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어 바이 케어 [안태환 리포트]

큐어 바이 케어 [안태환 리포트]

글·안태환 의사, 칼럼리스트

기사승인 2023-01-20 14:14:54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정보기술 강국이었던 한국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이미 IT 시장 주도권은 미국 빅테크 기업들에게 넘어 간지 오래이다. 따지고 보면 좁은 국토에서의 인터넷 인프라가 우월했지 실질적 ‘IT 강국’이라고 하기에는 소프트웨어는 부실했다.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인 4차 산업혁명의 기반이 될 디지털 비즈니스에 대한 법적·제도적 체계를 평가하는 ‘기술 거버넌스’ 항목에서는 OECD 국가 중 하위권에 머물고 있는 것이 그 반증이다.  

쓰나미처럼 엄습한 코로나19의 방역 과정은 모든 것이 시급했다. 의료체계의 락다운 대응에 급급하다 보니 정작 비대면 디지털 헬스케어의 필요성과 이용 경험을 충분히 습득하고 축적하지는 못했다. 여기에 오래된 의료계의 이슈와 수가 체계의 한계는 디지털 헬스케어 생태계 조성을 저해했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디지털 헬스케어의 사회적 확장은 환자들의 요구가 클 때만이 제도적 혁신이 가능하다. 

근간의 대형 병원 서비스는 디지털 방식을 통한 환자 친화적으로 변혁되고 있다. 개원 전 근무했던 병원에서는 처음 방문한 암 환자에게 경험 많은 간호사가 치료 과정을 같이하는 ‘환자 여행’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검사 결과, 위험한 징후가 발견되면 집에 있는 환자에게 응급 문자를 보내준다. 이뿐만이 아니다. 진료 장면을 녹화해 의사의 시선이 컴퓨터 모니터보다는 환자 눈에 맞추고 있는지를 교육한다. 만성질환을 모니터링하는 시범사업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병원에 쌓인 의료 데이터도 윤리 위원회를 거치면 활용할 길이 열렸다. 병원 기능이 큐어(cure·치료)에서 케어(care·돌봄)로 진일보된 결과이다. 바야흐로 환자중심의 서비스 체질 개선 없이는 경쟁에서 생존하기 어렵다는 시대 흐름에 부응하는 것이다. 환자들이 내원했을 때뿐만 아니라 집에 머무르는 시간에도 의료진의 관심을 요구하는 시대가 도래 한 것이다. 

환자의 상태를 늘 살필 수 있다면 예후도 좋을 것이다. 디지털 헬스케어가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면 의료계는 이를 선도적으로 도입하고 임상 현장에서 그 가치가 입증되면 정부는 적절한 수가를 받을 수 있도록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 의사는 환자가 평소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한다. 10분여 한정된 진료시간 안에 환자의 일상까지 다 파악하기엔 한계가 명백하다. 디지털 기기들을 통해 집약된, 환자 관련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활용해 환자에게 충분한 상담과 진료를 진행할 수 있는 의료 환경은 다가올 미래사회의 모습이다.

그러나 간과해서 안 될 일이 있다. 한국 사회는 늘 빠르고, 편리한, 새로운 서비스에만 초점이 맞춰져 안전을 담보해야 할 정부의 정책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미래 의료기술로 발생할 문제들은 모두 예측하고 대응하기 어렵다. 디지털 헬스케어는 인터넷이 기반이다. 대면이 아닌 통신망으로의 초연결 사회에서는 유사시를 대비한 백업망, 우회 라인 확보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IT 강국에 어울리는 기술 활용과 안전망 구축, 높은 수준의 사고 대응 체계는 디지털 의료강국의 기본 조건이다.

디지털 헬스케어의 중심에 있는 ‘원격진료’라는 단어는 매우 건조하다. 지금은 사라진 풍경이지만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위해 왕진까지 다녔던 시절이 있었다. 자칫 의사의 책임을 도외시한 어감이다. ‘비대면 진료’라는 단어가 더 적합하다. 의료 선진국에선 대면 진료를 대신할 수 있는 접근성보다는 비대면 진료의 안전성을 높이는 데에 주목하고 있다.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배달 앱 같은 B2C 방식으로만 단순 접근하면서 환자에게 의사를 소개해 주는 중개 플랫폼에 머물고 있고, 비대면 진료의 안전성은 의료진들이 알아서 해결하라는 방식이다. 당연히 의료인은 반대를 할 수밖에 없다. 이러다 보니 법적 근거가 취약한 ‘비대면 진료’에 대해 정부규제도 문제지만 의료계 내의 합의도 난망하다.

의료계는 지금 혁신의 변곡점에 서 있다. 그런 혁신의 한 가운데 디지털 헬스케어가 있다. 확신하건대 인류의 기술은 항상 같은 의미를 갖거나 같은 효용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기술 그 자체가 사회적 진보를 담보하지는 않는다는 의미이다. 기술은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와 효용을 가져다주기도 하고, 기술이 낳은 새로운 우려가 단순한 기우로 끝나지 않은 경우도 허다하다. '디지털 헬스케어 선한 기능'의 전제조건은 결국 대면진료에 준하는 의료 서비스를 환자에게 안정적으로 제공할 수 있느냐이다. 그래야 디지털 헬스케어를 통한 의료강국이다. 세계적 추세에서 멀어지기 전에 사회적 논의가 시급하다. 큐어(cure·치료)에서 케어(care·돌봄)로의 전환은 환자들의 소망이다.   
이영수 기자
juny@kukinews.com
이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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