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1의 넥서스가 무너지는 순간, ‘데프트’ 김혁규(DRX)의 얼굴이 환희로 뒤덮였다. 이윽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그는 동료들과 한참을 얼싸안았다. ‘페이커’ 이상혁(T1)은 팀 동료 ‘케리아’ 류민석이 오열하는 모습을 확인 한 뒤, 고개를 푹 숙였다. 이내 고개를 든 그의 눈가가 붉었다. 한국 나이로 27살, 동갑내기 ‘전설’의 희비가 엇갈린 순간이었다.
DRX는 6일(한국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체이스 센터에서 열린 ‘2022 LoL 월드챔피언십(이하 롤드컵)’ T1과의 결승전에서 3대 2로 승리, 올해 최고의 팀으로 자리매김했다.
5년 만에 한국 팀 간의 내전으로 이뤄진 이번 결승전은, 동갑내기이자 서울시 강서구 화곡로에 위치한 마포고등학교 동창인 김혁규와 이상혁의 조우로 관심을 모았다.
2013년 나란히 프로에 데뷔해 10년 동안 리그에 몸을 담았지만, 이들이 걸어온 길은 달랐다.
이상혁은 올해까지 ‘LoL 챔피언스 코리아(이하 LCK)’ 10회 우승과 더불어 롤드컵에서만 3차례(2013‧2015‧2016)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김혁규 역시 LCK, 중국 프로리그(LPL), ‘미드시즌인비테이셔널(MSI)’ 우승 등 굵직한 기록을 역사에 남겼지만, 유독 롤드컵과는 연이 없었다. 2014년 삼성 갤럭시 블루(현 젠지 e스포츠) 소속으로 4강에 올랐던 김혁규는 이후 5번의 롤드컵에서 8강 문턱을 넘지 못했다.
김혁규는 이에 대해 “페이커 선수와는 같은 고등학교를 나오고 같은 시즌 데뷔를 해서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 했는데 나보다 항상 앞서 나갔다”면서 “이번 결승에서 그 동안 당한 복수를 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혁규의 바람은 현실이 됐다. 이번 대회를 예선부터 시작해 강자들을 차례로 제압하며 기적적인 여정을 펼친 DRX는, 결승전에서도 전문가와 팬들의 예측을 깨고 당당히 승리를 차지했다.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암시하기도 했던 김혁규는,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대회에서 극적으로 자신의 첫 롤드컵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그는 우승 직후 인터뷰에서 마이크를 쥔 채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다 이내 “데뷔 후 하루도 빠짐없이 이 자리에 서는 걸 상상했다. 현실이 돼서 너무 좋다”며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 팬들의 마음을 울렸다.
반면 6년 만에 롤드컵 우승에 도전한 이상혁은 눈물을 꾹꾹 눌러 담았다. 2017년 대회 결승에서 패한 뒤 고개를 묻고 오열했던 그는 이번엔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이상혁은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준우승에 그쳤지만 나와 동료들이 누구보다 더 열심히 했기에 후회는 없다. 더 발전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서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데프트 선수가 첫 롤드컵 우승을 거뒀는데, 충분히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 선수”라며 상대를 존중했다.
그는 “준우승에 그쳤지만 이번 패배를 통해 많이 배우고 돌아간다. 선수들에게도 좋은 자양분이 될 것”이라며 “내년에도 우승을 목표로 뛰겠다”고 각오했다.
문대찬 기자 mdc050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