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고양 캐롯이 1년도 지나지 않아 존폐의 기로에 섰다. 대한민국에서 프로스포츠가 본격적으로 출범한 1980년대도 없던 일이다.
지난 7일 KBS의 단독 보도에 따르면 고양 캐롯을 운영 중인 데이원스포츠는 국내기업 한 곳과 농구단 인수 협상을 벌이고 있다. 데이원스포츠는 관계자는 “모기업(대우조선해양건설)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농구단 지원에 어려움이 발생해 지난해 말부터 인수협상에 나서게 됐다”고 전했다.
대우조선해양건설을 모기업으로 하는 법인 데이원스포츠는 지난해 여름 고양 오리온을 인수해 창단했다. ‘농구 대통령’ 허재를 대표이사로 내세웠고, 자생력을 키우기 위해 프로야구 키움 히어로즈처럼 캐롯손해보험과 4년간 네이밍 스폰서도 유치했다.
데이원스포츠는 창단 때부터 ‘새로움’을 강조했다. 데이원스포츠의 모기업인 대우조선해양건설의 김용빈 회장은 지난해 8월 창단식에서 “고양 캐롯 점퍼스는 스포츠계의 변혁의 중심으로 한국 프로농구의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자신했고, 허재 대표이사도 “새로운 방식으로 새바람을 일으키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들의 공약은 결과적으로 허무맹랑했다. 1차적으로 고양 캐롯이 그간 보인 행보는 타 구단과 비교해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현장에서 진행하는 이벤트, 구단 SNS 활용 등에서 차이점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구단의 수익 모델도 문어발식 스폰서십 체결 등 돈만 쫓는 모습을 보이면서 많은 이들의 우려를 낳았다.
오히려 자금 문제로 계속해 잡음만 일으켰다. 개막 전에는 한국프로농구연맹(KBL) 가입급 15억원 중 일부인 5억원을 개막 3일을 앞두고서야 납부했고, 시즌 중에는 선수단과 사무국에 2차례나 임금 체불 사태를 빚었다. 선수들 이외에도 이벤트 대행사, 청소 업체 등에도 제 때 금액을 지불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오리온 측에 구단 인수 대금도 아직 완납하지 못했다.
데이원스포츠의 모기업인 대우조선해양건설은 임직원 임금 체불, 하도급금 지연 등 자금난에 빠져 지난 6일 법원이 기업 회생절차 개시결정을 내릴 정도로 경영이 악화했다. 김 회장도 지난달 초 경영환경 악화를 이유로 대한컬링연맹 회장직과 대한체육회 이사직에서도 물러났다. 사실상 고양 캐롯은 방치된 상황이다.
결국 ‘한 시즌을 넘기기 힘들 것’이라던 농구계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데이원스포츠가 자금 문제를 해결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선수단은 불안에 떨고 있다. 1년 만에 또 다시 새로운 환경에서 뛰어야 할 처지다. “좋아질 것”이라며 수뇌부에서 선수단을 독려하고 있고, 김승기 캐롯 감독도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하지만 선수들의 표정은 이전처럼 밝지 못하다. 이는 경기력에서도 드러난다. 지난달 임금 체불이 공론화된 이후 7승 6패로 분전하고 있지만, 순위도 5위까지 추락했다.
구단의 전신인 오리온 시절부터 원클럽맨부터 활약한 김강선은 지난해 7월 기자간담회에서 “팀이 대구에 있다가 올라와서 바뀌었는데 이번이 마지막이었으면 한다”고 희망했지만, 그의 소망은 끝내 이뤄지지 않는 모양새다.
자칫 선수단이 흘린 땀방울도 허사로 돌아가게 생겼다.
데이원스포츠는 아직 KBL에 가입비 10억원을 미납했다. 캐롯 구단은 창단 첫 시즌부터 플레이오프 진출을 눈앞에 뒀지만, 잔여 가입비 납부가 지연될 경우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고도 경기를 치르지 못할 수 있다. KBL 측은 “2차 가입비 납부가 지연될 경우 캐롯의 플레이오프 배제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고 언급했다. 가입비 마감일은 다음달 31일까지다.
KBL도 이번 사태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데이원스포츠의 가입 승인을 두고 의결권을 가진 9개 구단은 자금 및 운영 계획 등의 자료가 부실해 가입 승인을 보류한 바 있다. 하지만 10개 구단을 유지해 파행을 막기 위한 KBL의 강력한 의지가 더해져 데이원스포츠의 신규 회원 가입이 승인됐다.
김찬홍 기자 kch0949@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