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올리고, 용량·혜택 줄이고"…연초 고삐 풀린 유통업계

"가격 올리고, 용량·혜택 줄이고"…연초 고삐 풀린 유통업계

기사승인 2023-01-26 09:00:09
사진=안세진 기자

연초와 설 연휴를 기점으로 유통업계가 또 한 번 가격인상, 양·혜택 축소에 나섰다. 업계는 각종 원자재 등 물가 폭등을 이유로 불가피한 결정이었다는 입장이지만, 소비자들은 연 몇 차례씩 계속되는 이같은 사태에 대해 비판이 거세다. 소비자들은 “가격인상만이 해법은 아니”라며 대체원료를 사용하거나 광고·마케팅비를 줄임으로써 물가 폭등에 충분히 대응해나갈 수도 있다고 입을 모은다.

26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6~7월 6%대까지 치솟았던 전체 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11월 5.0%를 기록하며 4개월 연속 5%대에 머무르고 있다. 하지만 각종 가공식품 물가는 9.4%까지 치솟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2008년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연초부터 흰 우유는 L당 49원이 오르고, 코카콜라는 5.2%, 아이스크림은 10~12%, 냉동만두는 10.4% 상승했다.

가격을 인상하는 대신 양을 줄이는 업체들도 있다. 오리온, 농심, 서울우유 등은 최근 가격 인상 대신 일부 제품의 용량을 축소했다. 오리온은 지난해 10월 초콜릿 바 '핫브레이크' 제품의 중량을 기존 50g에서 45g으로 5g 줄였다. 대신 가격은 1000원을 유지했다. 농심도 지난해 9월 '양파링'의 중량을 기존 84g에서 80g으로 바꿨다. '오징어집'의 용량도 기존 83g에서 78g으로 줄었다. 가격은 각각 이전 그대로였다.

같은 달 서울우유협동조합도 요구르트 '비요뜨'의 중량을 기존 143g에서 138g으로 5g 축소했다. 롯데제과는 지난 2021년 9월 카스타드 대용량 제품 개수를 12개에서 10개로 줄이고, 꼬깔콘 과자 중량을 72g에서 67g으로 변경했다. 

호텔업계는 서비스 혜택을 축소하는 방식으로 허리끈을 졸라맸다. 롯데호텔은 올해 들어 ‘리워즈 멤버십’ 등급 기준을 개편해 숙박일수만 등급 산정에 적용하기로 했다. 기존에는 투숙횟수, 숙박일수, 결제금 등 3가지 가운데 한 가지 이상 충족하면 멤버십 등급을 부여해왔다. 

워커힐 호텔은 멤버십 서비스 ‘프레스티지 클럽’ 연회비를 올렸다. 제이더블유(JW)메리어트 동대문은 지난 3일부로 실내수영장을 유료로 전환했다. 기존에는 투숙객에겐 수영장 이용이 무료였지만, 이제는 성인은 5만원, 어린이는 2만5000원을 내야 한다.

업계는 각종 원자재 등 물가 폭등을 그 이유로 든다.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 장기화로 곡물과 유가 등의 가격 변동성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 국제적인 인플레이션과 1달러당 1300원에 육박하는 고환율도 업계의 발목을 잡고 있다. 국내 업계는 원재료의 60% 이상을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다. 밀부터 사료까지 의존도가 높다. 최근에는 에너지와 인건비 등 비용부담도 커졌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가공식품은 식품 자체의 제조원가에 포장재, 물류·인건비 등으로 구성돼 있다”면서 “각 구성품 모두에서 가격 인상이 이뤄지다보니 전체적인 가격 인상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전세계적인 물가가 안정세로 들어서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추가 인상은 계속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사진=안세진 기자

그러나 소비자들 사이에선 비판이 거세다. 그간 식품기업들은 주로 연초에 제품 가격 인상을 단행해왔지만, 지난해에는 연중에도 고환율로 인한 수입 원부자재 가격 인상 등을 이유로 수시로 제품 가격을 올려서다. 여기에  해 중량 감소를 고지하지 않고 슬그머니 올리는 곳도 있어 그 비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서울 마포구 한 대형마트에서 만난 가정주부 A씨(42)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물가·인건비 인상 등에 대해서는 국민 모두가 알고 있다. 일반 소비자들을 비롯해 소상공인, 자영업자도 이로 인해 똑같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지 않은가”라며 “대기업들은 무조건적인 가격인상으로만 이를 극복하려 하지 말고 다른 차원의 방법도 강구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비판했다. 그는 “가격인상은 소비자 부담 전가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실제 이번 가격 인상 행렬에 동참하지 않은 기업도 소수 있다. 2019년 7월 이후 값을 동결한 크라운제과는 대체 원료 사용 등으로 원가 부담을 감내하며 지난해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85% 증가했다. 기업이 자구책을 마련해 가격 인상 요인을 최소화한 것이다. 

면도기 가격 파괴로 MZ세대 사이 유명한 와이즐리는 지난해 3월 43%나 가격을 인하한 데 이어 최근 전 제품 가격을 추가로 17% 내렸다. 와이즐리는 광고마케팅 비용과 유통 수수료를 없앴다. 와이즐리는 유통 채널을 단순화하고 SNS를 통한 바이럴 마케팅을 통해 제품을 알리는 데 주력하며 원가율을 낮췄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소비자가 기업에 기대하는 건 혁신을 통해서 합리적인 가격에 품질은 좋은 제품이다”라며 “원재료 가격이 올랐다고 해서 너도나도 이를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식으로 가격을 올리는 경영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는 소비자의 지갑을 닫게 하고 결국 공급자에게도 좋지 못한 상황이 될 수 있다”면서 “올해엔 최대한 가격인상을 억제하는 경영 태도를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안세진 기자 asj0525@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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