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기간 마지막 날, 부치지 못한 편지만 쌓인 이태원

애도기간 마지막 날, 부치지 못한 편지만 쌓인 이태원

기사승인 2022-11-05 19:04:02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마련된 희생자 추모 공간. 희생자들을 위해 쓴 시민들의 메시지가 붙어있다.   사진=박효상 기자 

이태원 참사 발생 일주일이자 국가애도기간 마지막인 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시민들이 모였다. 검은 옷을 입은 이들의 손엔 하얀 국화가 들렸다. 희생자 사진 옆에 헌화한 시민이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기도문을 읊는 그의 입술이 작게 떨렸다. 이태원역 1번 출구부터 참극이 벌어진 현장까지는 약 30m. 줄지어 놓인 수천 송이의 국화는 그대로 꽃길이 됐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에 찬 바람이 불었지만 급하게 자리를 뜨는 사람은 없었다. 시민들은 일제히 고개 숙여 추모 장소 곳곳에 붙은 추모 메시지를 읽었다. 참사 당시 구조 활동에 나선 것으로 보이는 한 시민은 ‘짧지만 옆에서 마지막을 함께 있어 드리면서 미안함이 큽니다. 제가 한 심폐소생술이 아프진 않으셨나요. 옆에서 손이라도 잡아드리고 눈 감는 길, 외로우시지 않게 도와드렸어야 했는데’라며 애통함을 글로 적었다. 이 밖에도 시민들은 ‘청춘은 잘못이 없다. 피지 못하고 사라진 영혼들이 평화로운 곳에서 피어날 것’, ‘청년들이 부디 더 나은 나라에서 다시 태어나길 바란다’ 등의 메시지로 각자의 죄책감과 무력감을 털어놨다.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마련된 희생자 추모 공간. 희생자들을 위해 쓴 시민들의 메시지가 붙어있다.   사진=박효상 기자 

먼저 떠난 친구가 좋아하던 과자를 추모 공간에 가져다 둔 이도 있었다. 미처 뜨지 못한 식사를 대신해 올린 컵라면은 길 위에서 차갑게 식어갔다. 희생자들의 사진과 함께 이들을 기리는 마음으로 샀을 과일, 술, 음료수, 담배 등도 국화 사이사이 놓였다. 애도를 위해 이태원을 찾은 박은숙(55·여)씨는 한 희생자의 사진을 보고 흐느꼈다. 박씨는 “사진을 보니 아들, 딸 같은 사람이 갔다는 걸 체감한다”면서 “있을 수 없는 일이 있어났다”라고 말했다.

추모공간을 따라 걷던 시민들 눈에 참사 현장이 펼쳐졌다. “저렇게 좁은 곳에서”, “얼마나 답답했을까” 등의 한탄이 곳곳에서 터졌다. “어쩌면 좋아”라는 말과 함께 발을 구르던 이도 있었다. “이 어린 사람들이 한꺼번에…. 아이고 참, 눈물이 나서 말을 못 하겠네” 충남 천안에서 온 김경식(61)씨가 참사 현장을 보고 말했다. “서울 한복판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을 수가 있는 거야. 아직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한 애들이잖아” 주름진 손을 떨며 말하던 김씨는 결국 눈물을 흘렸다. 꼬깃꼬깃해진 휴지를 눈가에 갖다 대던 그는 오랫동안 같은 자세로 서 있었다.

‘이태원 참사’ 애도기간 마지막 날인 5일 오후 시민들이 이태원역 앞에서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사진=박효상 기자

주로 20~30대였던 희생자들과 같은 또래인 시민들의 슬픔은 더욱 커 보였다. 애도 기간에 맞춰 충남 서산에서 올라온 김민석(20)씨는 “같은 나이대라 더욱 참혹하다”면서 “국가가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죄송하다”라고 굳은 얼굴로 말했다. 이태원에 사는 박사랑(29·여)씨는 “또래들이 이렇게 되어 너무 슬프다”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이날 추모 현장에는 부모의 손을 잡고 온 어린이가 많았다. 고사리손을 모아 기도하던 한 아이는 가지런히 놓인 국화를 한참 보다 말없이 엄마 다리에 몸을 기댔다. 또 다른 어린이는 엄마의 귓속에 “슬프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털어놓기도 했다. 아들의 권유로 함께 현장을 찾은 부자도 있었다. 이호산(12)군은 “참사를 보고 마음이 많이 아팠다”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아빠와 나와 보고 싶었다”고 했다. 이군의 아버지 이영국(53)씨는 “돌아가신 분들이 좋은 곳에 가길 빌었다”고 말했다.

용산구청은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한 추모공간을 국가애도기간이 끝난 후에도 계속 운영하며, 추모객들에게 필요한 부분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쿠키뉴스는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시민과 함께 슬퍼합니다. 다시는 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언론이 해야 할 일을 하겠습니다.

민수미 기자 mi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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