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역 스토커, 법 허점 노렸다

신당역 스토커, 법 허점 노렸다

현행법상 보복범죄 우려는 구속사유 안 돼
반의사불벌죄 조항으로 피해자 보호 미흡 지적도

기사승인 2022-09-22 06:01:01
19일 오전 서울 중구 신당역 역내 여자화장실 앞에 마련된 서울교통공사 '역무원 스토킹 피살 사건' 추모공간을 찾은 한 시민이 피해자에 대한 추모를 하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신당역 사건의 전준환(31)은 보복살인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던 전씨가 피해자를 살해한 이번 사건은 현행법의 미비한 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씨는 지난 14일 서울 신당역에 도착 후 순찰을 위해 여자화장실에 들어간 피해자를 뒤따라가 흉기로 살해했다. 피해자는 지난해 전씨의 범행을 고발하고 법적 조치를 요구했으나 법원에서는 1,2차 재판에서 구속 영장을 기각했다. 전씨는 9년형 선고 받은 후 판결 전날 피해자를 살해했다. 현재 전씨는 지난 21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상 보복살인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송치됐다.

이번 사건 이후 여론도 들끓었다. 국민 절반이 스토킹, 보복범죄 등에 대한 처벌 강화와 피해 예방을 위한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쿠키뉴스 의뢰로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길리서치가 지난 17~19일 전국에 거주하는 만 18세 이상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스토킹 성범죄 사건을 막기 위한 대책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조사한 결과, ‘처벌 강화를 위한 법 개정’에 대한 응답이 33.9%로 나타났다. 이어 ‘피해 예방 위한 정부 정책 강화’에 대한 응답은 18.9%였다. 정치권으로부터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두 응답을 합치면 52.8%다.

이처럼 현행법이 피해자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다는 주장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 인하대 성폭력 사망사건, 스토킹 하던 여성의 가족을 살해한 이석준 사건 등이 발생할때 마다 현행법이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해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은 꾸준히 이어졌다.

고민정 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 1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전씨는 9년 구형 이후에도 확정되기 전 한 달 정도 시간이 있었고 그 사이에 살인을 했다. 관리가 미흡했다”며 “작년 스토킹 처벌법 시행 이후에도 젊은 여성의 죽음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n번방 재발방지법도 국회를 통과했지만 제2의 n번방이 불거졌다. 이는 여전히 법이 미비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임형택 기자

현행 스토킹 처벌법은 스토킹 행위가 있을 경우 긴급 응급조치를 통해 피해자 100m 이내 및 전기 통신을 이용한 접근 금지 조치를 하고 있다. 스토킹 범죄가 재발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1호(서면 경고) △2호(피해자·주거지 등 100m 이내 접근금지) △3호(전기통신 이용 접근금지) △4호(가해자를 유치장 또는 구치소에 최대 한 달간 구금) 등으로 나뉘는 잠정 조치가 이뤄진다.

다만 가해자를 구금할 수 있는 4호의 경우 실제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또 현재 반의사불벌죄 조항으로 피해자가 원치 않으면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기 때문에 피해자를 제대로 보호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나아가 이번 사건의 경우는 스토킹 범죄를 넘어 보복살인에 해당되는데, 현행법상 보복범죄가 구속사유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문제도 제기된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구속사유는 △주거부정 △증거인멸 우려 △도주 우려 등으로 한정돼 있다. 이 때문에 보복범죄가 충분히 예상돼도 이를 사전에 막을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물론 70조 2항에는 “구속사유 심사 시 범죄의 중대성, 재범의 위험성, 피해자 및 중요 참고인 등에 대한 위해 우려 등도 고려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있다. 하지만 이는 단순 고려사항으로 다뤄질 뿐, 앞의 세 가지와 같은 독립적 구속 사유로 고려되지 않고 있다. 또 증거인멸과 도망우려에 대한 판단 기준에도 피해자에 대한 보복 우려는 포함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보복범죄 발생건수는 경찰청 자료에 의하면 2018년 267건, 2019년 292건, 2020년 293건 등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이같이 스토킹 사건이 보복살인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늘고있다.

보복범죄와 관련해 구속사유를 추가한 개정안은 이미 국회에서 발의된 상태다. 양기대 민주당 의원은 지난 7월 피의자의 구속사유로 ‘피고인이 피해자 및 중요 참고인 등을 위해할 우려가 있는 때’를 포함한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양 의원은 21일 본지와 통화에서 “보복 범죄가 매년 300건 가까이 발생하고 있는데, 현행법은 보복범죄 가능성이 충분히 예상되도 구속요건이 아닌 참고사항으로 되어있다”며 “또 스토킹이나 협박 등의 범죄는 상대적으로 죄질이 낮은 것으로 판단돼 영장 기각이 되는 일이 잦다”고 꼬집었다. 

이어 “피해자 감시 위주로 되어 있는 잘못된 현행법을 가해자 감시, 피해자 보호로 바꿔야 한다”며 “구속사유에 ‘보복범죄 가능성’을 명시한다면 법의 허점으로 신당역 사건 같은 강력 스토킹 범죄가 되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여야 모두 스토킹 범죄 처벌 강화법을 발의했다. 국민의힘 송석준 의원은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삭제하고 스토킹 범죄 예방을 위해 긴급을 요하는 경우 스토킹 행위자의 위치를 추적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개정안을 발의했다. 

야권에선 무소속 민형배 의원이 미성년자를 상대로 하거나 흉기 등을 이용한 스토킹 범죄를 가중 처벌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정치권은 이 같은 개정안 등을 토대로 본격적인 입법 논의에 착수할 예정이다. 

이승은 기자 selee2312@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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