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형 “캐릭터와 교감하고 상상하며” [페니맨을 만나다]

임철형 “캐릭터와 교감하고 상상하며” [페니맨을 만나다]

기사승인 2023-03-23 06:00:19
연극 ‘셰익스피어 인 러브’ 속 배우 임철형. 쇼노트

계원예술고등학교에서 영화를 공부하던 남학생은 족구 때문에 인생이 바뀌었다. 같은 학교에서 교단에 서던 ‘뮤지컬 대부’ 남경읍의 눈에 띄면서다. ‘저렇게 몸 잘 쓰는 녀석은 뮤지컬을 해야 하는데….’ 남경읍은 이런 생각에 소년을 뮤지컬 ‘갓스펠’에 초대했다. 동생 남경주가 앙상블 배우로 출연하던 작품이었다. 소년의 세계는 그날 달라졌다. 뮤지컬 ‘벽을 뚫는 남자’ ‘명성황후’ ‘데스트랩’ 등에 출연하며 20년 넘게 무대를 지킨 배우 임철형은 그렇게 탄생했다.

지난 16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임철형이 들려준 뒷얘기는 이랬다. “마침 고민이 많던 때였어요. 영화에 돈이 많이 들었거든요. ‘갓스펠’을 본 뒤 뮤지컬로 전향해 무용부터 배우기 시작했어요.” 소년 임철형은 아무도 없는 연습실에서 혼자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불렀다. 그렇게 따낸 작품이 뮤지컬 ‘우리들의 세계’. 뮤지컬에 갓 발을 들인 초짜 배우는 첫 작품부터 주인공을 연기했다. “순수했던 시절이에요. ‘이거 해놔’ 하면 혼자 죽어라고 연습해 (장면을) 만들어 놓고…. 그때를 통해 지금까지 왔어요.”

스승을 따라 서울예술대학교(옛 서울예술전문학교)에 진학하고 서울예술단에 입단해 마음껏 배우고 연기하며 임철형은 성장했다. 2008년부턴 연출가로도 변신해 뮤지컬 ‘이블데드’ ‘미녀는 괴로워’ ‘벽을 뚫는 남자’ 등을 매만졌다. 요즘 그는 본업으로 돌아왔다.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셰익스피어 인 러브’에서 사채업자 페니맨을 연기한다. 빌려준 돈을 갚지 않으면 코를 자르겠다고 윽박지르는 모습에 움찔하기도 잠시. 페니맨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에 흠뻑 빠져 새 삶을 연다. MBC ‘닥터 로이어’, tvN ‘군 검사 도베르만’ 등 드라마와 영화에서 선 굵은 연기를 주로 선보였던 그는 무대에서 의외의 사랑스러움을 뿜어낸다.

MBC ‘닥터 로이어’ 출연 당시 임철형. 그는 작품에서 비밀을 숨긴 사형수 남혁철을 맡아 극 초반 반전을 일으켰다. ‘닥터 로이어’ 방송 캡처

“무대만 할 땐 배우들 사이에서 ‘코미디는 철형이한테 가서 물어봐’라는 말이 돌 정도로 코미디를 많이 했어요. 드라마 관계자들은 깜짝 놀라시죠. 제가 코믹한 연기를 할 거라곤 상상을 못 하시나 봐요.” 임철형은 “안개 같은 코미디가 좋다”고 했다. “드러내놓고 웃긴 연기보단 어사무사한, 티 나지 않는 코미디가 좋아요. 더 웃기고 싶은 마음을 절제하고 톤을 조절하는 것도 코미디만의 매력이에요.” 그런 면에서 페니맨은 임철형이 주특기를 발휘할 인물이다. 그는 셰익스피어의 신작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작은 역을 얻어 한 줄짜리 대사를 입술 부르트도록 연습한다. 페니맨이 조바심을 낼 때마다 객석에선 킥킥 웃음소리가 터진다.

잃었던 순수함을 다시 찾는 과정이 마음에 와닿은 걸까. 임철형은 “동네 아빠들을 공연에 초대했더니 페니맨에게 무척 공감하더라”고 귀띔했다. 무대에 오르는 설렘으로는 임철형도 페니맨 못지않다. 2015~2016년 공연한 ‘벽을 뚫는 남자’ 이후 7년 만에 서는 무대. 임철형은 “짐 싸서 고향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기분”이라고 했다. 그는 무대를 떠난 동안 SBS ‘라켓소년단’, MBC ‘카이로스’, tvN ‘악의 꽃’, 영화 ‘롱 리브 더 킹: 목포 영웅’(감독 강윤성) 등에 출연하며 매체 연기에 주력했다. 그는 “공연은 연습 때부터 모든 배우가 함께 만들어가는 점이 매력”이라며 “동료들과 나누는 교감, 무대 위에서 느끼는 설렘 등 잊고 있던 것들을 다시 경험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그의 나이는 하늘의 명을 알게 된다는 50세. 지천명을 맞은 배우에게 ‘좋은 연기란 무엇이냐’고 물으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연기가 좋고 나쁘고는 연출자와 관객이 판단할 몫이에요. 다만 상상과 교감을 잘해야 연기도 잘할 수 있겠죠. 팔을 잃은 사람을 연기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팔이 없는 겉모습이 중요할까요? 아니에요. 그 사람이 느낄 아픔을 내 안에 담아야죠. 어떤 상황에서든 캐릭터와 교감하고 상상하면서 관객 혹은 시청자와 소통하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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