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그냥 널 더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I just wanna happier, baby) 영국에서 날아온 록스타 해리 스타일스가 히트곡 ‘레이트 나이트 토킹’(Late Night Talking)에 실어 보낸 바람은 현실로 이뤄졌다. 20일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케이스포돔에서 연 첫 내한 콘서트. 신비로운 초록 눈동자를 가진 사내는 꿈과 환상의 세계로 관객을 데려갔다. 음악은 활기찼고, 몸짓은 열정적이었으며, 눈빛엔 사랑이 가득했다.
첫 곡 ‘뮤직 포 어 스시 레스토랑’(Music for a Sushi Restaurant)을 부를 때부터 그랬다. “바- 바- 바♬” 코러스 가수가 이렇게 노래하자 공연장 온도는 단숨에 끓는점으로 치달았다. 번쩍이는 점프슈트 차림으로 나타난 해리 스타일스는 시작부터 이미 이성을 놓은 양 몸을 흔들었다. 그가 근사한 미소와 함께 “아이 러브 유 베이비”(I love you baby)라고 노래하자, 관객들은 성별을 불문하고 환호성을 내질렀다. 해리 스타일스는 쉴 줄을 몰랐다. 첫 곡을 마치고 곧바로 전자기타를 건네받더니 블루스를 추듯 악기를 연주했다. 그는 ‘골든’(Golen)과 ‘어도어 유’(Adore You)까지 이어 부른 뒤에야 인사를 건넸다.
“한국, 안녕하세요!” 2010년 오디션 프로그램 ‘엑스 펙터’(The X Factor) 시즌7에 출연한 이후 단 한 순간도 슈퍼스타가 아닌 채로 살아보지 못한, 그래서 어딜 가든 환대와 환호가 더 익숙할 해리 스타일스는 이날 수도 없이 “고맙다”를 연발했다. “저를 따뜻하게 맞아줘서 고마워요. 여기 와줘서 고맙고요. 고마워, 고마워요!” 한국어 인사 레퍼토리도 다양했다. “안녕하세요”를 시작으로 “감사합니다” “행복해요” “사랑해요” 등을 외쳤다. 그는 지난해 5월 발매한 정규 3집 ‘해리스 하우즈’(Harry’s House) 수록곡과 솔로 데뷔곡 ‘사인 오브 더 타임즈’(Sign of the Times), 소속 밴드 원디렉션의 메가 히트곡 ‘왓 메이크스 유 뷰티풀’(What Makes You Beautiful) 등 20여곡으로 이날 선곡표를 채웠다.
해리 스타일스는 피터팬 같았다. 수줍음 따윈 모른다는 듯 흥 넘치는 소년을 자기 안에서 끄집어내 파티를 벌였다. 몸을 흐느적대다가도 팔로 하늘을 찌르며 방방 뛰었다. 그는 천진한 소년처럼 서정성도 잔뜩 머금었다. “이 곡은 제게 아주 특별해요. 흐~응? 이 노래가 여러분께도 특별해지길.” 공연장을 록 음악으로 달군 청춘스타가 이런 말과 함께 ‘마틸다’(Matilda)를 부르기 시작하자 관객들은 일제히 휴대전화 불빛을 켰다. 공연장은 순식간에 은하수가 됐다. 다음 곡 ‘리틀 프릭’(Litte Freak)을 부를 땐 보라색 조명이 객석을 물들였다. 이번에는 해리 스타일스가 관객에게 환상 여행을 시켜줄 시간이었다.
“잘 보고 있나요? 기분이 어때요? 전 좋아요. 행복해요!” 만 30세가 채 되기도 전에 미국 최고 권위 음악 시상식인 그래미 어워즈에서 2관왕을 차지한 슈퍼스타는 팬들과 격의 없이 소통했다. 관객들이 만들어온 팻말을 유심히 살피더니 “13년 동안 기다렸다”고 영어로 적힌 플래카드를 집어 목에 걸었다. 그는 팬서비스의 귀재였다. 스케치북에 편지를 적어온 팬에게 메시지를 한 장씩 보여달라고 청하고, 생일을 맞은 관객에게 즉석에서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다. 공연 기획사 라이브네이션에 따르면 이날 공연엔 관객 약 1만5000명이 모였다. 그 중엔 그룹 방탄소년단 멤버 슈가·RM·정국·뷔, 그룹 블랙핑크 멤버 로제·제니 등 K팝 스타들도 있었다.
시작부터 분위기가 절정에 다다랐다고 느꼈건만, 함성은 노래가 나올 때마다 더 높아졌다. 메가 히트곡 ‘워터멜론 슈가’(Watermelon Sugar)와 ‘애즈 잇 워즈’(As It Was)를 부를 땐 특히 더 그랬다. 해리 스타일스는 머리에 토끼귀 머리띠와 작은 갓 등 온갖 장식을 얹고 팬이 던져준 태극기를 등에 감으며 무대를 누볐다. 앙코르 전 마지막 곡은 ‘러브 오브 마이 라이프’(Love of My Life)였다. 관객들이 “베이비, 유 아 더 러브 오브 마이 라이프”(Baby, You are the love of my life·그대가 내 인생의 사랑)라고 합창하자 해리 스타일스의 얼굴에선 순도 100%의 행복이 피어났다. 그는 “여러분은 이곳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자 내가 여기에 온 유일한 이유”라며 “한국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마지막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