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반도체법 대응, 아직 늦지 않았다 [쿠키칼럼]

美반도체법 대응, 아직 늦지 않았다 [쿠키칼럼]

송원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 사무총장)

상무부 세부 규정 독소조항, 미국에서도 논란
인플레법과 달리 행정부 결정만으로 변경 가능
윤 대통령 방미 기회로 전략적 설득 나서라

기사승인 2023-03-15 14:17:41
이 칩이 아니다.


요즘 워싱턴DC에서 가장 뜨거운 한국 관련 이슈는 단연코 반도체 지원법(CHIPS Act)이다. 지난달 미국 상무부가 발표한 세부 규정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반도체 지원법은 미국이 반도체 산업의 주도권을 확보하면서 중국을 견제하고 반도체 공급망을 확대할 목적으로 지난해 통과시켰다. 500억 달러(약 60조원)를 반도체 산업에 직접 지원하고, 연방 정부가 반도체 자금 대출을 보장하는 내용이 골자다. 500억 달러 중 390억 달러는 새로운 반도체 공장을 짓거나 기존 시설을 확장하는 사업자에게 주는 보조금으로 책정했다. 나머지 110억 달러는 반도체 신기술 연구 개발 보조금이다. 올해 말 지급한다. 한 산업 분야를 위한 보조금으로는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다. 미국이 반도체 패권을 되찾겠다는 선언이다. 조 바이든 행정부도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함께 정권 출범 후 최고의 입법 성과로 내세우고 있다.

보조금 지급에는 조건이 있다. 한국과 대만 기업은 어떤 조건을 내세울지 촉각을 세워 왔다. 상무부가 정하는 세부 규정에 따라 수익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75페이지에 이르는 세부 규정에는 초과 수익을 미국 정부와 나눠야하고, 10년 간 미국이 안보를 우려하는 국가(중국)에 반도체 관련 투자를 해선 안되며, 자사주 매입 금지나 현금 흐름 등 수익성 지표를 제출해야 한다는 조항까지 있다. 한마디로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으려면 돈을 너무 많이 벌어도 안되고, 중국은 멀리 해야 하고, 거래 내역 같은 핵심 자료까지 미국 정부에 제공하라는 것이다.

대만계 TSMC 공장 입구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emiconductor Industry Assocaiton)에 따르면 미국에 첨단 반도체 공장을 신설해서 유지하는 비용이 한국에 비해서는 많게는 30%, 중국에 비해서는 50%가 더 들어간다고 한다. 대만 TSMC는 애리조나 피닉스에 새 반도체 공장을 짓는 비용이 대만에 공장을 건설할 때보다 4~5배 더 들어간다고 밝혔다.

한국이나 대만 기업이 높은 비용을 감수하고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지으려던 이유는 미국 정부의 보조금 약속 때문이었는데, 상무부가 발표한 세부 규정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차라리 보조금을 받지 않거나 투자 규모를 줄이는 게 나을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언론도 비판적이다. 워싱턴 포스트, 뉴욕타임즈, 월스트리트저널 같은 미국 언론조차 미국 정부가 반도체 지원법으로 너무 큰 목표를 달성하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공장 건설이나 운영에 참여한 모든 근로자에게 보육 지원을 보장하라는 요구는, 지난해 바이든과 민주당이 법 제정에 실패한 육아제도 개선을 위한 사회적 목표를 반도체 지원법에 다시 집어넣은 것이라고 꼬집었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려고 만든 법이 아이러니하게도 사회주의 방식으로 통제하려는 내용을 담았다는 비판도 있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즈는 세부 규정이 크리스마스트리의 장식물처럼 너무 많다고 표현했다.

지난해 5월20일 한국 평택의 삼성 반도체 공장을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개인적으로 만난 미국 정부 관계자들도 투자 기업이 불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눈치였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바이든 행정부가 유권자들이 낸 세금을 철저히 미국을 위해 쓰겠다고 생색을 내기 위해 무리한 면이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은 1990년에 세계 반도체 생산량의 37%를 차지했다. 지금은 12% 수준이다. 기업들이 미국보다 값싸게 반도체를 만들 곳을 찾아 떠났기 때문이다. 반도체만 아니라 다른 제조업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제조업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보조금을 뿌리고 있다. 반도체 산업에만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게다가 대만 한국과 같은 반도체 강국이자 미국의 동맹국들을 미국 편에 서게 하려는 반도체 공급망 재편이 목적이라면, 그에 따른 혜택에 이렇게 인색해선 안된다. 미국에 투자하는 기업에게 이익 창출 기회를 제공하지 못한다면 투자는 무의미하다.

기축통화국이자 패권 국가이니까 밀어붙일 수는 있겠지만, 이런 일들이 반복된다면 과연 미국 옆에 남아있을 동맹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아직 끝은 아니다. 상무부가 발표한 세부 규정은 지난해 전기차 완성차업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는 다르다. IRA는 해외에서 만든 전기차에 불리한 조항이 법안에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통과 되었기 때문에, 독소조향을 고치려면 법을 고쳐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민주 공화 양당이 근소한 의석수로 상하원을 나눠 가진 현재의 미국 의회에서 양당이 동의한 법을 고치는 일은 여간 힘들지 않다. 하지만 상무부의 보조금 지급 조건은 반도체 지원법의 세부 규정을 행정부가 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 쉽게 수정이나 조율이 가능하다. 백악관과 상무부가 동의하면 이미 발표된 세부 조항도 수정이 가능하다.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이 다음달 말로 예정돼 있다. 앞으로 한달 반 남짓 준비 기간 동안 한국의 정재계 인사들이 미국 행정부나 의회와 자주 접촉해야 한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한국의 정부와 기업이 미 행정부에 전략적으로 접근해 적극적으로 설득해야 한다. 반도체 보조금 지급 조건의 수정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여지가 아직 열려 있다고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어본다.




송원석
1980년생.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청소년기와 20대를 보내고 미국으로 유학을 와 뜻하지 않았던 이민자가 되었다. 신학, 경영학, 비영리경영학 등을 전공하고 30대에 우연히 접하게 된 미연방의회를 향한 한국계 미국 시민들의 시민활동에 이끌려 지금은 워싱턴 DC에 자리한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의 사무총장으로 일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미연방의회를 드나들며 축적한 경험과 지식으로 소수계인 한인사회의 권익을 옹호하고, 모국인 한국과 자국인 미국의 관계증진에 바탕이 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지금도 워싱턴 DC '캐피톨 힐'을 누비고 다닌다.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토대로 한미관계, 미국의 사회, 정치, 외교를 말하고자 한다.
송원석 기자
fattykim@kukinews.com
송원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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