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도 웃고 아파한다면... [물고기는 알고 있다②]

이들도 웃고 아파한다면... [물고기는 알고 있다②]

해외연구 "물고기도 즐거움과 고통 느끼는 존재"
'산 채로 요리 금지'…영국 등 동물복지법 강화 추세
국내 동물복지 인식..."고통 느끼면 복지 고려해야" 75%
전문가들 "종차별적 표현 자제하고 책임의식 강화해야"
정부, 해외사례 바탕 물고기 복지 개선해 나갈 것

기사승인 2022-12-18 06:00:02

우리는 살아 있는 소, 돼지, 닭을 고기라고 부르지 않는다. 반면 살아 있는 물 속 척추동물들을 식용이 아니더라도 통칭해서 ‘물고기’라고 부른다. 말에는 발화자의 의도가 담겨있다. 우리가 쉽게 사용하는 물고기라는 말에는 이들이 단순히 식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인간중심적 생각이 담겨져 있던 건 아닐까. 쿠키뉴스가 지속 가능한 공동체를 위해 물고기 동물권에 대해 알아봤다 <편집자주>

사진=안세진 기자

#금붕어를 두 그룹으로 나누었다. 한 그룹에게는 진통제를 투여했고, 다른 그룹에게는 투여하지 않았다. 물고기들을 한 데 모아놓고 수조의 물을 38도까지 데웠다. 뜨거운 물에 의해 모든 물고기들은 몸을 동그랗게 말거나 꼬리를 퍼덕였다. 이후 물고기들을 정상 온도의 수조에 옮겼다. 진통제를 맞지 않았던 물고기들은 무기력하게 떠도는 등 공포와 관련된 행동을 보였다. (미국 퍼듀대학 연구팀의 어류 통증 인지 실험)

낚시 바늘이 입에 꿰어져도 비명을 지르지 않고 표정 변화도 없는, 그저 파닥거리는 게 다였던 물고기는 최근까지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고 여겨져 왔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물고기의 행동, 해부구조, 생리 분야에서 이뤄진 해외연구를 보면 학계 대부분은 “물고기도 감응력이 있는 존재로 고통을 느낀다”고 결론을 내렸다. 감응력은 주변 환경을 느끼고 지각할 수 있으며 즐거움, 괴로움, 긍부정적 상태를 경험하는 능력을 뜻한다. 단순 포유류뿐만 아니라 어류, 무척추동물에게까지 감응력이 있다는 과학적 연구결과가 확대되고 있다.

그에 따라 해외에서는 우리가 먹는 해양생물에 대한 동물복지 관련 내용들이 법제화되고 있다. 먹는 것을 금지한다는 것이 아니다. 물고기들도 고통을 느끼는 존재이므로 인도적인 방식으로 도살 등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어길 시에는 처벌 대상이 된다.

영국 정부는 지난해 문어와 게, 바닷가재 등을 동물복지법에 따라 보호받아야 할 대상으로 포함했다. 영국 왕립동물학대방지협회(RSPCA)는 양식 물고기의 사육·운반·도살에도 다른 가축과 마찬가지의 동물복지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스위스는 지난 2018년 전 세계 최초로 갑각류를 산 채로 요리하는 행위를 금지했다. 2008년에는 낚시꾼들을 대상으로 ‘인도적으로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소정의 과정을 이수해야 한다는 내용도 법제화됐다.

독일은 지난 2013년 모든 물고기들을 도살하기 전에 마취하도록 규정했다. 또 낚시대회(물고기를 잡아 무게를 단 후 다시 놓아주는 대회)는 물론 살아있는 피라미를 미끼로 사용하는 관행을 금지했다. 2010년 노르웨이에서는 이산화탄소를 이용해 물고기에게 충격을 주는 것을 금지했고 이에 따라 80% 이상의 물고기 도살장비가 전기식이나 공압식으로 교체됐다.

마포농수산물센터의 한 수조 모습.   사진=안세진 기자

시민사회단체 동물해방물결이 종차별적 언어 표현 개선 캠페인을 진행 중에 있다.   사진=동물해방물결 캠페인 캡쳐

국내는 여전히 풀어나갈 과제가 많이 남았다. 현재 동물보호법(제2조1호)에 따르면 동물은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신경체계가 발달한 척추동물로 포유류, 조류, 파충류, 양서류 뿐 아니라 어류까지 해당한다. 다만 어류의 경우 식용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범위에서 제외하고 있다. 또 두족류, 갑각류 등 무척추동물은 동물보호법을 적용받지 못한다.

동물권 보호단체는 개나 고양이뿐만 아니라 물고기 역시 명백하게 고통을 느끼고 있다며 어류 학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촉구했다. 이들은 물고기 동물권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조금씩 확대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시민사회단체 동물해방물결은 종차별적 언어 표현을 개선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지난해 이들은 물에서 사는 고기를 뜻하는 ‘물고기’ 대신 물에서 사는 존재를 뜻하는 ‘물살이’라는 표현을 제안했다.

윤나리 동물해방물결 활동가는 “나도 모르게 쓴 종차별적인 말과 표현은, 종차별적 행동을 정당화하거나 강화할 수 있다”며 “이제는 종차별적인 언어 대신 종평등한 말과 표현으로 바꿔야 할 때다. 물론 종차별적인 단어와 표현을 수집하는 작업, 적절한 대안(대항)표현을 제안하는 토론의 단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식문화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있었다. 과거 수산업 종사했던 직장인 A씨는(32) “우리나라의 특징 식문화 중 하나는 활어회다. 하지만 활어회가 아니라고 해서 신선도나 맛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일본은 숙성회 문화지만 우리가 느끼기에 신선하다고 느낀다”라며 “식문화를 완전히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신 숙성회에 대한 국민 인식이 조금씩 열린다면 그만큼 동물복지가 한 단계 발전할 수 있을 거라 본다”고 말했다.

사진=안세진 기자

국민들의 동물복지 인식은 꽤나 진전돼 있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가 지난해 발간한 ‘어류 복지에 대한 국민인식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동물이라면 동물의 복지를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의 응답률이 75%에 달했다. 식용 어류도 동물보호법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는 비율도 65.4%로 나타났다. 또 응답자의 92.1%는 ‘어류를 물에서 꺼내 공기 중에 방치해 죽일 때 어류가 고통을 느낀다’고 답했다. 54.8%는 ‘어류 복지를 위해 활어회 구입 포기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이형주 대표는 “결국 동물의 고통 여부가 중요 판단요소가 돼야 한다. 고통을 가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사람의 책임감과 의무를 강화해야 한다”며 “단순히 고통을 주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동물들이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할 수 있도록 하는 단계의 복지로까지 나아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학대 행위를 처벌하는 결과 중심의 처벌 시스템에 의존하면 동물복지를 이뤄낼 수 없다”며 “또 동물에 신체적 상해나 질병이 발생했을 때만 처벌하는 것도 결국 동물을 물건 취급하는 것인 만큼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다행히 현재 정부는 현행 동물보호법을 동물복지법으로 개편해 동물의 법적 위상을 강화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보호자의 돌봄 의무는 더욱 강화되고, 동물 학대 범위도 확대될 예정이다. 동물 관련 단체들은 정부의 정책 전환을 환영하고 있다. 다만 해당 법안은 반려동물로 익숙한 개나 고양이 등을 중심으로 이뤄져 있는 만큼, 어류 복지의 경우 보다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한 상황이다. 

농림축산식품부 동물복지정책과 관계자는 “현재 동물보호법에서 동물복지법으로 개편안을 준비 중에 있다. 다만 이번 법안에 식용을 목적으로 한 어류의 경우에는 논의된 바 없다”면서 “다만 외국 사례와 연구 등을 바탕으로 해서 단계적으로 동물의 고통까지 아우를 수 있는 방향으로 개선할 의지가 있다”고 말했다.

동물학자 조너선 밸컴이 2017년 출간한 그의 저서 ‘물고기는 알고 있다’에서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마무리한다. “우리는 정신적으로 쇠약해진 사람을 보고, 지능이 저하되었다는 이유로 기본적인 도덕적 권리까지 부정하지 않는다. 개와 새 그리고 물고기가 지각력을 가진 게 분명하다면 굳이 지능지수가 얼마인지까지 따져볼 필요는 없는 게 아닐까. 윤리학의 토대는 지각력이기 때문이다. 도덕 공동체의 구성원에게 필요한 자질은 지능이 아니라 지각력이다.”

안세진 기자 asj0525@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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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j0525@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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