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일 “음악만을 위한 음악 하고 싶었죠” [들어봤더니]

정재일 “음악만을 위한 음악 하고 싶었죠” [들어봤더니]

기사승인 2023-02-24 17:40:47
음악가 정재일. 유니버설뮤직 코리아

음악가 정재일은 스스로를 듣는 사람이라 소개했다. 무대 너머에서 그는 수많은 세계를 듣고, 만든다. 시행착오를 거쳐 탄생하는 음악엔 그의 고민과 마음이 고스란히 담겼다. 여러 이야기를 듣겠다는 마음으로 지은 새 앨범명은 ‘리슨(LISTEN)’. 유니버설 산하 레이블 데카(DECCA)에서 처음으로 발매하는 음반이다. “지구가 하는 말을 듣고 싶었어요. 내면과 사람의 말도 듣고자 했죠.” 24일 서울 혜화동 JCC아트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난 정재일은 “항상 뒤편에 있던 내가 무대 위로 올라올 줄은 몰랐다”며 남다른 감회를 전했다.

“음악만을 위한 음악을 하고 싶었죠”

과거 싱어송라이터를 꿈꾸던 정재일은 2003년 ‘눈물 꽃’을 발표하며 자신만의 음악을 시작했다. 이후 그는 무대 아래로 내려가 음악을 만들고 가꿔왔다. 가수 박효신, 아이유 등과 협업하고 영화 ‘기생충’(감독 봉준호)과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음악감독을 맡으며 점차 유명세를 탔다. 지난해 데카와 만나며 그는 음악인으로서 또 다른 도전을 결심했다. 데카가 팝 음악을 만드는 곳이 아닌 세계적인 클래식 레이블이어서 좋았단다. “당신만의 것을 해보지 않겠냐는 말에 어린 날의 내가 떠올랐다”고 돌아보던 그는 “가수는 못 해도 작곡가는 해보고 싶었다”며 미소 지었다. 정재일은 어느 순간 자연과 우뚝 솟은 건물이 공존하는 광경이 낯설었다. 그로부터 시작해 강이 바다로 뻗어가는 흐름을 떠올리던 그는 침잠하는 음악으로 방향을 잡았다. 즉흥연주 중 포착한 구절을 중심으로 트랙을 잡아갔다. 정재일은 “수많은 감상이 쌓이며 거대한 산을 이루는 느낌이었다”면서 “목소리들을 듣는다는 마음으로 만든 음반”이라고 소개했다.

음악가 정재일. 유니버설뮤직 코리아

“첫 음반, 당연히 피아노여야 했다”

정재일은 기념비적인 새 음반을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로 오롯이 채웠다. “가장 내밀하고 편안한 악기로 시작하고 싶었어요.” 피아노 이야기를 꺼내자 긴장이 엿보이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는 “피아노는 내게 모국어나 다름없다. 말보다 피아노로 연주하는 게 더 편하다”면서 “깊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 피아노를 택했다”고 설명했다. 최근 외부 협력을 거치며 음악을 만든 만큼, 솔로 앨범 작업은 새로운 인상으로 다가왔다. “누군가의 확인을 거칠 필요가 없는 건 좋았지만, 맨땅에서 시작해야 하는 건 부담이었다”고 말을 잇던 정재일은 “첫 구상부터 음악만을 떠올렸다. 쉬지 못해도 즐거웠다”며 눈을 반짝였다. 그는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수많은 명반을 탄생시킨 노르웨이 레인보우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진행했다. 하루에 7시간씩 피아노만 연주하며 음악에 더 깊이 빠져들었다. 정재일은 “마음의 소리와 가장 닮은 형태로 앨범을 만들었다”면서 “앞으로는 실험적인 음악에도 도전하고 싶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음악가 정재일. 유니버설뮤직 코리아

“‘기생충’·‘오징어 게임’ 성공? 그래도 삶엔 변화 없어요”

정재일은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의 성공으로 세계 시장에서도 명성을 쌓았다. 두 작품은 정재일의 대표 이력으로 통한다. “정재일은 몰라도 ‘오징어 게임’ 음악은 전 세계인이 알잖아요. 그 자체로도 제게는 명예죠.” 이를 발판 삼아 평소 우상이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브로커’에도 참여했다. 세계적인 음악가 압 판 츠베덴이 정재일과 작업하고 싶다며 공개 러브콜을 보낼 정도다. 음악가로서 나날이 성장하지만, 달라진 건 없다. 그는 여전히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영감을 얻으며 음악을 만들고 연주한다. 정재일은 “지금껏 그랬듯 앞으로도 무대 뒤에서 존재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그는 이번 신보를 시작으로 데카에서 음반 발매를 이어갈 계획이다. 정재일은 “과거에는 아트워크부터 트랙 순서, 곡 사이 침묵까지도 음반의 일부였다”면서 “앨범 전체가 한 작품을 이루는 경험을 재현하고 싶다. 다음 발걸음은 그쪽으로 향하지 않을까 싶다”며 웃어 보였다.

음악가 정재일. 유니버설뮤직 코리아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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