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개월부터 수백만원 영어 키즈카페… ‘놀이식 영어’의 함정

36개월부터 수백만원 영어 키즈카페… ‘놀이식 영어’의 함정

영유아도 어학원 레벨테스트용 새끼학원 찾아

기사승인 2023-04-04 06:05:02
그래픽=이승렬 디자이너

“3~4세 때부터 오는 아이들이 많아요. 영어유치원 가기 전에 어느 정도 수준을 만들어 놓으려고요.”


상담사가 꺼낸 수업 달력엔 여러 일정이 가득 차 있었다.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고가의 교육비에도 인기가 많다. A교육업체가 운영하는 경기도 한 놀이센터를 이용하려면 최소 300만원가량의 전집을 구매해야 한다. 이와 별개로 매월 센터 이용료 10여만원을 내야 한다. 지난달 30일 방문한 영어교육 관련 업체들이 운영하는 놀이센터엔 부모 손을 잡고 온 아이들로 가득했다. 방마다 영유아 4~5명이 놀이 수업을 듣고 있었다. 해당 센터에서 가장 어린 회원은 2021년생이었다.

영어를 처음 배우는 연령대가 영유아까지 내려갔다. 영어유치원으로 시작해 사립초-특목고·자사고-국내외 명문대 또는 의대 진학으로 이어지는 교육 로드맵이 공고한 상태다. 영어 교육에 관한 관심은 더 높아진 분위기다. 어학원 상급반에 들어가려고 레벨 테스트용 새끼 과외, 새끼학원을 찾는 부모들도 있다.

생후 36개월부터 멤버십에 가입할 수 있는 영어 키즈카페도 등장했다. 지난달 28일 방문한 경기도의 한 영어 키즈카페 내부는 다른 키즈카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미끄럼틀, 장난감 등 놀이기구와 책꽂이 등이 있었다. 아이들이 책상에서 앉아 학습지도 푼다. 차이점은 모든 활동을 원어민 교사와 영어로만 한다는 것이다. 해당 업체는 다양한 놀이 활동를 통해 아이들에게 영어를 자연스럽게 노출한다고 홍보한다. 멤버십 가격은 40시간 198만원. 가격대가 높지만, 인기가 많다. 일부 지점 주말 타임은 열흘 전부터 열리는 사전 예약 시작과 동시에 마감될 정도다.

“영어유치원 끝나면 영어 키즈카페로 오는 식이죠. 유치원·어린이집에 가지 않는 주말에도 영어 노출을 위해 많은 아이가 찾아요.”

경기도 한 영어교육업체 놀이센터에서 영어 책을 읽고 있는 아이.   사진=임지혜 기자

학원이 아닌 놀이라는 방식이 부모들에게 통했다. 올해 영어유치원에 합격한 2020년생 김모군은 하원하면 영어 키즈카페로 이동한다. 외국인과 놀이하며 영어에 노출되는 시간을 더 늘리기 위함이다. 김군의 어머니 이모씨는 생후 28개월부터 수백만원에 달하는 영어교육업체의 프로그램을 통해 영어유치원 준비를 했다. 이씨는 “학습 대신 놀이를 통해 영어에 흥미를 느끼게 하려고 보낸다”며 “요즘은 영어 공부 시기가 더 빨라져서 생후 18개월부터 챙기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김군의 친구 상당수도 영어교육업체들의 전집 또는 교재를 활용한 수업을 받거나 센터에 방문해 영어 교육을 보조하고 있다.

영유아시절 놀이식 영어 노출을 통해 관심을 높이면 초등 이후에도 학습 효과가 이어질 것이란 기대도 크다. 워킹맘 조모씨는 “5세 때부터 레벨 테스트를 받아 어학원에 다니는 세상”이라며 “사립초등학교에 가려면 영어를 해야 하고, 어학원 레벨업을 하려면 과외나 학원을 붙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주부 박모씨도 유치원 수업이 끝나면 만 4세인 아이와 영어 키즈카페를 찾는다. 가정에선 태블릿 PC를 통한 영어 학습지도 1년 넘게 하고 있다. 박씨는 “아웃풋을 기대하는 건 아니다”라며 “놀이식 영어로 원어민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려는 목적”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놀이방식이 사실상 학습에 초점을 맞춘 수업이라고 지적했다. 학습을 지양한다면서 놀이 활동 중 학습지를 푸는 모습이 다소 모순적이란 얘기다.

김혜영 중앙대 영어교육과 교수는 “놀이식이라는 탈을 쓴 아동학대”라며 “학습지를 푸는 것을 놀이 활동이라고 볼 수 있을까”라고 말했다. 영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자꾸 테스트를 하는 것도 문제로 봤다. 그는 “즐겁게 외국어를 배워 이를 통해 많은 순기능을 얻으려는 의도가 아니다”라며 “입시와 사회에서의 성공을 위해 실력이 늘었는지 평가하고 아이를 관찰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최근 부모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영어 키즈카페.   사진=임지혜 기자

양신영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 선임연구원도“영어학원이 홍보하는 논리 중 하나가 놀이 중심”이라고 말했다. 부모들이 낸 학원비로 운영되는 시스템상 영업을 위해서라도 아이들의 영어실력에 대한 아웃풋을 놓칠 수 없는 구조라는 설명이다. 

양 연구원은 “아이들에게 외국어는 학습”이라며 “놀이라는 표현이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영어유치원에서 5~7세에도 매일 일정 분량 이상 단어를 외우는 과제도 있다”라며 “부모들이 영역별로 커리큘럼을 짜놓은 영어유치원을 보내는 이유가 있다. 정말 놀기만 하고 오는 곳은 엄마들이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물론 일부 경험자들은 효과가 분명히 있다고 말한다. 다만 학습을 강조한 조기교육은 아이가 외국어를 싫어하게 하는 치명적인 부작용을 낳을 위험이 크다. 김 교수는 “마음이 없으면 언어는 습득이 안 된다. 어릴 때 파닉스 등을 배워도 흡수하지 못하는 아동이 상당수”라며 “놀이식이 나쁜게 아니라 놀이식으로 해서 눈앞의 성과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다. 언어는 성과 지향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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