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밖 ‘뮤지컬 도시’가 꿈틀댄다

서울 밖 ‘뮤지컬 도시’가 꿈틀댄다

기사승인 2023-04-11 06:05:02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실황. 배우 조승우(뒤쪽)와 손지수. 에스앤코

13년 만에 한국어로 공연되는 뮤지컬의 정수 ‘오페라의 유령’,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걸작을 무대로 옮긴 뮤지컬 ‘레미제라블’, 세계 3대 뮤지컬 중 하나인 ‘캣츠’…. 명작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세 작품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정답은 부산이다. ‘오페라의 유령’은 지난달 30일 서울이 아닌 부산 드림씨어터에서 닻을 올렸다. 8년 만에 돌아오는 ‘레미제라블’ 역시 오는 10월 부산에서 관객을 만난 뒤 서울과 대구로 건너간다. ‘캣츠’ 내한 공연도 지난 2월 서울을 찾기에 앞서 부산에서 먼저 공연했다.

부산이 뮤지컬 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다. 2019년 개관한 부산 최초 뮤지컬 전용 공연장 드림씨어터를 중심으로 대형 뮤지컬을 잇달아 유치하면서다. 좌석 수 1000석 이상인 대형 공연장 대관 기간이 최장 2개월 안팎인 서울에 비해, 부산은 4~5개월 장기 공연이 가능한 점이 무기다. 부산 인구는 약 330만명으로 서울 다음으로 많다. 게다가 KTX나 호텔 등 관광 인프라가 잘 갖춰져 부산 외 지역 관객을 끌어모으기도 쉽다. 부산 뮤지컬 시장이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받는 이유다.

지난달 30일 개막한 ‘오페라의 유령’은 부산 드림씨어터에서 11주간 103회(프리뷰 3회+본공연 99회) 공연한다. 역대 지역 최장기 공연이다. 공연제작사 에스앤코에 따르면 관객 중 40%는 울산과 경남 등 부산 외 지역에서 온 ‘원정 관객’이다. 설도권 드림씨어터 대표는 최근 쿠키뉴스와 통화에서 “경기불황으로 지역 공연이 크게 위축된 상황이나 ‘오페라의 유령’은 애초 기대한 것과 비슷한 수준으로 관객이 들고 있다”고 귀띔했다. 드림씨어터는 앞서 뮤지컬 ‘라이온 킹’ 인터내셔널 투어(6주), ‘위키드’(5주), ‘오페라의 유령’ 월드투어(8주) 등을 장기 공연으로 선보인 바 있다.

‘오페라의 유령’이 공연되고 있는 부산 드림씨어터 로비 외관. 에스앤코

뮤지컬 평론가인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는 이 같은 ‘선지방 후서울’ 공연 형태를 “비정상의 정상화”라고 봤다. 지방 공연장을 돌며 트라이아웃(시범) 공연을 마치고 브로드웨이에 입성하는 ‘뮤지컬 본토’ 방식을 한국도 따르는 모양새라는 분석이다. 원 평론가는 “그간 한국 뮤지컬은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위해 서울 공연부터 잡았다”며 “(지방 장기 공연은) 서울 입성 전 공연 완성도를 높이고 홍보 효과도 난다. 이렇게 검증과 훈련을 마치면 세계 시장으로도 진출할 브랜드 파워를 갖는 것”이라고 짚었다. 다만 ‘오페라의 유령’ 측은 “부산 공연은 트라이아웃이 아닌 본공연”이라고 강조했다.

지역 간 불균형 해소와 시장 확대를 위해서도 비수도권 공연 시장 활성화는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대구는 2007년부터 16년간 국내 유일의 뮤지컬 축제 DIMF를 개최하며 지역 공연 시장 확대에 앞장섰지만, 아직 뮤지컬 전용 극장은 없다. 그나마 지난해부터 뮤지컬 전용 극장을 포함한 문화예술허브 조성 사업이 진행 중인 상태다.

원 교수는 “공연 지원 정책은 그간 관람료 할인 중심이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뮤지컬 전용 극장 등 창작 전초기지를 조성하는 것이 공연 시장 확대에 더욱 효과적”이라며 “부산에 이어 대구, 광주, 대전 등 비수도권 도시에도 공연 제작에 적합한 시설이 갖춰지면 그 시너지는 상상을 뛰어넘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공연예술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달 10일부터 이달 9일까지 부산 지역 뮤지컬 티켓 판매액은 약 37억원으로, 드림씨어터 개관 전인 2019년 3월10일~4월9일과 비교해 수십 배 늘었다.

설 대표는 “공연 시장 미래 세대인 중·고등학생들의 관람을 유도하려 한다. 교육청과 논의해 학생들의 단체 관람을 이끌 계획”이라며 “학생 등 공연을 보기 어려웠던 이들에게 관람 기회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수요를 만드는 선순환 구조를 이루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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