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이 사람 불러 조사하는 것처럼 쉬운 일이 어디 있어요

공무원이 사람 불러 조사하는 것처럼 쉬운 일이 어디 있어요

[지리산웰빙팜] 농사꾼 임송의 귀농일기(21)
조사 업무, 사적 욕심 개입될 때 판단 흐려지더라

기사승인 2023-02-16 17:34:33
“공무원이 사람 불러서 조사하는 것보다 쉬운 일이 어디 있어요. 그런 일은 상식만 있으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쉬운 일이에요.”

내가 공정위에 근무할 때 기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하던 일을 떠벌여 얘기하자 아내가 한 말이다. 별것도 아닌 일 가지고 잘난 체하는 것을 더 이상 못 들어주겠다는 표정이다.

아내가 제일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이 수사물(미국 CSI나 NCIS 등과 같은)이다. 요즘은 ‘먹방’에 꽂혀 유튜브로 주로 ‘먹방’을 보지만 예전에 TV를 볼 때는 주로 수사물만 봤다. 아내는 퇴직하기 전에 오랫동안 중고등학교 학생부장이었다. 주로 남자 교사들이 맡아 하는 일을 자기가 잘할 수 있다며 자원했다. 잘 알려진 것처럼 학생부장은 주로 교내 폭력행위나 교칙 위반 등을 다룬다.
지리산 자락에 봄이 올 기미를 보인다. 덤불 속에서 녹색 기운이 올라온다. 사진=임송

아내가 학생부장을 할 당시 말썽꾸러기들을 자기 방으로 불러 경위 등을 파악하는 것을 보면서 감탄한 적이 많았다. 부드러운 카리스마라고나 할까. 강제력이나 큰 소리 내지 않고도 조곤조곤 사건의 실체를 파악해 가는 솜씨가 남달랐다. 그런 사람이 조사업무에 대해 언급한 것이라 무작정 뭘 모르는 사람이 한 말로 치부할 수는 없었다.

예전에 공정위나 인권위에서 조사하던 일들을 떠올려 봤다. 조사자와 피조사자의 관계는 애초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관련법에 따라 조사에 따른 다양한 권한을 보유한 자와 법 위반 사실이 있다는 혐의로 조사를 받는 자 간에 어떻게 대등할 수 있겠는가. 특히나 공정거래법은 공정위가 경제 상황을 고려하여 독자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부분도 있어서 피조사자가 변호사의 조력을 받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지난 겨울. 고구마 농산물 가공공장 도로가 눈에 덮였다. 공무원을 하다 귀농해 작은 사업을 하니 깨달은 것이 많다. 사진=임송

그러니 그런 우월한 지위를 가지고도 조사를 제대로 못 한다면, 조사하는 사람이 무능한 것이지 조사 잘한다고 뻐길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조사하는 사람들은(나도 그랬듯이) 대부분 자기가 똑똑해서 조사를 잘하는 것으로 착각한다.

이런 상황은 수사하는 검찰이나 경찰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수사기관으로서는 압수수색이나 인신구속까지 할 수 있는 보다 막강한 권한을 보유하고 있으니 공정위나 인권위 조사보다 훨씬 더 쉬울 수도 있을 테고.

나는 공정위 근무 당시 표시·광고 심사업무를 오랫동안 했다. 한 가지 일을 오랫동안 하다 보면 제품의 표시나 광고만 봐도 대략 사실관계를 유추할 수 있다. 때에 따라서는 그에 따른 보고서 문구까지도 머릿속에 저절로 떠오르고.

그런데 간혹 판단이 잘 안될 때가 있다. 물론 사안이 복잡하여 그런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사적인 욕심이 개입될 때 그렇다. 예를 들면 조사대상자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다거나 혹은 조직 내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싶다는 등의 욕심이 개입되면 판단이 흐려진다.

그럴 때는 광고물을 들고 조용한 곳으로 가서 눈을 감고 먼저 내 안에 어떤 욕심이 있는지 살펴봤다. 그러다 마음속에 있는 욕심을 덜어내면 그때까지 모호하던 것들이 명료해지는 경험을 하곤 했다.

사업을 시작한 이래 즐거운 시간보다는 힘들 때가 더 많다.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는 “돈 버는 일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 보이겠다”라는 망발을 서슴지 않았을 정도로 세상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평생 공무원만 하다가 나왔으니 세상에 대해 뭘 알았겠는가. 특정 분야를 수사한 적이 있다고 그 분야 전문가라고 말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이었다.

이후 근 10년 동안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쏟아 부으며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다 보니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알겠다. 예전에 공적으로 부여된 권한이 마치 내 것인 양 우쭐대던 모습이 얼마나 우스운 일이었는지도 알겠고.

무엇보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하루하루 살아남기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치고 있는지도 알게 됐다. 사업을 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일이다. 그것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사업을 시작한 보람을 느낀다.

만약 내가 사업을 하지 않았다면 또박또박 나오는 연금 받아 가며 적절하게 온습도가 유지되는 온실 속 세상이 진짜 세상이라고 착각하며 살고 있지 않았을까. 지금 사는 세상이 그런 온실 속 세상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비바람이 몰아치면 그대로 노출되고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면 온몸이 따뜻해지는 진짜 세상, 거기 사는 것 같아 다행스럽다. 그나저나 나에게는 언제나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려나.

 ◇ 임송
중앙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미국 유펜(Upenn)대학 대학원에서 사회정책학을 공부했다. 1989~2008년 경제기획원, 공정거래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등에서 공직 생활을 했다. 부이사관으로 퇴직 후 일용직 목수를 거쳐 2010년 지리산(전북 남원시 아영면 갈계리)으로 귀농해 농사를 짓다가 최근 동네에 농산물 가공회사 '웰빙팜'을 설립했다.

jirisanproduce@daum.net 


 

 
전정희 기자
lakajae@kukinews.com
전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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