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핑크/ 블랙~ 핑크” 무대에서 그룹 블랙핑크의 등장을 알리는 구호가 나오자 환호성이 지상을 뒤덮었다. 네 명의 K팝 슈퍼스타가 십수만 관객을 만난 곳은 한국이 아닌 미국 캘리포니아주 남부에 있는 콜로라도 사막. 블랙핑크는 15일 이곳에서 열린 미국 대표 음악 축제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트 페스티벌(이하 코첼라) 중심 무대에 간판 출연자로 올랐다. K팝 가수로는 처음이다.
히트곡 ‘핑크 베놈’(Pink Venom)으로 공연을 연 블랙핑크는 ‘킬 디스 러브’(Kill This Love), ‘하우 유 라이크 댓’(How You Like That), ‘프리티 새비지’(Pretty Savage) 등 히트곡을 연달아 불렀다. 데뷔곡 ‘붐바야’부터 지난해 공개한 정규 2집 타이틀곡 ‘셧 다운’(Shut Down)까지 7년 역사를 아울러 선곡표를 짰다. 롤링스톤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날 블랙핑크 공연을 본 관객은 12만5000여명. 유튜브 생중계엔 무려 2억5000만명이 접속한 것으로 추정된다. 역대 코첼라 온라인 중계 접속자 수 중 최고치라고 미국 롤링스톤은 설명했다.
블랙핑크는 이날 공연에서 물량 공세를 쏟아냈다. 시작부터 드론을 띄워 대관람차, 나비, 용 등 코첼라를 상징하는 예술적 이미지로 공중을 수놓았다. 미국 연예매체 버라이어티는 “이 같은 도입부는 역사적 맥락을 부여하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며 “미국에서 가장 큰 페스티벌의 가장 큰 무대를 정복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고 평가했다. 본 공연에선 불꽃놀이와 레이저 조명 등이 눈을 즐겁게 했다. 현지에선 “음표와 색깔의 향연이자 극도의 화려함”(미국 경제지 가디언)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전 세계를 호령하는 네 전사는 공연을 한국적인 색채로 물들였다. 무대 중앙엔 시옷 모양 세트가 자리 잡았다. 기왓장 단면을 연상시키는 모습이었다. 정규 2집 수록곡 ‘타이파 걸’(Typa Girl)을 부를 땐 댄서들이 흰 깃털이 잔뜩 달린 부채를 들고 나타나 멤버들을 둘러싸고 춤을 췄다. 부채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안무다. 객석에선 태극기가 나부꼈다. 네 멤버는 공연을 마치면서 “지금까지 블랙핑크였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한국어로 인사했다. 객석에는 또 다른 K팝 슈퍼스타인 그룹 방탄소년단 멤버 정국이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블랙핑크의 이 같은 활약에 외신은 “블랙핑크가 새 역사를 만들었다”는 찬사를 보냈다. 미국 음악매체 빌보드는 “역사적이고 기념비적인 공연에서 제니, 지수, 로제, 리사는 그들이 블랙핑크로서 가장 잘하는 일을 해냈다”며 “이들은 각자 혼자 빛날 순간(솔로 무대)을 만듦으로써 개개인이 돋보일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가디언은 블랙핑크의 코첼라 공연에 4점(5점 만점)을 매기며 “블랙핑크는 음악 시장에서 언어와 문화 장벽이 허물어지고 있음을 증명했다. (중략) 이들은 과감하고 자신감 넘치며 활력을 불어넣는 음악으로 군중을 흥분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블랙핑크는 3개월에 걸쳐 이번 공연을 준비했다.
블랙핑크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이 대유행하기 전인 2019년 코첼라 무대를 처음 밟았다. 멤버 로제는 공연 도중 “4년 만에 간판 출연자로 코첼라에 다시 서게 됐다. 꿈을 이뤘다”며 감격에 젖었다. 이들은 오는 22일 또 한 번 코첼라에서 공연한 뒤 월드투어를 재개한다. 오는 7월엔 영국 대형 음악 축제인 하이드 파크 브리티시 서머 타임 페스티벌에 K팝 가수 최초로 출연한다. 이후엔 미국 대형 스타디움 4곳에서 추가로 공연을 연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