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동원 피해자 보상금 대납?...日 지식인도 비판한 참사적 대응

강제동원 피해자 보상금 대납?...日 지식인도 비판한 참사적 대응

[MZ세대를 위한 '현대문으로 읽는 근대뉴스' 해설]
나주평야 일본인 지주의 친일 마름 피해를 우리 농민이 대납해 주는 꼴

기사승인 2023-01-18 10:18:01
1930년 3월 29일

<기사 1>
경기도 안성군 이죽면 죽산리 청년 재산가 양한석(35)씨는 올해 한충재(旱蟲災)로 인해 농촌의 궁핍이 극에 달하자 면내 빈민 800여 호에 대해 소화 5년 제1기 호세(戶稅) 350여 원을 자진하여 대납하기로 하였다 한다. (출처 동아일보)

<기사 2>
몇 년 전부터 심각화 하는 농촌 피폐와 소작농의 현상은 지주층의 횡포 가혹이 대부분의 원인이라는 것을 누구나 개탄하는 바이다.

이같은 현상이 조금씩 개선되기는커녕 해를 거듭할수록 가혹하여지는데 전남 영광군에 300여 정보 가량의 토지를 움켜쥐고 있는 영광읍내 가토농장이 올해도 개정된 소작 계약증서 문면에 공공연히 나타난 몇 조목만 보고도 능히 그 일례를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이하 생략·동아일보)

일본의 조선 농민 수탈을 그려낸 소설 이기영의 '고향' 신문 연재 삽화. 안석영 작. 1934년 4월 21일자 조선일보. 

1930년대 일제의 조선 수탈이 극에 달했다. 이미 호남 및 나주평야 등 비옥한 쌀 생산지를 일본인에게 불하한 조선총독부는 내쫓긴 농민을 소작농으로 전락시켰다. 1930년 3월 29일자 신문은 그러한 현실을 잘 전달하고 있다.

일제는 유랑걸식하는 농민이 급증하는 가운데서도 호세(戶稅)를 가차 없이 부과했다. 가뭄과 장마, 병충해로 농사를 망쳤는데도 호세와 소작료는 그대로 적용했다. 그 참상은 그 시대 쓰인 소설 '고향'(이기영 작) 같은 데서도 잘 엿볼 수 있다.

이 날짜 신문은 여주 죽산에서의 호세 대납 문제, 전남 영광에서 일인 지주의 과도한 소작료 문제 외에도 충남 부여에서 노임 체불 문제, 경기 안성에서의 한해(旱害) 피해에도 불구 기부금 부과 문제, 경북 성주 발 소작농 가정 6명의 기아로 인한 걸식 문제 등을 다루고 있다. 함경도에서는 홍역이 휩쓸고 있다고 전하기도 한다.

최근 일본 지식인들이 일본의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금을 일본 피고 기업 대신 한국재단이 대신 지급하는 방안에 대해 일본 학자와 작가, 법률가 등 94명이 성명을 내고 피해자들이 납득하지 못하는 해결책이라고 비판했다.

일본 소설가인 나카자와 게이 호세이대학 교수, 오카모토 아스시 전 월간 ‘세카이’ 편집장 등이 지난 16일 일본 중의원 제2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피해자 없이는 해결되지 않는다’라는 성명을 발표한 것이다.

그들은 한국의 재단이 배상 판결금을 대납하는 방안을 공개한 데 대해 “피고 기업이 사죄하지 않고, 한 푼의 배상금도 내지 않는 것은 해결책이라고 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일본 지식인들의 이런 성명을 듣는 것이 참으로 창피한 일이다.

마치 영광 가토농장 소속의 친일 마름들의 가뭄 피해 손해액을 영광 농민 전체가 나서 대납케 하는 것 같은 이 형세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답답한 마음이다.

이번 대납 문제는 1960년대 박정희 정권이 한·일 간의 경제 격차가 너무나 커 우리 정부가 호구지책으로 한·일수교와 맞물린 전략으로 일제의 식민지 지배 배상 문제를 다루는 것과 그 궤를 달리하는 참사적 대응이다.

전정희 편집위원 lakajae@kukinews.com
전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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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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