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월의 시간 ‘속’ 타들어가는 보험소비자 [친절한 쿡기자]

8개월의 시간 ‘속’ 타들어가는 보험소비자 [친절한 쿡기자]

기사승인 2023-04-04 06:00:27
백내장 미지급 보험금 피해자들이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김은빈 기자

얼마 전 기자가 꾸준히 취재해왔던 한 제보자의 사건이 지난달 끝이 났습니다. 지난해 8월부터 올해 3월까지 약 8개월간 이어져왔던 보험사와 제보자 간 끝 모를 갈등은 단 하나의 문서로 깔끔하게 종결됐습니다. 이에 대해 제보자는 “허무하지만 지금이라도 끝낼 수 있어서 다행이다”라는 소감을 남겼습니다.

제보자와 보험사가 얽혀있던 사연은 지난해 보험업계를 뜨겁게 달궜던 ‘백내장’ 이슈 때문입니다. 보험사들은 백내장 수술로 인한 보험금 누수가 심각하다며 누수를 막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금융당국에 요청했고, 이를 받아들인 금융당국이 백내장 보험금 지급 체계 개선을 약속했습니다. 이어 백내장이 없거나 경미해도 수술이 이뤄지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사전 검사 시행 및 수술 시행 기준 등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조치로 보험사들은 지난해 백내장 수술로 인한 보험금을 아낄 수 있게 됐습니다. 실제로 백내장 수술 지급보험금은 2021년 9514억원을 기록했는데, 2022년 7082억원으로 크게 감소했습니다. 물론 실제로 이를 악용해 보험금을 받아가는 사례들이 크게 줄면서 선량한 보험소비자들의 보험료를 아낄 수 있게 됐다는 평가도 있지만, 문제는 이 과정 속에서 피해를 보는 백내장 수술 환자들이 크게 늘어났다는 점입니다.

또한 지난해부터 보험사들이 마치 ‘만능 지급 거부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 갈등을 심화시켰습니다. 지난해 6월 대법원은 백내장 수술에 대한 입원치료를 일괄적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봤습니다. 법원은 입원치료에 해당하려면 최소 6시간 이상 입원실에 머무르거나 처치·수술 등을 받고 6시간 관찰을 받아야 하는 사정이 있어야 한다고 했지만, 백내장 수술은 수술 준비부터 종료시까지 2시간 정도가 소요되기 때문에 입원할 사정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했습니다.

하지만 기자가 만났던 제보자는 제3자의 시선으로 보더라도 명백한 피해자에 해당됐습니다. 그는 2년 전 백내장 판정을 받았으며, 치료가 필요하다는 명백한 상황 속 수술을 받았습니다. 보험사가 요구하는 ‘세극등현미경’ 검사 기록과 6시간 입원하며 부작용의 관찰 등 높아진 보험사의 문턱을 넘기 위한 모든 조건을 충족했음에도 보험금 지급이 거부당했습니다.

이후 보험사와 제보자는 한 해가 넘어가도록 치열한 싸움을 벌여왔고, 끝내 제 3자 의료자문에 합의하면서 해결의 실마리가 ‘겨우’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마저도 병원을 구하기 쉽지 않아 강동구에 있는 한 대학병원에서 겨우 의료자문을 받을 수 있었죠. 대학병원의 의사는 제보자의 주장이 맞다고 하며 손을 들어줬고, 그 즉시 보험금이 지급됐죠. 길었던 싸움에 비하면 허무한 끝이였습니다.

이처럼 긴 시간 이어졌던 갈등을 보고 있자면 제 3자 의료자문은 보험사와 보험소비자간 갈등이 법적 분쟁이란 파국으로 치닫기 전 최후의 ‘조정자’ 역할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현실의 제 3자 의료자문 시스템은 허점투성이입니다. 의료자문이 보험사에게 악용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어서 보험 분쟁이 발생해도 보험가입자들이 이를 믿지 않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최근 3년 내 의료자문제도를 통한 부지급 비율은 최대 79%에 달했습니다. 보험사들이 자문의와 위탁 관계를 맺으면서 의료 자문의 객관성이 떨어진다는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김병욱 의원도 이에 대해 “보험사가 소비자가 제출한 진단서 등에 대해 객관적인 반증자료 없이 보험회사 자문의의 소견만으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삭감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다른 보험 관련 제보자들과 만나도 제 3자 의료자문에 대한 불신감은 팽배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나마 합의가 이뤄져 의료자문을 하려고 하더라도 의사들이 의료자문에 부담감을 느껴 이마저도 기피해 병원을 구하는 것 조차 쉽지 않은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이에 대한 해결방법을 말하자면, 제3의 공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의료자문기구를 설치해서 의료자문(감정) 절차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은 어떨까요. 해당 전문분야의 숙련된 전문의 자격을 가진 의사로만 구성해 의료자문을 하는 방안도 괜찮을 법 합니다. 또한 현재 1명의 의사에 의한 의료자문이 아닌 복수의 전문의사에게 의료자문을 하는 방식의 개편도 있겠죠.

다만 이는 금융당국 한 곳에서 나선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보건복지부, 금융소비자, 의료계, 보험업계 등 관련업계가 모두 머리를 맞대고 논의에 나서야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는 무거운 사안이죠. 쉽지 않은 일이 되겠지만, 보험금 부지급으로 낭비되는 인적, 물적 자원과 마음고생하는 보험소비자들을 생각한다면 지금부터라도 진지한 태도로 나서야 할 시기가 아닐까요.

김동운 기자 chobits3095@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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