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서 병원 못 간다” 왜곡된 의료체계, 대안은 [쿠키인터뷰]

“아파서 병원 못 간다” 왜곡된 의료체계, 대안은 [쿠키인터뷰]

박건우 대한재택의료학회 이사장 인터뷰

“거동 어렵고 치료 절실한 환자 소외”
‘환자 중심’ 의료 서비스로 재편해야

기사승인 2023-03-05 06:00:08
박건우 대한재택의료학회 이사장.   쿠키뉴스 자료사진

“그동안 너무 아파서 병원에 못 왔어요” 겨우내 어렵사리 기운을 차려 진료실까지 걸어왔다는 환자가 의사에게 건넨 말이다. 

박건우 대한재택의료학회 이사장(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신경과 교수)은 지난 2일 고대 안암병원에서 쿠키뉴스와 만나 “병원은 걸어 다닐 수 있는 환자들만 올 수 있는 이상한 구조”라며 “장애인, 노인 등 거동이 불편한 이들은 정작 병원에 오기 어렵다. 고령화가 심화되면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재택의료학회가 출발한 이유다. 병원 중심이 아닌 환자 중심에서 의료 서비스를 재편해야 한다는 뜻에 공감한 이들이 모여 학회를 설립했다. 학회는 지난달 17일 발기인 대회를 열었고, 오는 4월2일 창립을 앞두고 있다. 박 이사장에게 한국 사회에서 ‘재택의료’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들어봤다. 

Q. 재택의료란 무엇인가.
A. 쉽게 말해 환자를 찾아가는 의료 서비스다. 지금까지 모든 의료는 병원 중심으로 돌아갔다. 아픈 환자들에게 병원에 와서 치료를 받으라는 식이다. 재택의료는 반대로 아픈 환자가 있는 곳으로 의사들이 찾아가는 서비스다. 왕진, 방문간호, 방문 물리치료, 원격진료 등도 모두 재택의료에 포함된다. 

Q. 재택의료, 왜 필요한가.
A. 신체가 마비된 환자가 병원에 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구급차를 부르고 보호자와 동행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만약 그 환자가 엘리베이터가 없는 다세대 주택 4층에 살고 있다면? 병원에 가기 어렵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는 병원에 가는 데 많은 돈과 노력을 투입해야 한다. 보호자 두 사람은 동행해야 이동이 가능하다. 또 병원에 올 때 택시를 타고 오거나, 구급차를 부른다. 서울로 상경할 땐 기차표 값도 든다. 이동에만 간접적으로 30~40만 원이 넘게 드는 셈이다. 이 경우 환자도 병원에 오기까지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뒤집어 생각해보자. 의사가 환자를 찾아간다면? 거동이 어려운 환자의 집에 의사가 방문하는 것이 더욱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걸어 다닐 수 있을 때까지만 의료 혜택이 있고, 움직이기 어려워질 때 의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다면 건강보험료를 내는 의미가 없지 않겠나.

또 환자의 거주 환경을 보면 더 정확한 처방이 가능하다. 현재 의사는 진료실 안에서 환자의 삶을 상상하며 처방을 내려야 한다. 특히 한국은 진료 시간이 짧기 때문에 환자의 생활 양식을 파악하기 어렵다. 환자나 보호자가 말하는 정보에 많이 의존하는데, 이것이 과연 정확할지 의문이다. 

실제로 환자의 집에 찾아가면 확실히 다르다. 환자가 먹는 약을 살펴보면, 충돌하는 성분도 많다. 냉장고를 보면 환자가 어떤 음식을 먹고 사는지도 알 수 있어 처방을 내리기 수월하다.

지금까지의 의료는 왜곡된 측면이 많다. 병원이 기형적으로 커지고 화려해졌고, 환자들이 서울에 있는 병원을 가기 위해 상경하는 현상도 그렇다. 이 왜곡이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생각해보면 결국 병원 중심 의료에서 왜곡이 생겼다고 본다.

환자를 중심에 두고 의료 서비스를 본다면, 병원에 못 오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병원이 건강하거나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의 수요에 맞춰 발달했지만, 움직일 수 없고 정말 치료가 절실한 이들은 점점 소외됐다. 그 빈틈을 메우기 위해선 찾아가는 의료가 필요하다.

Q. 재택의료, 생소한 개념이다. 왕진 의사의 수가 적은 이유는 무엇인가.
A. 의사들 중에서도 재택의료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다. 하고 싶은데 제도가 없어서 못한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관련 교육도 없어 봉사활동에서 그치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선 재택의료 관련 시스템이 전무한 수준인 탓이다. 일본은 1994년 왕진 진료수가를 만들었다. 그런데 한국은 2018년이 돼서야 동네의원 대상 왕진 시범사업을 도입했고, 2020년 코로나19 유행 이후 한시적으로 비대면 진료를 허용했다. 일본은 고령화 대응의 일환으로 재택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며, 일찍이 발전했다. 한국은 2025년엔 초고령화 사회에 접어드는데, 늘어나는 의료 서비스의 수요를 감당할 방법이 없다. 

Q. 한국의 재택의료는 어디까지 왔다고 보면 되나.
A. 걸음마 수준도 아니다.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다. 

의료법 제33조 1항엔 ‘의료기관 내에서 의료업을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예외조항을 달아 의사가 환자를 찾아갈 수 있게 해뒀다. 재택의료는 법으로도 인정하고 있는 제도지만, 이에 맞는 수가체계가 없다. 

시범사업으로 재가 장기요양보험 수급자를 대상으로 재택의료 서비스를 제공한 바 있다. 그러나 기존 건강보험 시범사업 수가에 재택의료 기본료(장기요양보험) 등을 더해 의료기관에 지급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다 보니, 보상에 한계가 있었다. 재택의료 활성화를 위해선 파이가 적은 장기요양보험이 아닌 국민건강보험료에서 수가체계를 설계해야 한다. 

Q. 학회를 만들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A. ‘환자를 찾아가는 진료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뜻을 모아 만들었다. 신경과, 내과, 예방의학과, 가정의학과 등 다양한 전문 분야를 가진 의료진 등이 모였다. 고령화가 가속화되며 앞으로 병원을 찾아올 수 있는 분들이 점점 줄어들 것이라는 데 공감한 이들이다.

학회에서 해야 할 일이 많다. 재택의료 관련한 데이터를 모으고, 재택의료의 효과를 검증하는 것이 우선 과제다. 수가체계를 만들기 위해선 재택의료 행위에 대한 표준화 작업도 필요하다. 다양한 전문 분야를 가진 사람들이 모인 만큼 총의를 모으기 쉽지 않겠지만, 재택의료가 한국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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