라 기업의 IP 보유를 지원하는 콘텐츠 IP 펀드를 포함해 문화콘텐츠 투자 펀드만 6종을 마련했다. 규모는 4666억원대다. 이외에도 중소제작사가 우수 IP를 활용해 해외에 진출할 수 있도록 돕는 예산을 100억원대로 새롭게 편성했다.
콘텐츠 불법 유통 문제 수면 위로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를 타고 다국적 시청자와 만났다. 넷플릭스가 서비스하는 국가는 190여개국. ‘오징어 게임’ 열풍은 중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문제는 넷플릭스가 아직 중국에 진출하지 않은 상태라는 점이다. 지난해 10월 장하성 주중한국대사는 주중대사관 국정감사에서 “중국 내 우리 문화 콘텐츠가 불법 유통 중”이라면서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가 판권을 갖고 있지만 중국 내 60여개 사이트에서 불법 유통된 것으로 파악했다”고 밝혔다.
중국의 콘텐츠 불법 소비는 고질적인 문제다. tvN ‘도깨비’, SBS ‘푸른 바다의 전설’ 등 인기 드라마뿐 아니라 넷플릭스 작품인 ‘D.P.’, ‘스위트홈’도 피해를 입었다. 우회 프로그램(VPN)을 사용하거나 불법 복제 영상물로 유통되다 보니 콘텐츠 원작자와 정식 유통자에게 돌아가는 수익은 당연히 없다. 정부가 이를 규제할 수단도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칼을 빼든 건 넷플릭스다. 불법 시청 외에도 ‘오징어 게임’ 관련 상품이 정식 라이선스를 거치지 않은 채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는 등 상표권·저작권 침해가 계속되자 넷플릭스가 대처에 나섰다. 무단 유통 사례 적발 시 해당 상품을 유통한 중국 내 온라인 쇼핑 업체에 책임을 묻겠다고 맞선 것이다. 그러자 중국 내 쇼핑몰에선 한동안 ‘오징어 게임’ 관련 캐릭터 상품이 자취를 감췄다. 정부 역시 중국 정부에 저작권 침해 문제를 제기하고, 중국 내 K콘텐츠 권리 피해에 대처하고자 주중대사관, 상하이 총영사관 등을 IP 보호 중점 공관으로 지정하며 대응하고 있다.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